LG·SK 안방 싸움에 배터리강국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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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영 기자페이지 + 입력 2020-09-02 00:02:09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계 1·3위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서로를 상대로 치열한 법정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올해 10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배상금 합의를 마무리하기 위해 협상해 온 LG와 SK가 갑작스럽게 서로에게 등을 돌렸다. 이를 두고 두 회사의 법정 갈등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는 전기차가 각광받고 있는 추세 속에 전세계 배터리 업체들의 경쟁이 날로 첨예해지고 있는데 해당 시장을 선도하는 두 회사가 지나친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아울러 자칫 성장 유망한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유럽·중국 등 경쟁 업체들에게 뺏기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LG와 SK는 회사 법무팀과 로펌을 통해 배상금 합의 협상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서로에게 전달했다. 여기에는 두 회사의 최고 경영진의 의견도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LG와 SK는 2월 미국 ITC의 조기 패소 결정 이후 배상금을 합의하기 위해 협상을 시도해 왔다. LG는 지난해 4월 SK가 자사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배터리 핵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ITC와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SK를 제소했다. 이를 검토한 ITC는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배터리 기술을 빼낸 증거를 훼손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2월 조기 패소 결정을 내렸다.

현재 미국 ITC는 해당 사건과 관련한 리뷰를 진행 중이다. 리뷰가 마무리되면 오는 10월 5일 최종 결정이 내려질 예정이다.

SK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 이미 ITC의 조기 패소 결정이 내려진 만큼 최종 결정이 나오기 전에 LG와 배상금 합의를 완료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어서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ITC의 조기 패소 결정이 뒤집힌 전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ITC가 최종 결정을 내리면 LG가 지난해 4월 미국 연방법원에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최종 재판이 열리게 된다. 이 재판에서 피해액과 배상금액이 확정되는데 통상적으로 미국 법원은 ITC의 결정을 준용한다.

결국 SK가 최종 패소할 가능성이 농후한 셈이다. 그렇게 되면 SK는 미국에 배터리 부품·소재에 대한 수출이 금지된다. 또 현재 미국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 가동 역시 중단될 수 있다.

SK는 포드의 전기트럭 F시리즈와 폭스바겐의 전기차 등에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조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SK가 최종 패소돼 배터리 납품이 불가해지면 앞서 계약한 수주 물량에 대해서도 피해를 보상해야 할 것으로 보여 SK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돌연 배상금 합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두고 배상금을 둘러싼 두 회사의 입장차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두 회사가 제시한 배상금 규모는 LG가 수조원 대인 반면 SK는 수천억원 대로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LG는 수십 년간 쌓아온 회사의 중대한 기술을 빼돌리곤 대가도 없이 자체 기술인 양 사용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며 SK가 정당한 보상을 해n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SK는 LG가 주장하는 대로 이직한 직원이 가져왔다는 기술이 실제 사업에 활용됐는지 불명확한데다 기술 침해와 피해 범위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과도한 금액만 요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LG와 SK는 영업비밀 침해 소송 이후로 미국과 국내에서 명예훼손와 특허 침해 등 다수의 소송으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두 회사가 지금까지 쓴 소송 비용만 약 4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LG와 SK는 서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끝까지 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산업 발전에 쏟아야 할 역량을 괜한 안방 싸움에 낭비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되레 유럽·중국 등 경쟁 업체들에게 추격당하기 좋은 환경에 LG와 SK가 제 발로 걸어들어 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의 차세대 먹거리로서 전기차 배터리라는 기회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전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두 회사가 불필요한 소송 전쟁을 벌이는 것을 더 이상 손 놓고 지켜봐선 안 된다. 더구나 두 회사 간에 진행 중인 국내외 소송전의 장기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 두 회사와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것인지 일깨울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린 뉴딜 정책을 통해 전기차 및 관련 산업을 육성한다는 정부가 배터리 업체 간 안방 싸움을 중재하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점이다. 신성장 동력으로서 배터리 산업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이다.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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