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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제는 내 자신을 벗삼아 지내야 하나보다.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여름 내 계속된 장맛비와 태풍 피해도 조금씩 회복될 즈음이다. 그런데, 발이 묶였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거리두기 단계가 위기 직전으로 상향되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따른 규정과 권고가 강화됐다. 혼밥, 혼술, 몸에 문제가 생기면 내 선에서 그치기. 여럿이 뭉치지 않기. 커피나 치킨은 테이크 아웃. 테니스, 골프, 배드민턴, 당구장 등은 폐쇄... 말 그대로 각자도생하는 시즌이 왔다. 언제까지일는지도 모른다. 이럴 때 이웃이나 친구를 불러댔다간 무개념 인간되기 십상이다. ‘코로나 19’는 나홀로 지낼 것을 주문한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2020년 8월 30일 0시부로 서울, 경기 등 주요 도시의 코로나 감염증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로 높였다. 이로인해 약속 취소 문자가 오고, 오프라인 강의가 연기되고, 오래 전에 잡아둔 회의가 전격 취소됐다. 생각지도 못했던 시간이 빈다. 이렇게 한가하게 쉴 바에는 누구누구랑 미뤄뒀던 식사라도?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상대가 난처해하는 표정이 떠오르면 아차, 싶어진다.
나 자신과 잘 놀 것인가, 우울해 할 것인가
거두절미하고, ‘코로나 19’는 대자연이 인류라는 욕망 덩어리에게 보내는 경고다. 이게 마지막 카드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이미 85만 지구인이 귀한 목숨을 잃었다. 지구행성에서 코로나 감염증 대처를 매우 잘 하고 있다는 대한민국도 순식간에 맥을 못추는 형국이 됐다. 내가 만나는 사람 중 누가 광화문 집회에 다녀왔는지, 누가 그 사람의 가족인지, 그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녀온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게 될 즈음이면 이미 늦었다. 바이러스 감염 검사 결과가 음성이었는데 며칠 후 확진 판정이 났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혼란스럽고 두렵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라는, 소숫점까지 활용해야 하는 궁색함이 사태의 긴박감을 설명해주는 듯하다.
이제와서 누구를 탓하랴. 분개하고 한탄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절박하다. 올 스톱 단계 3에서 0.5를 뺀 수치는 모든 상황이 벼랑 끝에 매달려 있음을 암시한다. 사실상 극단인데, 요행과 소망이 0.5안에 간절하게 담겨 있는 듯하다. 0.5를 뺀 수치로 생업을 위한 출구를 겨우 열어놓고는 있지만 대폭발의 신호로 읽어달라는 소리없는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이즈음에 미팅 제안은 넋빠진 결례다’라고 써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시절이 되고 말았다. 올해 1월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코로나19’ 관련 표현이 온갖 미디어를 장식한다. 목숨을 걸거나 평생 불치의 증세와 맞바꿔야 할 만큼 비중있는 만남인지 헤아려보고 교육을 하거나 사적인 만남을 진행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 놓고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누구일까. 가족? 그런가? 밖에서 방금 들어온 가족은 탈의하고 잘 씻기 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매개체 취급하는 게 맞다. 이것이 우리가 맞닥뜨린 실제상황이다. 다시 묻자. 당신이 마음놓고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누구인가. 나? 그렇다. 나 자신뿐이다. 코로나 19는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자신을 벗삼아 지낼 수 있는가’
어쨌거나 당신은 혼자 즐거울 수 있고, 혼자 바쁠 수 있고, 혼자 좋은 시간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코로나 19’가 제시한 각자의 과제이다. 타인에게 심심하다고, 같이 있자고 치근덕댈수록 당신의 자존감이나 가치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한다. 상대 입장에서, 괜찮은 척도 한두 번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다른 말로 하면 ‘따로 잘 지내기’이다.
이제는 진실로 자신을 벗삼아 지낼 수 있어야 한다. 진즉부터 인간에게는 이런 천품이 있었다. 혼자 잘 지낼 수 있는 품성 즉, 명상(瞑想)할 수 있는 품성이다. 자신에게 말을 걸고 대답할 수 있는 기능, 자신의 마음이나 태도를 볼 수 있는 기능, 자신의 행위와 그 행위 속의 의도를 볼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그런 귀중한 천품을 개발하는 데 소홀했다. 왜? 언제든 만나줄 친구와 공간과 즐길거리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치킨집도 많았고, 당구장, 골프장, 오락실, 식당, 카페들이 밤 늦게까지 웃고 있었다.
‘코로나 19’가 보내온 메시지의 실제는 무엇일까.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현실, 그 이상이다. 이제 당신은 당구장에서, 식당에서, 골프장 등지에서 친구와 수다떠는 시간과 기능은 소거되고, 달랑 ‘나라는 벗’과 함께 놀 수밖에 없는 울타리 안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럼에도 나를 벗삼아 즐기는 연습이 안 돼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 안 그러면? 텔레비전이나 게임 따위에 빠지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머지않아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이미, 코로나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 않은가.
≪사피엔스≫로 유명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21세기,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명상’을 말한다. 그는 스무살 이후, 매일 같이 하루 두 시간 정좌명상을 한다. 일년에 서너 달은 오로지 명상만 한다.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과 같은 역작을 써내는 집중과 통찰력을 그는 명상의 힘이라고 못 박는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과 잘 노는 데 챔피언이다. 자신과 잘 놀면서 원고의 영감도 받고, 문제도 풀고, 통찰이나 혜안을 얻는다. 아, 돈도 많이 번다.
‘코로나 19’는 지구인 전체를 미증유의 위험에 노출시켰다. 그 어떤 통치 권력보다 삼엄하게 ‘뿔뿔이 헤쳐모여’ 환경을 강제한다. 현재로서는 개인 간 거리유지만이 해법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만 놓고 보면, 그 잘난 인류 문명이 페스트 창궐 시대로 명백히 퇴행했다. 이 질병에 대해 국가로서는 국가의 문제고,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지방 정부의 문제이며, 각자는 각자의 문제로써, 그 생존 방식 또한 지극히 개별적이다.
국가는 연인의 포옹을 염려할 수는 있지만 그 포옹을 범죄시할 수는 없다. 연인의 머리에 열이 나면, 비로소 국가가 입장할 수 있다. 당신은 국가인가 개인인가. 개인이 맞다면, 그나마 두 가지 선택지를 누릴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벗삼아 지내거나, ‘코로나 19’ 상황이 끝나기를 조난자처럼 기다리거나.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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