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묘조장(拔錨助長)과 전국민 고용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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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석 기자페이지 + 입력 2020-09-24 00:02:42

‘발묘조장(拔錨助長)’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맹자의 공손추 상편에 나오는 말로 급하게 서두르다 오히려 일을 망친다는 뜻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송나라 농부 중에 자기가 심은 곡식이 다른 사람보다 덜 자란 것 같아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일일이 곡식의 싹을 뽑아 올린 후 집에 돌아가 가족들에게 곡식의 싹이 자라도록 도와주느라 피곤하다고 얘기했다. 다음날 그의 아들이 밭에 가보았더니 싹은 이미 말라 죽어버렸다.

주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이 말은 줄여서 조장(助長)이라고도 한다. 공자가 한 ‘서둘러 가려다 오히려 이르지 못한다(欲速不達)’라는 사자성어나 우리 속담 중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비슷한 말이다. 빨리 서두르면 도리어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는 의미다.

정부가 2025년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전국민 고용보험제’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오는 12월 예술인 고용보험제 시행에 이어 보험설계사, 대리운전기사, 택배기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형태근로자(특고종사자)에 대해서는 연내 입법을 완료하고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1400만명 수준인 고용보험 가입자를 2025년 2100만명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다.

이에 대해 고용안전망 사각지대 해소라는 목표만 강조하며 무리하게 속도를 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재계뿐만 아니라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서까지 ‘너무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보험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성급한 도입은 도덕적 해이와 재정 파탄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각에서는 2년도 남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중에 성과를 내야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도 대두된다.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재정 부담이다. 정부는 사회보험 취지를 강조하며 특고종사자 고용보험을 기존 근로자 실업급여 계정과 통합 운영할 방침이다.

재원이 투명한 기존 근로자와는 달리 특고종사자의 고용보험까지 부담하려면 재정 확보를 위해 고용보험료를 지금보다 더 내야 한다. 기존에 특고종사자와 계약을 맺은 사업주가 특고종사자의 고용보험료를 납부해야 하지만 새로운 부담을 진 사업주는 최대한 부담을 회피하려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업주는 고용보험료 부담을 전가시키려 할 것이고, 결국 실적이 좋지 않은 특고종사자의 지위는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사업주의 보험료 부담을 낮춰주면 그 부담은 결국 기존 고용보험 가입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문제는 도덕적 해이다. 특고종사자는 근로자의 실업이나 자영업자의 폐업에 상응하는 기준이 없다. 따라서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뒤로는 일하는 부정수급 문제가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정부 들어 대폭 확대된 고용장려금과 관련해서도 부정수급이 많고 이를 노린 브로커까지 판치는 상황에서 특고종사자의 양심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이 특고종사자의 소득 파악 정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고용보험을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말부터 시행 예정인 예술인 고용보험의 경우 ‘직전 1년간 월평균 보수가 전년 월평균 보수보다 20%이상 줄어든 달이 5개월 이상일 경우’ 실업급여를 지급한다. 상대적으로 고용이 불안정하고 처우가 열악한 예술인들의 생활 안정이라는 취지를 고려해도 자칫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취업자의 실제 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제도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이런 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체계적인 준비를 통해 제도 시행을 위한 정보를 모아야 한다.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다 오히려 일을 망친다는 ‘발묘조장’의 고사를 통해 무언가가 이뤄지는데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혜를 돌이켜 볼 때다.

한원석 wsha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