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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총리가 교체됐지만, 양국 관계는 여전히 평행선이다. 잠시 조용하다가도 악재가 터지기만 하면 특히 우리 쪽에서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과거에 일본에 당한 굴종의 무게나 멍에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 기저에는 가해자의 반성이 미흡하고, 피해자의 용서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갈등의 폭에 높낮이가 있기는 하지만 요즘 들어 강도가 무척 심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화해의 매듭이 풀리기가 어려울 것 같다. 심지어 우리 내부의 분열과 편 가르기는 더 극성을 부린다. 해방된 지 75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토착왜구 혹은 친일파 논란으로 연일 시끄럽다. 역사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파헤쳐 단죄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그러자 정작 내부를 들여다보면 일제(日帝)의 잔재가 일상생활에 상당 부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정부 등 공공 조직이나 학제(學制)를 비롯해 언어의 구조나 문화적 영역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이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간헐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뿌리가 깊고 타성에 젖어 있어서 큰 진전이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 중에서 가장 나쁜 잔재가 ‘관(官) 주도’이다. 일본도 이를 일본 병(病)이자 고질적인 폐해로 인식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무늬만 바꾸는 수준의 ‘정치 주도’로 변화를 꾀하는 등의 시도가 있었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잃어버린 20년 혹은 30년의 주범이 바로 이것이라고 하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그만 둔 아베 전 총리도 이 부문에 칼을 들이댔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가 그리 후하지 않다. 신임 스가 총리도 취임 일성으로 아날로그 행정의 상징인 도장을 철폐하겠다고 하면서 정부 조직의 1.1만 개 날인을 없애는 개혁 작업에 착수하고 있다.
이 또한 근본적인 대처 방법은 아니다. 관 혹은 정치 주도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용두사미로 끝날 확률이 다분하다. 대다수의 개발도상국이 정부 주도의 성장 정책으로 일정 기간에 이르기까지 성과를 내지만 특정 시점이 지나면 성장동력이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민간의 창의를 억제하고, 지속적인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민간 주도로의 전환 타이밍을 놓치면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받는 국가가 일본이다.
그러나 일본만큼 소문이 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안을 들여다보면 훨씬 더 심각하다. 관 혹은 정치 주도의 악습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글로벌 커뮤니티에서는 일본이 겪고 있는 경제 장기 침체의 의미로 생겨난 ‘일본화(Japanification)’에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화두이다. 결과만이 아닌 과정까지 포함해 현상을 진단해 보면 일본과 흡사한 구조적 특징을 가진 우리가 가장 위험한 수위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수차례 조직 개편을 통해 일본의 현재 정부 조직은 1부 11성 2청이다. 중국도 수차례 개정을 거쳐 현재는 22부(4 위원회), 미국은 철저한 삼권분립에 기초해 15개 정부 부처로 구성돼 있다.
반면 한국의 정부 조직은 18부 4처 18청(7 위원회)으로 미국이나 일본보다는 물론이고 중국보다도 비대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이 축소되기는커녕 더 늘어나는 것이 관행이다. 큰 정부는 필연적으로 부처 간 칸막이와 책임 전가, 규제 양산 등의 비효율성과 정부 만능주의의 폐단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엄청난 짐을 지우고 있다.
‘관(官) 주도’ 경제로는 더 이상 대한민국 미래 없어, 부패와 비리 및 비효율의 근원
최근 옵티머스, 라임 사건으로 정국이 북새통이다. 바람 잘 날이 없을 정도로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는 해괴망측한 일들로 국가가 멍들고 있다. 세상 여러 나라에서 살아봤지만 이런 목불인견(目不忍見)이 없다. 선량한 국민은 자포자기라도 한 듯 정권 말기가 되니 또 하나 통과의례가 생겨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캐면 캘수록 관(官)이나 정치권 인사들이 줄줄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것이 이들이 짜놓은 그물망으로 연결된다. 일도 일이지만 하물며 사기 행각까지도 그들을 통해야 가능하다. 먹이사슬이자 부패 고리인 셈이다.
민간을 옥죄어야 더 많은 먹잇감이 생겨나기 때문에 틈만 나면 조직을 확대하고, 필요도 없는 위원회를 만들어 비리의 온상을 키운다. 국내에 들어와 활동하는 외국 주재원들이 토로하고 있는 가장 큰 애로가 이런 익숙지 않은 관행에 대한 적응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외국에 나가면 일류로 평가받는 우리 기업들이 국내에서 이류 혹은 삼류로 전락하는 이유도 이에서 기인한다.
관 주도 경제의 피해는 비단 이뿐만 아니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돕는다고 하는 일들이 대부분 부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미 예고된 참사다. 223억의 예산을 쏟아부어 만든 중소기업 제품 전용 매장의 2/3가 폐업하고, 입점 기업 중 절반의 매출이 제로라고 한다. 전통시장의 청년가게 진출을 돕기 위해 454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조성한 ‘청년몰’도 위기에 빠지고 있다.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은 채 주먹구구식 묻지마 지원으로 절반가량이 휴·폐업 상태이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에다 실적 채우기에만 급급해 국민의 혈세만 축내면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국가가 창업 붐을 일으킨답시고 형식적인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창업 기업 10개 중 7개가 5년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한다. 제대로 된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민간 주도의 자생적인 창업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어설픈 관이 주도하다 보니 결과가 명약관화한 것이다. 관 주도 경제의 전형적인 폐해가 속출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개선이나 혁신은 늘 뒷전이다. 한국판 뉴딜과 같은 아무리 좋은 정책도 민간이 아닌 관이 주도하게 되면 성과는 고사하고 실패로 끝날 공산이 크다.
한국호(號)가 좌초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낡은 관행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을 그렇게 비난하면서도 구(舊)시대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일본의 행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형국이다. 과격한 행위나 말보다도 일본을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 의지와 행동이 중요하다. 정치권이 격동하고 있지만, 관이나 정치 주도의 노선을 놓고서는 이들의 이해관계가 묘하게 일치한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정권은 교체되지만 껍데기만 바뀌지 소프트웨어는 공전(空轉)을 거듭한다.
또 다른 무리가 새롭게 생겨나 온갖 분탕질을 하면서 국민의 주머니는 더 얇아지고, 이들의 배만 더 불리게 된다. 마구 내뱉는 궤변이나 진영 수호 논리는 더 가관이다. 이미 박물관에 들어가거나 쓰레기 매립장에나 가 있어야 할 법이나 제도들이 버젓이 작동한다. 무지한 것인지, 아니면 깔아뭉개는 것인지 둘 중 하나다. 세금 폭탄에다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오는 부패나 비리, 국가 예산의 무분별한 남용을 접하면서 민초의 한숨은 쉴 새가 없다. 언젠가는 불어 터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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