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편지, 그리고 라임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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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석 기자페이지 + 입력 2020-10-22 00:02:47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은 신영복이 통혁당 사건으로 옥중 생활을 하면서 쓴 편지를 모은 책이다. 저자가 20대에서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 20년20일간 영어의 몸으로 지내며 자신의 고뇌를 담담한 필체로 써내려가 호응을 받았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이 작품의 제목이 떠오른 것은 최근 감옥으로부터 나온 편지로 인해 대한민국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바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중단 사태(라임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다.

특히 정치권에선 김 전 회장의 발언에 희비가 엇갈린다. 김 전 회장을 두고 ‘사기꾼’이라고 하던 여권 인사는 그가 입장문을 통해 여권뿐 아니라 야권 인사에게도 로비를 벌였고 현직 검사를 접대했으며, 자신을 잡아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소리를 듣자 ‘검찰게이트’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며칠 사이에 같은 사람의 발언에 대한 신뢰도가 하늘과 땅을 오가고 있다.

이는 보수진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얼마 전 김 전 회장이 광주MBC 사장을 지낸 이강세 전 스타모빌리티 대표를 통해 여권 인사들에 로비를 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야권은 일제히 ‘권력형 게이트’라고 빠른 수사를 촉구했다. 김 전 회장의 입장문이 나오자 이제는 “고도로 기획된 정치 공작”이라거나 “공작정치 시즌2”라며 신빙성에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김 전 회장 발언의 신빙성을 따지기 이전에 그가 재판받는 혐의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김 전 회장은 경기도 버스회사 수원여객 인수 과정에서 회사자금 241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영장이 청구된 뒤 잠적했다. 이후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과 함께 수사망을 피해 도주행각을 펼치다 5개월만인 올해 4월 체포됐다.

당시 김 전 회장을 체포한 경찰은 압수한 현금 60억여원도 함께 송치했다. 그는 이 전 부사장과 함께 은신해있던 서울 성북구 빌라에 현금 5억3000만원을, 서울의 한 물품보관소에 나머지 55억원을 보관했다. 김 전 회장은 경찰에서 “55억원이 든 캐리어 가방 3개를 운반하다가 너무 무거워 허리를 다쳤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스타모빌리티의 회사 자금 517억원을 횡령한 혐의와 재향군인회상조회를 인수한 뒤 300억원대의 고객 예탁금을 빼돌린 혐의도 받고 있다. 한 마디로 다수의 금융범죄를 저지른 금융범죄자라고 볼 수 있다.

1조7000억원에 가까운 피해액이 발생한 대형 금융범죄의 주범격인 인물이 한마디 할 때마다 정치권이 흔들린다. 여권 인사를 거론하면 야당이 반기고 야권 인사나 문재인정부와 사이가 나쁜 보수인사의 이름이 오르내리면 여권이 공세를 펼친다. 그의 한마디에 대한민국 정치권이 울고 웃는다. 이는 정치권 스스로 자신의 격을 떨어뜨리는 행위다.

정치와 금융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얻어 이를 바탕으로 정치력을 발휘한다. 금융도 예금주나 투자자의 신뢰를 얻어야 돈을 모으고 이를 기반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

지금 정치권이 신경을 써야할 곳은 김 전 회장의 입이 아니라 바로 라임과 옵티머스 등 각종 펀드 환매중단 사태로 인해 돈을 잃은 피해자들이다. 피해자들은 거액의 자산가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이웃들이다. 평생을 땀 흘려 일해 모은 노후자금을, 직원 몇 명 안 되는 작은 공장을 운영하면서 직원 월급 한 푼 더 주기 위해 모은 돈을 몇 십 년 거래하던 금융기관을 믿고 맡겼다가 한순간에 잃은 사람들이다. 평생 시위나 집회는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가 절박함에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다.

사회란 구성원의 아픔을 서로 살펴 줘야 한다. 정치권이 이번 사태를 정쟁의 소재로 이용하는데 급급하기 보다는 우리 이웃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데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얻어 정치력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한원석 wsha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