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적 상속세제, 장수기업은 ‘그림의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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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범 기자페이지 + 입력 2020-10-27 00:02:10

최근 2세대 경영인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인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끌고 우리나라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2세대 경영인들의 안타까운 별세 소식이 잇따라 이어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12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별세한 데 이어 25일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정몽구 회장의 뒤를 이어 정의선 부회장이 신임 회장에 올랐다. 재계 세대교체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재계 안팎에선 상속세에 대한 우려가 쏟아져 나온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이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높다보니 자칫 상속세가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대기업뿐 아니라 대다수 중견·중소기업인들 사이에선 한국에선 장수기업이 나올래야 나올 수 없다는 푸념이 터져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상속세의 명목 최고세율은 50%에 달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2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이마저도 지분 상속으로 경영권을 넘겨주는 기업 승계 땐 세율이 더 높아져 무려 60% 수준에 달한다. 말그대로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을 자랑한다.

그나마 상속세 부담을 낮춰주는 ‘가업상속공제’가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2세 기업인이 7년 간 업종과 자산을 변경해선 안되고, 고용 인원도 물려받을 당시의 8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대기업은 아예 혜택에서 제외됐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후관리 조건을 모두 지키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이 중 하나라도 이행하지 않으면 혜택받은 세금은 다시 토해내야 한다. 시장 상황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선 사실상 정부가 기업을 뺏어가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껏 피땀 흘려가며 평생 일궈 온 기업의 경영을 중단하거나 사모펀드에 팔아서 현금으로 환원하는 오너들이 적지 않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사실상 가업을 잇기도 어려울뿐더러 회사를 키울 유인도 낮다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가업 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지원해줘도 모자랄 판에 경영의지를 꺾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오히려 지금과 같이 높은 상속세를 부과하는 행위는 기업의 편법·불법 상속을 부추기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대다수 중견·중소기업인들은 돈보다 중요한 게 안정적인 가업승계를 통한 지속가능 경영이라고 입을 모은다. 막말로 일자리 창출과 경제 발전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면 기업을 경영하는 것보다 기업을 판 자금으로 안정적인 부동산에 투자한 뒤 부동산을 상속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실제 부동산 상속은 과세표준 현실화가 낮아 실효세율은 35%에 불과하다. 경영권을 넘겨주는 기업승계 세율이 최대 60%임을 감안하면 단순히 놓고 비교해봐도 2배 가량 차이난다. 일자리 창출과 투자의 근간이 되는 기업 상속이 오히려 불로소득인 부동산 상속보다 비싼 비용을 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기업의 상속세를 완화해 기업가 정신을 독려하는 건 이미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기업의 성장이 곧 국가경제 발전으로 이어지는 만큼 선진국에선 기업이 영속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세금 부담을 낮추거나 아예 폐지하는 추세다. 기업 승계가 불로소득이라는 인식보단 ‘경제의 선순환’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국가경제 발전과 고용창출을 유지 여부는 원활한 가업승계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상 과도한 상속세야말로 가장 먼저 개선돼야 할 반기업 정책의 핵심이다.

임현범 hby6609@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