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협력 노사관계, 선택 아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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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기자페이지 + 입력 2020-11-06 00:02:16

산업계뿐만 아니라 재계 거목(巨木)으로 칭송받은 이건희 회장이 영면했다. 이에 따라 회장직 공석을 장남 이재용 부회장이 채울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책임감도 한 층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을 향한 과감한 변화와 시도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3일 삼성전자 노사가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상견례를 가진 뒤 첫 단체교섭을 진행했다. 이는 이병철 선대회장부터 이건희 회장까지 줄곧 무노조 경영을 기조를 이어온 지 51년 만에 타파하는 것이다. “눈에 흙이 들어와도 노조는 안된다”는 이병철 선대회장의 유훈을 탈피하고 ‘뉴삼성’ 행보에 한층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의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새롭게 탈바꿈하겠다는 뜻을 비치고 ‘뉴삼성’ 비전을 제시한 바 있고 반년 만에 협력적 노사관계의 장이 마련됐다.

노사 교섭위원들은 단체교섭과 관련한 기본 원칙과 함께 교섭위원 활동시간 보장, 단체교섭 준비를 위한 임시사무실 제공 등의 내용이 담긴 기본 합의서에 서명했다. 양측은 앞서 두 차례 실무협의를 진행하고, 교섭위원 구성, 교섭 일시, 장소, 방식, 조합 활동 보장 등 기본 원칙에 대해 의견을 나눈 바 있다.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노사는 동반자로서 신뢰 구축을 다짐했다.

나기홍 삼성전자 부사장은 “이 자리는 삼성의 새로운 노사관계, 노사문화를 만들어가는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다”며 “노사 모두가 상호 이해하고 동반자로서의 중요성도 인식해가면서 상생과 협력적인 노사관계의 모델을 만들어가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노사는 차기 교섭을 2주 뒤인 17일 날 열고 이후 한 달에 4번 정기 교섭과 필요 시 실무 교섭을 여는 일에도 합의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자타공인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위용을 과시하는 만큼 이번 교섭은 상당히 큰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재확산 및 미국 대선 불확실성 등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상생의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국민들은 우리 경제에 보다 더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아울러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경영 바통을 이어받은 정의선 회장의 행보도 새삼 주목된다. 지난달 중순 회장직 취임 후 보름 뒤에 처음으로 노조 지부장을 만나 자동차산업 격변기를 함께 극복하자고 요청한 바 있다. 무엇보다 현대차그룹 회장이 노조 집행부를 만난 건 19년 만의 일이며 새로운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정 회장은 “전기차로 인한 신산업 시대에 닥쳐올 격변을 노사가 함께 헤쳐 나가야 한다”며 “직원의 만족이 회사발전과 일치될 수 있도록 함께 방법을 찾아가자”고 당부했다. 그만큼 노사관계의 중요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에 노조 측은 “품질문제에 있어 노사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함께 노력하자”고 화답하고 조합원들이 회사에 자부심을 갖게 해달라고 했다. 투쟁 일변도에서 탈피하려는 모습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앞서 현대차 노조는 소위 ‘강성노조’ 대표주자라는 수식어가 뒤따르기도 했다. 특히 매년동안 파업이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기 일쑤였는데 올해는 11년 만에 임금을 동결했고, 2년 연속 무분규 합의도 이뤄내 주목받았다. 각종 대내외적 변수로 상황이 좋지 않은 점들을 고려해봤을 때 이는 분명 의미있는 행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산업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경직된 노동구조와 거듭된 노사갈등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로 손 꼽힌다. 국내 재계 1, 2위를 달리고 있는 두 그룹이 상생협력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과거와 달리 최근엔 노조라 하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곱지 못한 시각을 보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기업이 처한 어려움은 외면한 채 본인들만의 이익을 더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여왔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노조가 요구하는 임금 인상과 고용 안정도 결국은 기업이 발전하고 살아남아야만 가능한데, 마치 기업이 망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파업과 투쟁을 강행해서다.

WEF에서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가경쟁력 순위는 141개국 중 13위였지만 노동시장 유연성은 97위로 하위권이었다. ‘노사협력’ 점수는 3.59점으로 141개국 중 130위였다. 노사관계가 개선되는 것만으로도 청년실업률 해소와 해외로부터 투자 유치가 용이해진다는 결과가 있을 정도로 노사관계에서 만큼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삼성과 현대차그룹이 상생협력적 노사관계 구축에 나선만큼 서로 이해하고 공존하는 노사 문화가 재계 전반에 자리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온 노사관계를 상생과 협력으로 전환해야만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기업의 성장이 곧 국가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만큼 합리적인 노사관계 구축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