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생명의 국민목숨값 전용 ‘자의인가 타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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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생명, 고객보험금 이용한 계열사 무단지원에 금감원 징계
계열사 부당지원, 전문경영인 판단 만으로 보기엔 다소 무리
그룹·총수 도덕성 타격 우려, 여승주 책임지고 사태 매듭져야

김신 기자페이지 + 입력 2020-11-09 00:02:59

생명보험, 단어 의미 그대로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금융상품이다. 사전적 의미는 우발적으로 발생한 생명·건강 위험에 경제적으로 대처하는 금융상품이지만 실상은 살아생전 차곡차곡 쌓아 놓은 목숨 값에 가깝다. 가입자 입장에선 잃어버린 생명을 되찾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부양가족의 생계만큼은 책임지기 위해 마련한 최후의 수단이 바로 생명보험이다.

그래서 생명보험사에게는 죽어서도 가족을 책임지기 위한 가장의 눈물 어린 목숨 값을 안전하게 보관할 무거운 책임이 주어진다. 어느 기업하나 예외인 곳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생명보험사는 특히 투명하고 건전한 경영을 통해 기업의 영속성을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 생명보험사를 운영하는 주체에게 남다른 책임감과 도덕적 자질이 요구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최근 한화생명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일은 가볍게 넘기기엔 사안의 심각성이 크다. 금융당국의 처벌에서 그칠 게 아니라 사안이 불거져 나오게 된 배경, 주도한 인물, 무게감 있는 인물의 재발방지 약속 등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물론 관련 인물들에 대한 그룹 차원의 징계 또는 처벌도 뒤따라야 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금융위)는 지난 4일 오후 제19차 정례회의를 열고 한화생명에 대한 금감원의 제재안을 원안 의결했다. 앞서 금감원은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에서 한화생명에 대해 중징계인 기관경고 조치와 함께 17억원의 과징금 부과를 결정한 바 있다. 관련 임직원에 대해서도 문책경고, 주의적 경고 등으로 징계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5월부터 두 달간 진행한 한화생명에 대한 종합검사를 진행해 한화생명의 계열사 부당지원 사실을 적발했다. 한화생명은 자사 소유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계열사인 한화타임월드가 운영하는 한화갤러리아 면세점을 입주시키며 공사비도 받지 않고 무료로 인테리어를 해줬다.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사는 대주주에게 부동산 등 유·무형 자산을 무료로 제공하거나 정상 범위를 벗어난 가격으로 매매·교환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감원은 한화생명이 이 같은 조항을 어겼다며 ‘대주주 거래 제한 위반’으로 판단했다. 지난 6월 말 기준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한화생명의 지분 1.75%를 소유 중이다.

드러난 사실만 놓고 보면 이번 사안은 한화생명이 대주주인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를 부당지원한 것으로 정리된다. 여느 기업의 계열사 부당지원처럼 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선 이번 사안은 발각될 경우 금융당국의 중징계가 뒤따르고 그룹 차원의 이미지 타격도 불가피한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타 계열사를 지원한 일이다.

과연 이러한 일을 한화생명 단독으로 결정하고 처리했을 지 의구심이 든다. 혹은 한화생명 외에 타 계열사, 사실상 그룹 전체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의 의중 없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 금융위 결정으로 상당한 손실이 예상되는데도 그룹 차원의 어떠한 조치도 없이 잠잠한 것을 보면 전문경영인 신분인 한화생명 수장의 과잉충성으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한화생명의 주력 사업이 생명보험업이라는 점은 사안에 심각성을 더하는 부분이다. 한화생명이 법을 어기고 계열사에게 지원한 돈은 고객들이 납부한 보험금이거나 혹은 보험금을 운영해 얻은 수익이다. 고객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경우 그 유가족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돌려줘야 할 돈이다. 죽어서라도 가족을 책임지기 위한 누군가의 목숨 값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생명보험사 돈에 대한 부적절한 전용행위에 강력한 처벌이 뒤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리하면 한화생명의 대주주 부당지원에 따른 금융위 징계 사태는 ‘국민 목숨값 가지고 장난쳤다’고 지탄받을만한 심각한 사안이다. 단순히 금융당국의 제재에서 그칠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화그룹 자체적으로 사안이 나오게 된 배경, 주도한 인물, 재발방지 약속, 관련자 처벌 등에 나서야 함이 마땅하다.

현재 한화생명을 이끄는 여승주 사장의 책임 있는 자세도 요구된다. 그룹 자체의 도덕성이 흔들려 자칫 그룹과 오너 일가에게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만큼 책임지고 사태를 매듭져야 한다. 직접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혹은 그 이상의 결정이 필요하다. 여 사장의 결정에 그룹 이미지와 총수 도덕적 자질의 평가가 달려 있다.

김신 s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