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영(令)’ 안서는 위기의 금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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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석 기자페이지 + 입력 2020-11-12 00:02:47

금융감독원(금감원)의 조치에 금융사들이 반발하면서 금감원의 위상이 위기에 처했다. 한마디로 ‘영(令)’이 안 선다는 얘기다.

금감원은 10일 밤 라임펀드를 판매한 신한금융투자·대신증권·KB증권 3곳의 전·현직 CEO(최고경영자)들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제재심의위원회가 세 차례나 열린 끝에 내려진 결정이다.

박정림 KB증권 대표는 기존 직무정지에서 문책경고로 한 단계 낮춰졌다. 나재철 전 대신증권 대표(현 금융투자협회장)과 김형진 전 신한금융투자 대표, 윤경은 전 KB증권 대표는 사전 통보와 마찬가지로 직무정지 결정이 내려졌다. 별도 안건으로 제재 대상이 된 김성현 KB증권 대표와 김병철 전 신한금융투자 대표는 기존 문책경고에서 주의적경고로 낮춰졌다.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5단계로 나뉘는데, 이 중 3단계인 문책경고 이상을 받게 되면 해당 인물들은 연임은 물론 3~5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이와 함께 CEO와는 별도로 판매사에 대해 중징계도 내려졌다. KB증권, 신한금융투자에 대해서 사모펀드 판매와 관련해 업무 일부정지와 과태료를 부과키로 했다. 특히 대신증권의 경우 라임펀드를 1조원 이상 판매한 반포WM센터 폐쇄도 권고 사항으로 결정됐다.

금감원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과 시행령에 나온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구절을 근거로 경영진 제재를 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반면 증권사 측은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에서 CEO 중징계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맞섰다.

금감원의 이번 조치에 대해 해당 회사들은 이후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를 거쳐 최종 확정되는 결정을 일단 지켜보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증권가에선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라고 성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감원 전·현직 직원이 라임·옵티머스 사태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난 데 대해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달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일부 직원만 간접적으로 연루됐다. 큰 문제가 있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감원 논리대로라면 윤 원장 역시 내부 통제 부실의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청와대 파견 중이던 금감원 현직 간부가 내부보고서를 라임운용 임원에게 제공했고, 상주 검사인력을 배치해 라임펀드를 통제하고 있던 와중인 지난 1월에는 라임펀드에서 스타모빌리티로 200억원이 유출돼 횡령됐지만 이를 막지 못했다.

다른 금융업권에서도 금감원의 ‘영’은 먹히지 않고 있다. 최근 한 시민단체가 제기한 생명보험사 즉시연금 미지급 반환청구 공동소송 1심에서 보험가입자인 원고의 첫 승소판결이 나왔다. 앞서 금감원은 즉시연금과 관련해 보험금 지급지시를 내렸지만 생보사들은 이를 무시했다. 결국 시민단체가 나서 소송인단을 모집할 수밖에 없었다.

금감원의 영이 서지 않는 이유로 ‘내로남불’적인 태도뿐만 아니라 금감원 예산의 문제도 지적된다. 지난해 금감원 예산 3556억원 가운데 금감원의 감독·검사를 대가로 금융사들이 갹출해서 내는 감독분담금은 2772억원으로 전체의 78%를 차지했다. 금융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우리 돈 받아다가…’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금감원을 ‘반관반민’이 아닌 공공기관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더 이상 예산을 주는 금융사의 눈치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예산 몇천억원 아끼려다 감독 부실로 수조원대의 피해가 발생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한원석 wsha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