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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원전비리 사태와 이를 수사하는 검찰에 대한 정부·여당의 노골적인 압박 등으로 정국이 들썩이는 가운데 또 다른 권력형 비리의혹의 피해자들의 시름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수조원대의 국민 피해를 낳은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펀드 환매중단 사태의 투자자들이다. 이들 사건은 대부분 권력 개입 의혹을 받고 있음에도 정국의 혼란으로 인해 여론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투자금을 날린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죽는 것 이상의 심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靑정책실장·국책은행 배경만 믿고 가입한 펀드 때문에 피 땀 서린 돈 전부 날렸다”
반월공단에서 25년 넘게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최창석 기업은행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장은 펀드 환매중단 사태로 7억원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평소 자주 거래하던 기업은행의 PB가 6개월 간 안정적으로 설비투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특별한 의심 없이 동의한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최 위원장은 “2018년 10월에 이듬해 4월 만기인 펀드에 부품 제조에 필요한 기계 관련 설비투자금을 넣었다”며 “나중에 대출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업은행 직원의 요청을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펀드 가입 당시 은행 PB가 최 위원장에게 상품을 사모펀드가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종의 불완전판매인 셈이다. 3% 정도 수익률이 나오는데 안정적이고 위험성이 적어 언제든지 회수를 할 수 있다는 설명만 했지만 국책은행인 기업은행 직원의 말은 최 위원장에게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최 위원장은 “그동안 PB가 외국에서 물건을 수입할 때의 환전부터 기업 자산관리까지 다 해줬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 없이 믿었다”며 “기업은행에서 운용·판매를 모두 하는 공모펀드인 줄 알았을 뿐 당시엔 디스커버리펀드나 사모펀드가 뭔지도 몰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최 위원장을 포함한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자들이 가장 분노하는 점은 기업은행의 거짓말이었다. 작년 4월 디스커버리펀드의 환매가 중단됐을 당시 기업은행 측은 운용사의 자산동결이 풀리면 곧바로 회수가 된다며 피해자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자금 회수는 없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올해 3월 피해자들은 기업은행디스커버리펀드사기피해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최 위원장은 “설비투자금을 빨리 써야하는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며 “환매 중단이 현실화되자 피해자들이 빠르게 모였다. 모두들 오랫동안 거래를 한 기업은행이 사기를 쳤다는 사실에 엄청난 배심감을 토로했다”고 설명했다.
‘디스커버리펀드’는 장하성 중국주재 한국대사(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동생 장하원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가 미국의 자산운용사 다이렉트랜딩인베스트먼트(DLI)의 특수목적법인(SPV) 다이렉트랜딩글로벌(DLG)의 사모사채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DLI의 대표가 수익률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적발되면서 작년 4월 DLI와 DLG의 자산이 모두 동결됐다. 그 뒤 국내에서 판매된 디스커버리펀드도 모두 환매가 중단됐다.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자들이 가장 의심하고 있는 대목은 기업은행이 미국 자산운용사의 자산 동결을 인지했냐는 점이다. 최 위원장은 “기업은행이 디스커버리펀드 판매를 시작한 게 2017년 4월이었다. 펀드 판매 전부터 이미 DLI는 부실화와 회계부정이 진행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고객한테 팔았다면 몰랐을 리가 없다. 만일 몰랐더라도 국책은행이 위험한 펀드를 사전검증하지 않고 판매했기에 더 큰 문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자들은 기업은행의 대처에 대해서도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최 위원장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업은행은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자에게 투자액의 50%를 가지급하는 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여론 무마용에 불과할 뿐 아니라 피해자들이 원하는 배상방식도 아니다. 현재 피해자들은 금감원 검사와 무관하게 기업은행과 IBK투자증권에 자율배상 100%를 요구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으로 가면 대부분 중소기업 법인으로 구성된 피해자 측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현재 최 위원장을 포함해 피해자들은 돌아가면서 기업은행과 IBK투자증권, 금감원 등에서 매일 확성기 집회를 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자들 중에는 은퇴자금을 잃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다. 그분들도 오고 싶어 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여건이 안 돼서 오지 못하고 계신다”며 안타까워했다.
“육아와 일 병행하며 10년간 모은 워킹맘의 전 재산 꿀꺽한 라임펀드 진범을 찾아달라”
서울시내 한 지하철역 근처에서 만난 이경임 씨는 11살, 6살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직장생활과 가사일로 눈코 틀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는 이 씨는 안타깝게도 올해 1월 이후 하루도 편하게 발 뻗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정기예금처럼 안전한 상품이라는 은행 직원의 말을 듣고 라임 CI펀드 등에 4억원을 투자했다가 날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4억원은 이 씨의 청춘과 땀이 서린 소중한 돈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10년 동안 매월 200만원씩 적금을 들어 모은 2억5000만원과 결혼 당시 남편이 모은 돈 1억5000만원을 합친 돈이다. 최초 전세자금으로 이용하다 남편 직장 문제로 이사를 가게 돼 월세 집을 얻으면서 들어온 것을 잠시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5월 이 씨는 전세보증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시중은행 PWM센터를 찾아 3% 수익률의 안정적인 채권을 원한다고 했다. 그러자 상품판매 PB는 라임CI펀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무조건 안전한 펀드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이 씨가 보관 중인 신규가입신청서를 포함한 펀드 가입 당시 받았던 자료에는 ‘100% 신용 보험가입으로 원리금 회수 안정성이 제고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씨는 “전세 보증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은행에 문의를 했더니 판매사PB는 라임CI펀드가 무역 매출채권에 투자하고 100% 보험에 가입돼 있어서 원금과 이자가 보장된다는 식으로 소개했다”며 “정기예금보다 2배 정도 높은 고수익률 상품임에도 안전하다고 하니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결국 이 씨가 투자한 CI펀드는 올해 1월 환매가 중단됐다.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에 당황한 이 씨는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PB는 CI펀드에 관한 얘기를 피하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면서 오히려 본인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이 씨가 사흘 뒤 다시 은행을 찾았을 때 해당 PB는 타 지점으로 인사 발령이 난 상태였다.
이후 이 씨는 충격을 뒤로 한 채 1월 15일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라임CI연대’를 결성하고 집회를 시작했다. 금감원 앞에서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의 기자회견도 진행했다. 현재는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 공대위’와 함께 연합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금감원 분조위는 올해 6월 말에 2018년 11월 이후 판매된 플루토TF-1호 분쟁조정 신청 4건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적용해 100% 배상 결정을 내렸다. 이미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인 펀드의 부실을 감추고 판매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따라 플루토TF-1호 판매사 4곳 모두 금감원 분조위의 100% 배상 권고를 수용한 상태다.
문제는 이 씨가 가입한 CI펀드가 당시 부실펀드로 판명됐던 플루토TF-1호를 ‘돌려막기’ 위해 기획된 펀드였음에도 해당 펀드 상품에 투자한 이들에 대해서는 배상 결정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씨는 “기획부터 사기로 판명된 플루토TF-1호를 재구조화하기 위해 탄생한 CI펀드도 기획부터 부실펀드임이 너무나 자명하다”면서 “계약취소로 가지 않고 단순 불완전판매로 몰고 가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했고 더 나아가서는 금감원, 정부, 국회 등에 대해서도 불신하게 됐다”며 “내 돈은 남이 찾아줄 수 없다는 점과 금융지식이 부족하면 내 돈을 찾을 수도, 지킬 수도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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