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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간에 가능하다면 올해는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는 말이 떠돈다. 그만큼 끔찍한 한 해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연초부터 시작된 코로나가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더 기승을 부린다.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우울하다. 바뀐 일상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고 하지만 정상적인 삶의 본질과는 괴리가 크다. 다만 우리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지구촌 전체가 몸살을 앓는 팬데믹이라는 점에서 누구 탓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국가가 방역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것 조차까지 이해는 간다. 하지만 연초부터 계속된 정치 파행과 이에 따른 경제적 충격으로 민심은 갈수록 부글부글 끓는다. 도처에 희망보다 절망이, 현재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판사판으로 살려는 무리가 많아진다. 극단적 이기주의는 더 기승을 부린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이 판에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위대한 2020년’이라고 언급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것이 맞는가 하는 착각이 든다.
우리 정치의 고질적 폐해나 경제의 성장동력 상실은 코로나와는 무관한 것이다. 위기가 닥치면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그러나 위기관리 능력은 실종되고, 정책 우선순위는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1년 내내 공허한 검찰 개혁에 사활을 건다. 고위 공직자 비리를 수사한다는 명목의 최고 통치자 직속의 공수처를 출범하겠다고 안달이다. 이는 코로나로 실의에 빠진 민생을 살리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대다수의 선진국에서 현 집권 세력이 고집하고 있는 공수처와 유사한 기구를 가진 나라는 없다. 구태여 찾아보면 공안 통치를 하는 중국의 국가감찰위원회 정도다. 중국이나 북한과 같이 우리 내부의 고위 공직자들의 부패와 비리가 만연하다는 것을 자인하고 있는 것인가? 최근 미국의 뇌물 감시 민간 비정부 전문기구인 ‘트레이스 인터내셔날’이 발표한 한국의 청렴 순위는 22위로 일본과 미국의 사이에 있다. 엉뚱한 꼼수가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정국을 요동치게 한다. 최소한 고위 공직자들이 정치권보다는 상대적으로 맑다.
경제는 하향평준화로 아예 방향을 튼 듯하다. 상향평준화는 하지 못하더라도 현상 유지는 해주어야 할 텐데 이미 루비콘강을 건너가고 있다. 진영으로 갈라져 가진 자들의 파이를 뺏지 못해 안달이다. 상대적으로 덜 가진 자들이 이에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에게도 피해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동산 대란이다. 시장 작동 원리에 이념이나 색깔의 복선을 깔고 접근하면 부작용은 필연이다. 주거의 질은 떨어지고 가격만 오르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수요자들에게 돌아간다. 궁극적으로 가지지 못한 자들이 더 큰 피해를 본다.
도시의 경쟁력은 후퇴하고, 삶의 질 측면에서 뒷순위 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국민의 눈높이나 욕구는 이미 글로벌 최고 수준에 도달하고 있지만, 국가의 정책은 정확하게 이와 정반대다. 얼마 전 그만둔 집권 여당의 대표가 서울은 천박하고, 부산은 초라하다고 해서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이 이를 자행하고 있지나 않은지 반문하고 싶다.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중국도 이런 짓은 하지 않는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삽시간, 다시 세워 올리는 데는 배 이상의 희생과 대가 치러야
세금 폭탄으로 인한 국민적 불만은 어떤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세금으로 인한 국민의 스트레스가 극으로 치닫고 있는 것에 비례해 위정자들의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세금 집행은 점입가경이다. 그들에겐 마치 주머니 속의 쌈짓돈이다. 그래서 울화가 더 치밀어 오른다. 코로나로 인해 재정 씀씀이가 추가로 증가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지만 다른 부문의 세출을 줄이려는 노력이 실종된 지 오래다. 국민의 피와 땀이 묻은 돈을 집행하면서 필요한 재정준칙이나 건전성은 시야에 없다.
냉정한 국민적 시각에서 국가 예산을 들여다보면 줄일 여지가 많다. 불요불급한 선심성이나 지역 이기에서 비롯되고 있는 예산이 수두룩하다. 여·야의 밀실 야합이라는 구태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훗날이야 어떻게 되는 우선 당겨 쓰고 보자는 비겁한 심보다. 대다수의 국민은 물론이고, 엄청난 부메랑을 짊어져야 하는 미래 세대까지 아직은 조세 저항이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는다. 국민이 무관심할수록 정치의 도덕 불감증이나 정부의 비대화와 비효율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또 하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원전 폐기다. 아집인지 아니면 명확한 대안(代案)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정치가 과학과 경제를 삼킨 또 하나의 폭거다. 작금의 글로벌 트렌드는 탈석탄(석유)·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맞다. 이를 위해 각국은 긴 호흡으로 친환경 비율을 높이는 에너지 포트폴리오 전략을 점진적으로 구사해 나가고 있다. 부가적으로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값싸고 깨끗한 전기 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원전의 중요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으며, 한때 이를 걷어찼던 국가들도 다시 주워 담고 있다. 미국·일본·프랑스·러시아 등이 이들이다. 탈원전을 고수하고 있는 독일은 부족한 전기를 프랑스 원전으로부터 수입해 쓰고 있는 판이다. 중국은 ‘원전 굴기’를 선언하면서 내친김에 고속철과 같이 세계 1등을 넘본다. 가동 중인 48기에 더해 14기를 건설 중이며, 42기의 추가 건설 계획을 갖고 있기도 하다. 남들은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가는데 1등 원전 국가의 저력을 스스로 망치고 있는 꼴이다.
이 모든 파행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타격은 치명적이다. 현 집권 세력은 기존의 것을 갈아엎고 판을 다시 짜는 데에 혈안이다. 철저한 이분법적 사고로 우리 사회의 주류와 비주류의 도치를 노린다. 일반 국민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기업은 사용자와 노동자로 나누어 철저하게 약자의 편을 돕는 척한다. 한편 한동안 소외돼 있던 지식층이나 전문가 그룹을 전면에 내세워 사회적 가치와 상식을 역전시키는 소총수로 활용한다.
지금 힘이나 영향력을 과시하는 자들도 크게 두 부류로 분류된다. 하나의 무리는 정상적인 경제 활동보다 주변에서 비정상적 행위로 일관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호시탐탐 기다린다. 다른 하나의 무리는 내로남불의 일상을 철저하게 베일에 가리면서 권력을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기회가 오면 덥석 문다. 진영의 우리에 갇혀 있는 자들은 그들에게도 반전의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신념으로 변함없는 지지를 보낸다. 시간이 지나면 밑천이 드러나고, 진영 내부도 사분오열된다. 폭주 기관차의 종착역이 멀지 않은 것 같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다시 쌓아 올리는 데는 이보다 훨씬 많은 희생이 뒤따른다는 점에서 장차 다가올 충격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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