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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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오주한 정치전문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0-12-17 00:02:16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4세기 로마의 병법가 푸블리우스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가 남긴 말이다. 논지는 이 세상에 악(惡)이 존재하는 이상 국방에 충실해야 역설적으로 평화가 보장된다는 것으로 유비무환(有備無患)과 일맥상통한다.

이 격언은 3차 세계대전 억제 원인으로 작용했다. 냉전 시기 국제사회는 미국‧소련을 맹주로 하는 자유‧공산 진영으로 나뉘어 범지구적으로 대립했다. 양측 간 전면전이 발발하지 않았던 배경에는 상호확증파괴(MAD) 전략이 있었다.

20세기 초중반 미국 물리학자였던 존 폰 노이만이 제안한 MAD는 압도적 군비 증강을 통해 상대국에 두려움을 심어줌으로써 전쟁을 사전 방지한다는 개념이다. 소련은 미국의 군사력 앞에 “워싱턴을 치면 모스크바도 무사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갖고 감히 3차 대전에 나서지 못했다. 양측의 힘이 비등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평화였다.

반면 스스로 군사‧사상적 무장해제에 나선 결과 침략을 자초한 나라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1975년 멸망한 베트남공화국(월남)이다. 월남에서 자생한 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은 월맹과 결탁해 월남 도처에서 변란을 일으켰다. 나아가 반전(反戰)을 주장하면서 국민들을 선동해 미군 철수를 기도했다. 월남 정부를 반대하며 소신(燒身)공양에 나섰던 고승 틱꽝득(釋廣德)도 마타도어의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결과는 월맹의 전면 남침과 NLF의 봉기였다. 월맹은 1968년 구정공세 등 총력전을 펼쳤으며 NLF는 호응해 여론전에 주력했다.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던 베트콩을 월남 경찰서장이 즉결 처형하는 사진이 오히려 무고한 시민 희생 현장으로 둔갑돼 유포되는 등 난리통을 겪은 끝에 진절머리가 난 미군은 월남에서 전격 철수했다.

사이공(현 호치민)이 월맹에 함락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규모의 보트피플(해상난민)이 발생했음은 물론 이웃 캄보디아까지 공산화 돼 양민 200만명이 학살되는 킬링필드의 참극이 벌어졌다. 이 모든 게 전쟁에 대비하기는커녕 스스로 무장해제했기에 빚어진 비극이었다.

근래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송 의원은 14일 국회 본회의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에서 미국을 향해 “자기네들은 5000개가 넘는 핵무기를 갖고 해마다 핵무기 전달 수단을 발전시키면서 어떻게 북한, 이란에게 핵을 가지지 말라고 강요할 수 있나. 핵확산금지조약(NPT)은 대표적 불평등 조약이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최소한의 선악도 구별 못했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연천 포격, 금강산관광객‧실종공무원 총살 등 2000년대 들어서도 무수히 벌어졌던 도발은 북한을 이성적 대화상대로 보기 어렵게끔 했다.

비록 송 의원은 북한 옹호 목적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발언 자체 해석만 두고 본다면 “우리 시대의 평화”를 외치며 군비 증강에 나섰던 히틀러와 히로히토도 “미제(美帝) 대항 차원” 등 할 말은 있게 된다. 악에 대해 그릇된 아량을 베풀려 한다는 비판을 자초하기에 앞서 악에 맞서 평화를 지킬 방안을 강구하는 게 국회의원 본연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오주한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오주한 정치전문기자 jhoh@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