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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사건은 죄가 15개, 재판을 40번이나 해
/13명 변호인이 투입돼 방어권도 충분하게 행사
/재판부, 500쪽 넘는 판결로 모든 이유 다 밝혀
/부장판사 3명이 인정한 사실관계이니 존중돼야
/정치권, 비난 자제하고 항소심 결과를 지켜봐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 씨에 대한 판결이 23일 선고됐다. 실형 4년에 벌금이 5억원, 추징금도 약 1억3800만원에 이른다. 이 판결을 두고 ‘죽어봐라 이 새끼들아 이런 식의 판결’(TBS 뉴스공장 김어준 진행자), ‘염치도 자신들의 행동이 몰고 올 혼란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도 찾아 볼 수 없다’(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는 격앙된 비난이 쏟아졌고, 급기야 이 사건 판사들을 탄핵하자는 청와대 청원 동의가 순식간에 30만명을 돌파했다. ‘표창장 위조에 4년은 과하고 1년이면 충분하다’(판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는 비판은 차라리 점잖다고 할 판국이다.
그런데 비난의 상대방인 재판부는 아무 말이 없다. 할 말이 없어서인가. 그렇지 않다. 판사는 이미 판결로써 할 말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판결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판결문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런데 판결문을 여는 순간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분량이 무려 571페이지이고 이례적으로 판결문의 목차도 17페이지나 붙은 것이었다. 이 정도면 거의 박사급 논문이 아닐 수가 없다. 그만큼 재판이 방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사건 재판을 처음부터 짚어보기로 했다.
정경심은 작년 9월 9일 동양대 총장 표창장 위조 건 기소를 시작으로 11월 11일, 12월 18일에 걸쳐서 총 3번 기소됐다. 기소된 공소사실은 무려 22개. 죄목은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위조공문서행사, 허위작성공문서행사, 위계공무집행방해, 사기, 보조금관리에관한법률위반, 업무상횡령, 자본시장법위반(허위변경보고), 자본시장법위반(미공개중요정보이용), 범죄수익은닉규제법위반, 금융실명법위반, 증거인멸교사, 증거위조교사, 증거은닉교사 등 15개였다. 출석한 증인은 총 60명. 재판 횟수만도 36번. 올해 들어서는 거의 매주 재판이 열렸다. 이 정도 볼륨의 사건은 보통의 법조인이 평생 한 번 접하기도 어려울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사람도 봐야 하는데, 우선 판사는 3명이고 전원이 부장판사였으니 경력 20년은 족히 된다. 공판을 맡은 검사는 무려 20명. 변호인도 13명이었는데 변호를 맡은 곳 중에는 여권 정치인 사건을 도맡으며 이재명(경기도지사) 무죄를 이끌어 낸 법무법인LKB도 포함돼 있어 변호 능력을 의심할 이유는 없고 방어권도 충분히 행사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정도 인력이 투입된 재판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만큼은 항소가 제기돼도 쉽게 뒤집히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재판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야 선고 결과만 보고서 격앙할 수 있겠지만 수십 명의 노련한 검사와 변호인이 공방을 펼쳤고 경력 20년의 부장판사 3명이 일 년 내내 매달린 재판의 사실 인정에 오류를 상상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2심에서 새로운 증거가 제출되면 뒤집힐 수도 있겠지만 검찰이건 변호인이건 멀쩡한 증거를 숨겨 놓고 안 냈을 리는 없을 것이다. 혹시 변호인의 중요한 증거 신청을 재판부가 거절했다면 이 증거를 2심에서 다시 신청해 볼 수도 있겠으나 막강한 권력자의 부인이 연루돼 있고 전 국민의 관심도 쏠린 사건에서 재판부가 증거 신청을 안 받아줬을 리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인정된 혐의들을 살펴보면, 우선 정경심은 딸의 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진학을 위해 단국대, 공주대,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모 호텔, KIST, 동양대 등 6개 기관 명의의 체험 활동확인서, 인턴십 확인서, 표창장 등을 위조하거나 허위 작성해 이를 딸의 서울대와 부산대 의전원 지원에 제출해서 대학의 입학 사정 업무를 방해했다. 지원서 내용이 허위인지는 대학이 알아서 심사하면 되는데 이게 왜 업무방해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오래 전부터 속이려는 시도만 있으면 유죄를 인정해 왔다. 법원의 확립된 해석을 따른 것이라서 재판부를 비난할 수 없다. 그리고 부산대 의전원 탈락자와 정경심 딸의 점수 차이가 불과 1.16점으로 근소했다고 하니 동양대 총장 표창장과 허위의 경력 기재가 없었다면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펀드와 관련해서, 정경심은 코링크펀드의 실제 운영자인 조국의 조카로부터 취득한 미공개중요 정보를 이용해 WFM 주식을 매수하여 2억3000만원 상당의 부당한 이득을 얻었고, 남편이 청와대 민정수석에 취임하였음에도 공직자윤리법 적용을 면탈하려고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주식 거래를 했다. 사실 누구나 미공개정보를 이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이 죄는 이득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도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죄이다. 주식 차명거래는 죄질이 상당히 안 좋다. 그의 남편 조국이 취임한 민정수석은 검찰 등 권력기관 사정을 총괄하고 공직기강 확립, 반부패 업무를 담당하는 중요한 자리인데 그런 막중한 권력자의 부인이 2년 2개월 동안 매일 1회 이상 무려 790회나 차명 주식거래를 했다는 것은 정말 민망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조국이 이를 몰랐을지도 의문이다.
끝으로, 정경심은 남편에 대한 수사에 대비하고 자신의 범행도 감추기 위해 코링크PE 임직원들에게 증거 인멸을 지시했다. 코링크PE 직원들에게 증거 인멸을 지시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이 펀드가 오로지 조국 가족을 위한 펀드였음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판결문에는 형량을 그렇게 정한 양형의 이유도 나오는데 양형 기준에 따른 권고 범위가 이미 2년 6개월 이상이었다. 정상 참작할 사유가 크면 이보다 내려서 선고하겠지만 정경심에게는 안 좋은 사유가 훨씬 많았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허탈과 실망감을 준 점, 공직자윤리법을 무력화시키고 증권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저해한 점, 코링크PE 직원들에게 증거 인멸을 교사하는 바람에 진실 발견을 어렵게 하고 직원들도 처벌받는 결과를 초래한 점, 재판 내내 한 번도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하지 않은 점, 표창장 위조와 입시 비리 관련 증인들이 정치적 목적이나 개인적 이익을 위해 허위진술 했다고 주장하여 이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한 점, 객관적 물증이나 신빙성 있는 증언에 반해 계속 부인하고 비합리적인 주장을 계속한 점이 그것이었다.
결국 정경심에게는 징역 4년과 벌금 5억원이 선고됐다. 숙명여고 기말고사 시험문제를 쌍둥이 딸에게 유출한 아버지 교사에게 징역 3년 6개월이 선고된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보다 훨씬 많은 혐의가 인정된 이 사건의 징역 4년은 결코 과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벌금 5억원은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얻은 2억3000만원 상당 수익에 대한 당연한 환수인 것이다. 조국을 지지하는 일반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한 정치인은 말을 삼갔으면 한다. 재판부가 500페이지 넘는 판결문으로 말을 했으니 이젠 정경심과 그의 변호인들이 항소심에서 하는 말을 기다려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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