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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K리그1의 울산 현대는 현대중공업이 모기업인 프로 축구단이다. 1983년에 창단돼 그동안 허정무, 최강희, 김현석, GK 김병지, 유상철, 김신욱 등 기라성 같은 스타플레이를 배출하며 대한민국 축구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명문구단으로 꼽힌다. 2017년에는 K리그 구단 사상 최초로 500승을 거두기도 했다.
2012년 김호곤 감독이 지휘할 당시 울산은 최고의 대회로 최대의 우승 상금이 걸린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를 제패하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정작 K리그에서는 2005년 K리그 우승이 마지막이었다. 늘 2%가 부족해 정상 일보직전에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반면 같은 현대가(家)인 현대자동차가 모기업인 전북 현대 모터스는 보란 듯이 잘 나갔다. 최강희 감독이 이끌던 전북은 2015년 K리그 2연패, 그리고 2017년부터 2020년까지는 무려 4연패라는 대기록을 쌓았다. 올해 11월초 겨울비가 내리던 전주월드컵 경기장에서 거행된 K리그 시상식장에서 현대차 정의선 회장과 함께 환호하며 선수들을 격려하는 장면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인 권오갑 현대중공업 회장이었다.
‘작은 집’ 전북 현대의 우승 행진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에 대해 ‘한 지붕, 두 가족’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K리그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명문 구단들이다. 1995년에 창단한 전북이 잘 나갈수록 ‘큰 집’ 울산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2005년 이후 레전드급인 김정남, 김호곤 감독이 울산 지휘봉을 잡았고 조민국, 윤정환 등이 뒤를 이어 사령탑에 올랐지만 K리그 정상은 다가오지 않았다. K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였던 울산의 학성고등학교 출신인 김도훈을 2016년 12월 제10대 감독으로 영입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울산의 목표는 전북을 꺾고 오로지 K리그 정상에 서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울산구단은 국가 대표팀에서보다 소속 클럽팀에서 더욱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던 김 감독이 지도자로서 제격이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더구나 김 감독은 울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기에 울산 구단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다.
김 감독은 대표팀에서는 2인자 이미지가 강했지만 K리그에서는 오랜 기간 정상급 공격수로 군림했다. 전북 현대의 창단멤버였던 그는 2000년 K리그에서 27경기 15골로 득점왕을 차지했고, 성남 일화로 이적한 2003년에는 득점왕과 MVP를 휩쓸며 성남의 K리그 3연패를 이끌었다. 2005시즌이 끝난 후 K리그 257경기 114득점, 일본 프로축구 J리그 58경기 27득점의 화려한 성적을 남기고 11년 간의 현역 생활을 마무리한 김 감독에게 선수들의 경기력과 팀 성적을 경영하는 매니저인 사령탑이 되기 위한 수업은 꽤나 길었다. 그렇게 4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코치생활을 하며 착실하게 지도자 수업을 받은 김 감독은 2015년 1월 인천 유나이티드와 계약을 했다. 현역 은퇴 후 햇수로 10년 만에 감독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여러 감독들을 보좌하는 과정에서 보고 배우며 많은 것을 느꼈을 법하다.
코치 생활 10년 만에 지휘봉 잡아
김 감독은 감독 데뷔 후 처음 맡았던 인천에서는 만족할 만한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어려운 시민구단을 이끌면서 보여준 그의 용병술은 새 감독을 구하던 기존 K리그 구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장점을 가진 덕택에 김 감독은 2016 시즌이 끝난 뒤 울산과 계약하며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김 감독이 울산을 맡기 시작한 2017년은 K리그에 '전북 강점기'가 휘몰아친 시점이었다. 울산을 맡은 첫 해 리그 4위와 FA컵 우승으로 성과를 낸 김 감독은 2018년 3위로 팀 성적을 한 계단 더 끌어올렸다. 하지만 우승에 도전했던 작년에는 비기기만 해도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지만 지역 라이벌인 포항 스틸러스와의 최종전에서 패하며 우승이 거짓말처럼 물거품 됐다.
절치부심한 울산은 올 시즌을 앞두고 ‘타도 전북’을 외치며 국가대표 GK 조현우, 영국에서 돌아온 이청용 등을 영입하며 호화 멤버를 구성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시즌 내내 선두를 유지하던 울산은 스플릿 라운드 5경기에서 2승1무2패로 부진했고, 전북과의 ‘현대가 더비’에서는 3전 전패로 무너지며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다. 지독하게도 운이 없었다고 해야 할 판이다.
또다시 준우승에 그쳐 자칫 의욕이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김 감독은 2020시즌을 마친 뒤 팀을 정비해 아시아 각국 리그의 상위 팀만 출전하는 ACL에 출전했다. 11월 말 카타르에서 열린 ACL을 앞두고서 김 감독은 4년간의 계약이 끝났고, 구단과 계약 연장에 실패했다. 프로에서 2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격언이 생각난다. ACL 출전은 사령탑으로서 마지막 무대였다. 김 감독 자신도 2020년에 준우승만 두 차례 했기에 ACL 출전을 꺼렸지만 유종의 미를 거둬야겠다는 생각에 출사표를 던졌다.
마지막 대회에서 우승 꽃 피우다
ACL에서 울산은 9승1무로 아시아 정상을 밟을 수 있었다. 선수들은 울산을 떠나는 김 감독에게 우승을 선물해야 하겠다는 절실함으로 승승장구했다. 2년 연속 울산의 K리그 우승을 눈앞에서 놓쳤던 김 감독은 울산을 8년 만에 ACL 우승으로 이끌었다. ACL 우승 상금은 400만달러(약 46억5000만원)정도지만 조별 리그부터 토너먼트까지 승리할 때마다 누적되는 상금을 더하면 액수는 무려 50억원이 넘는다. 5억원에 불과한 K리그 우승상금에 10배가 넘는 액수다.
하지만 유럽 챔피언인 바이에른 뮌헨(독일) 등 각 대륙의 우승 클럽들이 출전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주최의 클럽월드컵에는 김 감독이 울산을 지휘하지 않는다. ACL 결승전을 끝으로 울산과 김 감독의 계약기간은 모두 끝났기 때문이다.
흔히 프로야구나 프로농구 등 다른 종목에서는 큰 대회에서 우승한 감독은 계약기간이 끝나더라도 재계약을 맺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우승 감독에 대한 예우 때문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충분한 시간과 투자를 받았음에도 울산의 K리그 우승이라는 미션을 달성하지 못했고, 결국 울산은 새로운 감독과의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김 감독은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 울산의 건승을 빌었고, 울산 구단은 감사패를 전달하며 4년 간의 동행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마지막 무대였던 ACL에서 우승을 이뤄낸 김 감독은 결코 ‘실패한 지도자’로 기억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헹가래와 박수를 받으며 무대를 떠났다. 그야말로 눈물로 쓴 해피엔딩이었다. 늘 과묵하고 정이 많은 올해 50살의 김 감독이 훗날 사령탑에 다시 돌아올 때에는 더욱 성숙한 지도자로 돌아올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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