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 후에도 도발 멈추지 않았던 백제 아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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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배구고두’ 이후 와신상담 아신왕, 고구리 도발 거듭해

성헌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1-26 18:49:54

호태왕 비문의 6년(396년, 병신)에 새겨진 백제 아신왕의 항복 기사는 <삼국사기>와 <고구리사초략>에는 왜곡됐는지 기록이 없다. 돌에 새겨진 기록은 종이 사서와 달리 변조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당연히 비문이 옳다고 보아야 하지만 그 중요한 일이 <고구리사초략>에까지 없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하튼 아신왕은 항복 얼마 후 다시 도발을 시도했다. 호태왕에게 3번 절하며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의식을 치루고 영원한 종이 되겠다는 맹세까지 했고 동생과 대신들을 인질로 보냈는데도 말이다.

항복 이듬해인 397년(정유) 가을 7월에 아신왕이 한수 남쪽에서 대대적으로 군대를 사열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고구리사초략>에는 없고 당연히 비문에도 새겨지지 않았다. 백제가 자국 군대를 사열한 것까지 고구리 사서와 비문에 기록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이듬해 도발에 대해 <삼국사기>에는 “398년(무술) 가을 8월 아신왕이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병력을 출동시켜 한산 북쪽 목책에 이르렀다. 그날 밤 큰 별이 진중에 떨어져 소리가 났다. 왕이 이를 몹시 불길하게 여겨 공격을 중지했다. 9월에 도성 사람들을 모아 서대(西臺)에서 활쏘기를 연습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리사초략>에는 비슷한 내용이 보다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영락 8년 8월, 아신이 쳐들어와 노략하며 한산 북쪽 성책에 이르자 별이 군영 안으로 떨어졌는데 벽력같이 ‘네가 조상의 나라를 치면 반드시 망할 것이다’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 크게 두려워하며 돌아가더니 서대에서 활쏘기를 연습하며 ‘함부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지키기나 해야겠다’고 말했다. 상이 이를 듣고 비웃으며 ‘안으로는 악행을 쌓으면서 밖으로는 의를 내거는 놈은 이렇게 되는 거야’고 말했다”

아신왕이 도발하려다가 철수해버려 상호간에 군사적 충돌이 없어 아무런 전과도 없는 미수에 그친 백제내부의 일을 호태왕 공적비에 새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392년에 있었던 백제의 요새였던 관미성을 주야로 공격해 20일 만에 빼앗은 공적도 작다고 여겼는지 비석에 없지 않던가.

호태왕 비문 8년(398)년에는 “편사(偏師=사단급 별동대)를 파견해 백신(帛愼=숙신)의 땅과 골짜기를 살피다가 기습하라 하교해 막사라성 가태라곡 남녀 300여명을 포획해오니 스스로 조공을 바치러 와서는 그 일에 대해 논의했다”고 작지만 전과가 있는 다른 사건이 새겨져 있다.

위 비문의 내용은 <고구리사초략>에 “영락 8년(398) 무술, 군사를 북맥(北貊)으로 보내 막사(莫斯)국과 가태(加太)국을 노략질하게 했더니 남녀 300인이 소와 양으로 세공을 바치기로 약속했다”고 기록돼 있다.

아신왕은 이듬해 또 다시 복수의 칼을 빼들었다. <삼국사기>에는 “8년(399) 가을 8월, 왕이 고구려를 침범하고자 병사와 말을 대대적으로 징발했다. 백성들이 병역을 고통스럽게 여겨 신라로 많이 달아나서 가구 수가 줄어들었다”고 기록돼 있는데 상호간에 군사적 충돌은 없었다.

<고구리사초략>에는 “영락 9년(399) 7월, 신라에 황충이 일었다는 소식에 백제에게 신라로 곡식을 날라다주도록 명했다. 아신은 겉으로는 따르는 척하고 안으론 어기면서 왜와 교혼하여 근심거리를 만들려 하였지만 왜 또한 천명을 알기에 감히 위엄을 범하지 못하고 성심으로 공물을 바쳤다. 아신이 스스로 백성들을 괴롭히고 병마를 대거 징발했더니 많은 백성들이 식량을 가지고 신라로 귀부했다.

상이 신라 백성들을 구휼하려 국경으로 곡식을 운반해줬더니 내물왕이 ‘성상께서 지극히 걱정하여 주신 덕택에 하루 밤의 뇌우로 황충이 씻겨나가고 곡식도 살아났습니다’고 고했다. 이에 상이 크게 기뻐하며 ‘그대 나라도 마땅히 동명(東明)신을 섬겨야 할 것이오’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396년(병신) 항복 이래 와신상담했던 백제 아신왕은 405년(을사)에 죽음을 맞이했다. 자연사인지 피살인지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고구리사초략>과 <삼국사기>의 아래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타살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9월에 아신왕이 죽자 이를 숨기고 발상하지 않은 채 둘째 동생 훈해(訓解)가 정사를 대리해 왜에 있던 태자 전지(腆支)의 귀국을 기다렸다. 막내 동생 설례(碟禮)가 형 훈해를 죽이고 스스로 보위에 올랐다. 이에 전지는 왜왕이 보내준 100명의 호위병과 함께 섬으로 들어가 기다리다가 해충(觧忠) 등이 설례를 죽이고 전지를 맞아들여 보위에 세웠다. 전지의 처 팔수(八須)부인은 왜왕 인덕(仁德)의 딸로서 섬에서 구이신(久爾辛)을 낳았다”

아신왕이 즉위할 때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다. 백제에서 침류(沈流)왕이 갑자기 죽자 부인 가리(佳利)는 아들 아신이 어리다는 이유로 침류의 동생 진사(辰斯)를 즉위시키고 새 남편으로 맞이했다. 마치 고구리의 고국천왕과 산상태왕의 부인 우(于)황후처럼 말이다. 가리는 진사왕이 관미성 함락 소식을 듣고 놀라서 죽자 아들 아신을 즉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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