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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미술이 21세기 접어들어 변화상을 여러 가지 양태로 보였지만,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면 엄숙주의의 탈피가 아닐까. 어딘지 모르게 무겁고, 현학적이고 개념적인 담론들과 양식들이 대중들에 거리감을 주었다. 미학적 대중주의의 등장은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전망되고는 있었지만, 어느 사이 몸에 밴 엘리트주의의 한계가 그리 쉽게 극복되기는 어려웠다. 과제는 모두가 인식하고 있지만, 조형적으로 최적화된 콘텐츠와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혜성처럼 등장하여 소통이 원활한 미학과 양식으로 대중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줌과 동시에 시대 상황에 대한 풍자를 토대로 예술적 성취까지 담보해낸 작가가 있다. 바로 여성 조각가 ‘김경민’이다.
인물을 조금 길쭉하게 변형시킨 코믹한 모델링과 동화적 상황극과도 같은 극적 요소, 시사성이 있는 스토리텔링 등은 당시 무거운 조형계 분위기를 벗어나 친근하고 활달하며, 무엇보다 재미가 넘치는 재치 있는 구성들이 참신한 바람을 몰고 왔던 것이다. 게다가 조각에 회화적 채색을 입힌 강렬한 회화조각은 조각계만이 아니라 회화작가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재치와 해학이 넘치는 그의 작업은 범주상 팝아트라 분류할 수 있지만, 단원 김홍도의 해학적 풍속화를 현대적 조각으로 재창조한 유형으로 볼 수도 있다. 가족의 화목한 우애, 노래, 춤, 명상, 독서, 쇼핑, 레저, 스포츠 등 폭넓은 주제도 그렇지만, 거침없는 모델링에 흥겨움을 고조시키는 활달한 색채 등의 그 모두가 고루 갖추어진 전천후 작가이다. 90년대 후반부터 그의 작업은 25회에 이르는 국내외 초대전 외에도 유수의 국내외 아트페어, 각종 기획전 등의 참가 기록이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분명 그의 조각은 오랜 전통의 중압감을 떨쳐내며 기성 조각계에 도발 아닌 도발을 감행하여 그만이 이룰 경이적인 성취를 거두고 있다.
지금도 일산에 있는 그의 작업실 마케트(사전 모형) 전시실에는 대형작업으로 수행된 마케트와 아이디어 스케치로 남아 있는 것만도 거의 200여 점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약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조각가에게 실로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조형적 성취는 자연스럽게 공공미술의 수요로도 연결되고 있다. 그의 해학적이고 밝은 톤의 모델링은 도시 대중들에게 즐거움과 흥을 줌으로써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여기서 ‘흥’이라는 요소는 우리 문화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임에도 미술에서 잘 구현되지 않아, 미술은 흥과는 거리를 둔 장르로 오해되기도 했다. 김경민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대중들은 미술작품 앞에서 마음껏 웃으며 즐기는 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종래의 팝아트에서 보듯 팝아트라 하더라도 여전히 미학적 개념의 경계선 안에 머무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비해, 김경민 표 조각은 일러스트레이션의 소통과 한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 같은 모션과 리듬, 색상 등을 묶음으로 제시하는 그만의 세계가 대중들의 오감을 사로잡은 것이다. 우리 대중들의 기호나 취미는 다양하지만,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미의식과 판단력은 그렇게 낮은 수준이 아님을 이제야 우리 미술이 깨닫기 시작했다. 대중의 미의식은 항상 낮은 수준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쉽고도 건전한 주제를 감각적인 모델링으로 표현해내는 작가의 기량에 팬덤이 생기기도 했다. 현재 ‘김경민 작품’을 업로딩하고 있는 블로그 같은 SNS를 조회해 보면 팬덤이 엔터테인먼트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보통 공공미술은 기획자가 건축물과 환경과의 조화를 감안하여 작품을 매치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러한 매개 과정을 생략하고 직접 최적의 콘셉트를 정하여 작품 시안을 마련한다. 하긴 이미 축적된 기존의 콘텐츠들을 조회하고 적용하는 시스템이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결정적인 경쟁력이 된다. 일각에서는 그의 작품이 옥외에 많이 설치되어 있다 보니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시샘 정도로 일축할 수도 있지만, 이 문제는 넓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중들의 자유로운 취향과 취미에 의해 자율적으로 선택된 것을 존중해야 마땅하다. 특히 우리 도시의 시각 환경을 비롯한 모든 것이 외국인들에게 속속들이 관찰되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콘텐츠들이 또 하나의 한류 문화로 부상하고 전파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보다 많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집중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싹쓸이’라는 논리나 사리에 맞지 않는 잣대로 인위적인 제약이나 위축을 시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국내에서의 이러한 성취가 발판이 되어 작가의 해외 진출은 날개를 단 형국이다. 시범적으로 런칭한 소형 멀티플 에디션 조각이 해외 시장에서 모조리 매진되는 행진을 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잠시 주춤하고 있다. 사실 조각 작품은 해외로 운반하는 데 비용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시장 개척에 어려움이 많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부가가치가 높은 대형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수주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협업이 필수적이며 많은 예술계 일자리도 부수적으로 창출된다. 현재 해외 시장에서의 눈부신 성취도 국내 무대에서의 수많은 샘플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우리 도시는 어느 사이 공공미술 작품들의 대형전시장이 되어 있다. 알고 있는가. 해외의 눈들이 우리 도시의 구석구석을 경이로운 눈으로 관찰하고 있다. 도심 속 예술작품들도 그 대상들이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김경민이 글로벌 아티스트로 도약하고 있는 것도 우리의 미술환경과 제도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우리의 경쟁자는 이제 나라 밖 아티스트들이다. 우리 모두 밖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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