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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아신왕은 호태왕에게 396년에 항복한 이후 절치부심했다. 이듬해 5월 왜국에 태자 전지(腆支)를 인질로 보냈다. <고구리사초략>에는 왜가 전지에게 딸(팔수부인)을 처로 줬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왜왕이 누구였기에 이런 혼인을 했을까.
비류백제의 일본국가기원설은 4세기말에 비류백제에서 응신이 왜로 들어가 야마토(大和) 왜왕이 됐다고 주장했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응신의 재위년도 270년~320년이니 여기에 가공의 역사 120년을 더하면 390년~420년이 되므로 당시 왜왕은 응신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당시 아신왕이 인질외교를 한 목적은 관련기록이 없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고구리에게 복수할 병력을 왜에게 요구했을 것이다. <삼국사기>에 “7월에 한수 남쪽에서 대대적으로 군대를 사열했다”는 기록이 이어져있어 더욱 그렇다.
아신왕의 이러한 외교행위는 호태왕비문 9년 기사 맨 앞에 새겨져있다. 이어지는 문구는 왜에게 침략당한 신라가 호태왕에게 구원을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다보니 다들 아신왕이 왜를 조정해 신라를 공격하게 함으로써 고구리를 우회공격한 것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비문) 9년 기해(己亥)년에 백잔이 맹서를 어기고 왜와 서로 내통했다. 태왕이 평양으로 순행해 내려가는데, 신라가 사신을 보내 왕께 ‘왜인들이 국경에 가득 들어와 성을 크게 파괴하고 있습니다. 노객(신라왕)은 백성들을 위해 왕께 귀의해 구원의 조치(命)를 청하나이다’라고 전했다. 태왕은 은혜롭게 그 충성을 다시 헤아려 바로 신라사신에게 돌아가서 병력출동을 허락했음을 고하라고 말했다”
“(비문) 10년 경자(庚子)에 보·기병 도합 5만 병력을 파견해 신라를 구원하라는 교지를 내렸다.~~~(이하 구원 내용)”
지금까지는 399년 신라의 구원요청에 의해 5만의 고구리 보·기병이 이듬해 출동해 그때까지 신라에 머물고 있던 왜군을 섬멸한 것으로 해석했었다. 그러나 아래 <고구리사초략>의 기록에 의하면 그게 아니라 399년 고구려 군대가 출동하기 전에 물러났던 왜군이 그 이듬해 재침했던 것이다.
“영락 9년(399) 기해 5월 이때 왜가 신라의 변방을 침범하니 하모(신라 대사)가 병력을 출동해 구해주길 청했다. 상이 서구에게 명해 5000기병을 출동시키니 내밀(奈密=신라 내물왕)이 사신을 보내 왜가 이미 물러갔음을 고했다”
이어지는 <고구리사초략>의 영락 9년 기록이다. “7월 신라에 황충이 일었다기에 백제에게 신라로 곡식을 날라주라고 명했다. 아신은 겉으론 따르는 척하고 내심으론 어기면서 왜와 교혼(交婚)해 두통거리를 만들려고 했으나 왜 역시 천명을 아는지라 감히 위엄을 범하지 못하고 성심으로 공물을 바쳤다. 해서 아신이 스스로 백성들을 괴롭히고 병마를 대거 징발하니, 많은 백성들이 식량을 가지고 신라로 귀부해버렸다”
위 내용은 <삼국사기>에 “399년 가을 8월 왕이 고구려를 침범하고자 병사와 말을 대대적으로 징발하니 백성들이 병역을 고통스럽게 여겨 신라로 많이 달아나 가구의 수가 줄어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왜가 고구리에 어찌 대처했는지에 관한 설명이 생략되다보니 다들 아신왕의 청병으로 인해 왜·백제·가야 연합군이 신라를 공격했다고 오인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신왕은 자신에게 치욕을 안겨준 호태왕에게 복수하기 위해 외교관계를 수립한 왜에게 청병했지만 왜는 고구리를 두려워해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백제 아신왕 독자적으로 무리한 징병을 추진했다보니 신라로 도망가는 백성들이 많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어지는 400년 왜의 신라 침공은 왜가 독자적으로 벌인 군사행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때 출동한 고구리 군대가 신라를 침략한 왜군을 어떻게 섬멸했는지 또 그 결과는 어땠는지 그 내용이 호태왕공적비에 뚜렷하게 새겨져있었다.
그러나 19세기말 일본의 만주에 대한 영향력이 강해지면서부터 이 문구가 많은 손상을 입게 된다. 과연 어떤 문장이기에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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