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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열쇠 시즌2’···부국부민(富國富民)의 길

돈에 담긴 선한 평행의지 외면시 공멸 위기 직면

[대한민국 번영의 지혜<34>]-제3장 새로운 평등을 말한다 : 평행한 삶(2)

내려놓고 도전하는 평행한 삶의 지혜···‘있음의 원리’에 똬리를 튼 ‘없음’

무소유의 소유 방식에 부가가치 커지는 돈···모두의 자존감 키우는 결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2-22 16:49:13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아주 보기 드문 독특한 이념분쟁을 벌이고 있다. 좌우 진영논리로 극단적 대립이 계속되면서 국민 간 갈등과 증오가 도를 넘었다. 이 같은 대립은 세대싸움, 지역다툼, 빈부갈등까지 한껏 부추기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멀어져 가고 국운 쇠락의 음울한 기운이 확산되고 있다. 부강한 국가와 잘사는 국민을 만들어 가기 위한 현안이 산더미처럼 산적해 있는데도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냉정함을 되찾고 전혀 다른 눈으로 새로운 번영의 길을 찾아 나설 때다. 국민 모두가 조화롭게 하나가 돼 국운의 영속적인 발전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시점에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국민적 좌우명이 필요하다. ‘부의 열쇠 시즌2’를 통해 이 같은 국운 융성의 지혜로운 길을 찾아 보고자 한다.

▲ ⓒ스카이데일리
[전편에 이어]
 
Q. ‘평행한 삶’ 속에서 얻어지는 ‘평행한 돈’의 개념은 무엇인지
 
A. 평행한 돈은 ‘좋은 운명’과 직결된다. 좋은 운명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가 잠재의식에 쌓일 때 만들어진다고 했다. 부(富)의 그릇을 키우는 것이 좋은 운명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이다. 운명을 설계하고 개척하는 중심에 부의 그릇이 있다. 순환하는 돈은 욕심과 탐욕이 만든 작은 그릇에는 담기지 않는다. 순환이 빠를수록 평행한 돈이다. 평행한 돈은 평행한 삶 속에서 만들어지는 큰 그릇을 타기 위해 순환을 한다. (603쪽 : 돈은 순환하면서 각 개인의 길을 비춘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비추는 달은 차별 없이 공평하다. 모두에게 평행하게 비추는 빛은 밝고 광대하며 평등하다. 평행한 돈은 달빛처럼 그 길이 크든 작든 모두에게 좋은 운명을 안내해 준다. 하지만 자유시장에서는 혼돈의 질서를 마치 평정이라도 하듯이 엄숙한 역할까지 한다. 돈은 시장의 조화를 이끌지만 가차 없는 차별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평행한 돈은 차별을 만들지 않기 위해 차별을 받아들일 때가 있다. 차별을 기꺼이 수용할 때 차별이 녹는다. 평행한 돈이 만들어 내는 이 같은 엄정함이 미래의 창을 연다. (603쪽 : 평행한 돈의 역할을 볼 때 엄밀히 현재의 연속으로 수없이 분기되는 운명을 바라보는 눈이 생긴다) 시공간을 초월한 강력한 현재성이 좋은 운명과 부(富)의 기반이다. 운명이 네트워크 내 상호작용으로 무한 분기해 혼돈의 길이 많아진다고 해도 그 길을 선택하는 직관능력이 평행한 삶 속에서 커진다. 평행한 삶으로 보는 평행한 지혜에 의해 현재성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놀라운 능력이 발휘된다. 현재성은 에너지 응축력을 높이는 일이다. 매순간 현재가 미래가 된다. 현재에 대한 의식의 집중은 평행한 돈이 즐기는 일종의 시간여행이다.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면서 가치를 더 많이 창출하는 기법이다. 행복은 평행한 돈이 가치를 창출할 때 찾아온다.
 
Q. 소유하지 않는 돈이지만 모두가 소유하는 무소유의 소유가 돈의 선한 기능이라고 해석해도 되는가
 
A. 숫자 0의 발견은 만물의 상(像)을 구현하는 역할을 했다. 본질의 상(象)은 시작도 끝도 없다. 0은 좌표계서 유한성과 무한성을 동시에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유한성을 표시하지만 끝이 없는 무한성을 동시에 암시해 준다. (612쪽 : 초월수(超越數)가 순환하지 않는 무한소수이지만 동시에 상수로 활약하듯이 무한히 불규칙한 것이 효율을 결정해 주는 잣대가 된다) 초월수는 0을 기점으로 삼는다. 도무지 규칙이 없는 무한소수가 기막힌 자연의 숨은 원리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원주율 파이(π)와 오일러의 수 e 등이 없었다면 인류의 지식체계와 문명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유한성만이 법칙이 되지 않는다. 무한성이 오히려 고차원의 법칙을 알려준다. 그래서 0은 신비한 자연의 암호다. 돈이 0의 역할과 유사한 기능을 한다. 돈은 자유시장에서 인간의 오감으로 구현되는 유한성을 띠었다. 누구나 보고 판단하며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돈을 누구나 소유하고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기도 하다. 이 같은 유한성과는 반대로 돈은 가치가 무수히 변해 손에 잡히지 않고 판단하기 불가능한 운동성 또한 가졌다. 주머니의 돈 가치는 외부의 영향력에 의해 ‘소유했지만 소유하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 돈은 0의 숫자처럼 자유시장에서 눈에 보이는 유한한 가치를 갖고 유통되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가치의 무한성을 내재하고 있다. 돈의 가치는 초월수의 무한소수 원리처럼 일정하지 않고 유동적이지만 누군가의 의지에 따라 상수로 활용된다. 상수는 효율을 통해 만들어 낸 부가가치다. 그 의지는 평행한 삶 속에서 나온다. 그 때 돈은 놀랍도록 평행하다. 무소유의 소유 속에서 평행을 움직이는 중심추 역할을 한다. 돈은 자유시장에서 차별 속 평등에 기여하면서 선한 기능을 하고 있다.
 
Q. 돈의 선한 기능과 평행하게 살면 인간의 선행도 제고하는 것이 가능한가
 
A. 자유시장에서 성과를 높이는 방식은 무수히 많다. 성과는 돈의 가치와 직결된다. 돈은 선한 기능을 유지할 때 가치가 오르면서 순환이 빨라진다. 거꾸로 순환이 빨라질 때는 가치가 오른다. 인간의 선행도 돈처럼 타자의 자존감을 높이는데 있어야 가치를 키운다. (620쪽 : 타자의 자존감 거울을 확장해 갈수록 자신의 자존감은 강해진다) 네트워크에 자존감이 확산되면 성과율이 오른다. 다만 자존감은 구성원들이 많을수록 그리고 소통을 많이 할수록 불확실성을 높인다. 이 조차 확장하는 능력을 가졌을 때 성과를 더 높인다. 특히 변수가 끝없이 나올수록 초심이 중요해 진다. 초심으로 타자를 보고 그 타자들을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성과는 임계치를 향해 나아간다. 그것이 돈의 선한 기능으로 쌓아 올린 부의 탑이다. 거듭된 초심을 통해 축적된 부에는 부를 이룬 주체의 선한 능력이 깃들어 있다. 그 능력에는 수많은 장점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원상(原象)의 정보가 있다. 0은 있음이지만 없음은 ‘있음의 원리’라고 했다. 인간의 선행은 없음이라는 있음의 원리에 똬리를 틀고 있다. 돈이 무소유의 소유 방식으로 모두의 자존감을 키울 때 이 원리가 작동한다. 자신을 놓을 줄 알고 비울 줄 알 때 성과가 가장 높은 이율배반의 정의가 또한 사건의 섭리다. 이런 원상(原象)의 장에서 효율이 높은 에너지가 시작된다. 돈의 선행 방식은 이처럼 인간의 선행 방식을 닮았다. 인간과 돈은 마치 하나처럼 얽혀 있다. 돈이 인간의 운명을 장악하기도 하지만 인간이 돈의 운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선한다.
 
Q. 평행하기 위한 인간의 선행을 움직이는 원상(原象)이 궁금한데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고윤석] ⓒ스카이데일리
 
A.  원상은 없음이다. 생명이 잉태되는 없음은 무한 가능성을 실현시킨다. 없음을 무(無)라고 단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없음이 0(있음)으로 옮겨가기 전 규칙과 패턴을 따르는 정보가 움직인다. 기준이 세워질 때 방향이 설정되고 에너지가 발생한다. 에너지는 물질의 형상과 의식의 형태 등 두 가지로 드러난다. 그런데 정보가 일정한 패턴을 가질 때 명령을 가하는 힘이 일어난다. 힘은 물질과 의식을 모두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다. (632쪽 : 패턴의 반복을 지속적으로 해내는 정보시스템이 에너지 근간이다) 패턴은 거의 무한한 조립이 가능하다. 이는 창조로 이어진다. 이 같은 패턴의 역할이 평행하다. 아무리 많은 조합도 과격한 쏠림 없이 거중 조정된다. 특정 물질이 생겨나고 의식이 발아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패턴의 자기조율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패턴의 원상은 현상에 드러나는 모든 상들의 원천소스가 맞지만 정해진 것이 없는 것도 봐야 한다. 생명의 모든 현상이 패턴의 원상일 수 있는 배경이다. 그래서 평행한 생명에 천착할 때 드러나는 상들이 역설적 원상으로 규정된다. (633쪽 : 인간의 의식이 미시의 패턴에 대칭적으로 연결돼 있어 상호 교감하거나 공명한다) 관찰자 법칙 또는 공명의 원리가 실제로 강력히 증거되고 있다. 미시-거시 간에 교류되는 에너지 법칙은 상호 신성을 본유(本有)한 모습이다. 만물이 선한 상으로 지배돼 있듯이 인간도 본래 같은 원상을 갖고 있다.
 
Q. 정보 패턴이 현실에서 실증적으로 사용된 사례가 있는가
 
A. 허수는 본래 존재할 수 없지만 인류의 과학과 문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허수는 없음이어야 하지만 있음의 원리로 기여했다. 허수는 자연의 질서자 역할을 하면서도 자연 속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숫자다. 하지만 현대문명의 거대한 메가기둥인 전기와 전자기의 태두격인 맥스웰 방정식은 허수를 포함한 복소수 정립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640쪽 : 허수를 포함한 복소수의 수학적 정립은 오늘날 현대문명의 거대한 주춧돌이 됐다) 허수는 심지어 아이슈타인의 중력이론인 일반상대성 이론에도 기여했다. 우주의 기본 얼개가 보이지 않는 자연언어인 허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나아가 소립자의 확률적 존재 상태를 표현하는 양자역학의 파동함수를 충족하기 위해서도 허수가 쓰였다. 천재적인 일단의 수학자와 과학자는 만물의 원리가 복소수 체계에 들어 있다고 확신하고 있을 정도다. 복소수가 없었다면 일상화된 휴대폰·인터넷 등의 사용이 불가능했다. 수학의 아름다움은 숫자가 단순히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는데 있다. 숫자의 나열 속에 일정한 패턴이 들어 있는 것은 신성의 비밀을 푸는 일이다. 방정식은 패턴 중에서도 고차원이다. 자연의 원리를 대부분 방정식으로 푼다는 것은 방정식의 패턴이 자연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그런데 이들 패턴 중에는 이율배반적인 물리법칙이 상당수다. 일정하지 않은 패턴이 오히려 정해진 패턴보다 큰 에너지를 갖고 있을 가능성은 크다. 이들 영역은 상당수 원리가 드러나지 않았다. 인류는 앞으로도 더 많은 패턴들을 현실에 응용할 잠재력을 지녔다.

목차
제1장 신 보수의 가치
 
1-1. 욕망의 장
1-2. 권력의 장
1-3. 경쟁과 차별
1-4. 빈수레 진보
1-5. 이념의 굴레
1-6. 탈 진영의 길
1-7. 신 보수가치
 
제2장 누가 약자인가
 
2-1. 인심과 수심
2-2. 베풂과 이기심
2-3. 강자와 약자
2-4. 강자논리
2-5. 약자논리
2-6. 강자의 비탈
2-7. 약자의 험로
 
제3장 새로운 평등을 말한다
 
3-1. 불평등 샘
3-2. 평등론
3-3. 평행한 삶
3-4. 삶의 사단(四端)
3-5. 책임의 행복
3-6. 신들의 평등
3-7. 인간의 지혜
 
제4장 제국주의는 없다
 
4-1. 열국주의
4-2. 제국과 식민지
4-3. 민족의 꿈
4-4. 제국의 꿈
4-5. 1인 나라
4-6. 초국의 실수
4-7. 무국의 질서
 
제5장 민중은 가공됐다
 
5-1. 국민론
5-2. 민중론
5-3. 지성적 시민
5-4. 오만한 민중
5-5. 인공의 허(虛)
5-6. 신들의 공(功)
5-7. 인간의 꿈
 
제6장 역천의 이념인가
 
6-1. 건곤(乾坤)
6-2. 변증 소용돌이
6-3. 하늘의 영광
6-4. 반야(般若)의 지혜
6-5. 순천&역천
6-6. 현재형 인간
6-7. 미래 사다리
 
제7장 이상사회를 논하다
 
7-1. 제3의 역사
7-2. 사회적 굴레
7-3. 사회의 꿈
7-4. 대동사회
7-5. 커뮤니티 진보
7-6. 이상국가론
7-7. 이상사회론
Q. 인간의 선행을 관장하는 도덕률과 평행한 에너지 시스템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A. 도덕률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우선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로 절대적 도덕률은 지상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신성의 원리가 지상에서 구현된다는 것은 신성의 존재를 부인하는 일이다. 정보는 규칙과 패턴을 따라 에너지 또는 물질이 되지만 인간은 도덕률을 따른다고 해도 반드시 힘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도덕률은 오히려 인간의 힘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아니 현상계에서는 절대적 도덕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도덕률로 부가가치를 일구는데 한계가 있다. 다만 극과 극에서 평행한 도덕률은 다르다. (666쪽 : 도덕률은 마치 사건의 섭리처럼 극과 극의 임계선상에서 매순간 만들어지는 부가가치다) 따라서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이상은 허상일 뿐만 아니라 인류를 속이는 악한 행위다. 인위적 정의가 존재한다고 깃발을 흔드는 행위 또한 마찬가지다. 평행한 삶은 이와 반대라고 했다. 도덕률에 지나치게 얽매여 오히려 부도덕한 행위로 빠져드는 사례가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이념주의 도덕률은 지금까지 무소불위의 도덕률을 내걸고 수많은 살상과 비위행위를 저질러 왔다. 인간의 인위적 도덕률은 대칭된 평행한 에너지 시스템과 엇박자라는 점이다. 대칭적으로 존재하면서 서로를 비출 수는 있어도 어깨동무 하기는 어려운 관계다. 평행한 삶 속에 힘차게 꿈틀대는 평행한 돈이 평행한 에너지 시스템과 공명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도덕률에 지나치게 억매이면 안 된다.
 
Q. 자유시장에서 근본적으로 선한 가치창출 행위는 무엇인지
 
A. 에너지는 단순하게 기계적인 일만 하면 소모된다. 새로 만들지 않으면 생명은 물론 만물이 존재할 수 없다. 에너지 총량을 높이려면 효율을 높이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지구상의 모든 에너지 원류가 태양이기는 하지만 태양만이 에너지를 만든다고 하면 오산이다. 빛 공장인 태양은 기계적으로 많은 양의 에너지를 만든다. 수십억년이 지나도 에너지 원류가 돼 주지만 효율이 증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태양의 수명이 다할수록 근본 에너지 효율은 떨어진다. 자유시장의 선한 가치는 기계적인 에너지가 아닌 효율을 높이는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데 있다. (142쪽 : 경제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사활이 걸린 에너지 효율성이다) 생명은 효율을 먹잇감으로 삶을 영위한다. 효율이 사라지면 갈등과 전쟁이 촉발된다. 따라서 경제성을 창출하는 것이 자유시장의 선한 가치창출 기능이다. 이런 시각을 전제한다면 자본주의가 지상제일주의로 추구하는 이윤추구가 부도덕의 대명사로 몰리는 것은 잘못이다. 이윤추구 행위가 부도덕하다는 공론이 높을수록 공멸의 위험을 높인다. 이기심·시기심을 자극한 이념주의자들의 권력욕이 작동했을 때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위험지수가 증가한다. 자유시장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윤추구 경쟁의 중심에 들어가야 한다. 또한 몸과 영혼으로 이윤을 높이는 노력에 최선을 다할 때 평행한 삶을 산다. 이윤추구가 물론 정당해야 하지만 무한경쟁 속에서는 이전투구까지 감내하는 용기가 평행한 의지다. 진흙탕 싸움이 꼭 부도덕하지 않다는 신념으로 무장한 평행한 삶과 평행한 의지가 선한 가치로 빛을 발한다. 설사 부도덕해도 작은 시각이 아닌 큰 눈으로 보면 선한 현상일 경우가 많다. 유아독존 식 잣대를 강하게 들이대면서 잘못된 인위적 도덕률을 스스로 왜곡할 때 치명적 불운이 닥친다.
 
Q. 이념적 정의가 필요 없이 평행한 삶과 의지에 기반하면 풍요로운 세상이 구현되는가
 
A. 가치론은 효율을 기반으로 한다. 가치론의 핵심인 부가가치는 효율을 함의한다. 부가가치의 ‘부가’는 ‘가치’를 수식한다. ‘값’을 연달아 쓰는 ‘가치’에 ‘더함’을 잇따라 쓰는 ‘부가’가 더해져 특별한 의미를 완성한다. 그 의미는 경쟁이다. 효율은 경쟁을 통해 나온다고 했다. 효율은 가치의 탄생과 파괴가 늘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가치는 결코 극단적 한계로 진행해 파괴되지 않는 생존성을 갖는다. 가치의 지난한 역동성을 수용할 때 평행한 삶과 평행한 의지에 기반한 풍요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 (170쪽 : 가치의 혁명성은 파급효과가 커 언제나 한계에 다가가지 않는다) 가치창조는 인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영장류 중 인간만이 유일하게 가치탄생의 기반이 되는 호기심과 탐구능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호기심과 탐구능력은 창조의 뿌리다. 창조의 힘이 가치를 탄생시키는 근원에 경쟁의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념적 정의는 경쟁을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그 연장선상에서 부가가치는 더 외면한다. 오히려 부가가치를 적대시 하는 경향까지 있다. 자유시장에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은 산고 못지않은 고통을 수반한다. 산고는 생명의 축복으로 이어진다. 가치의 탄생도 마찬가지다. 잉여가치론에 기반한 계급론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면 부가가치가 얼마나 고귀한 선물인지를 간과한다. (170쪽 : 고통을 수반하지 않은 가치는 아름답지 못하고 추하게 보인다) 이념적 정의가 뿌리는 가치는 고통의 가치를 내동댕이친다. 그 추함을 마구 뿌려댈 때 차별이 더 극심해 진다. 평행한 삶과 평행한 의지가 이를 거부할 때 이념은 특유의 윤리성으로 가치를 또 폄훼한다. 그들만의 권력 안에서 만들어지는 보잘것없는 가치는 죽어간다. 마지막 수단으로 자유시장의 부가가치를 탐내면서 온갖 지탄을 퍼붓는다. 이념적 평등의 정의는 결코 평행한 삶과 평행한 의지가 만들어 가는 순도 높은 가치를 키우지 않는다. [계속]
 
[스카이데일리 알앤알(R&R, Rich-Research)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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