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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모델링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갖춘 김선구
/日 국제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날개 달아
/인체 해체와 재구성으로 조각계 참신한 바람 선사
/추상 일변도로 경도된 조각들 속에서 균형추 역할
1995년 일본 이와테현에서 국제 말 조각 공모전이 있었다. 상금만도 예심 포함 최종 대상 상금이 1억5000만원으로, 당시 국제미술계 상금으로는 최고액이다. 30년 전의 물가로 서울에 집을 한 채 사고도 남는 금액이었으며, 예심 통과자에게 지급한 상금만도 5000만원으로 수도권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그야말로 국제미술계에서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말 소재의 조각이라는 점에서 기마상 동상들에 익숙한 유럽 작가들에게 유리하며, 홈 무대인 일본 작가들 역시 큰 기대를 갖고 무수히 많이 참가했다. 최종 심사 결과, 대상 수상자로 한국의 김선구 작가가 선정되었다. 국제적 관심이 컸던 공모전의 심사 결과는 일본 국영방송 TV를 통해 널리 전해져 우리 언론에서도 대서특필된 바 있다.
주최 기관이 이와테현 경마조합이다. 따라서 보통 떠올리는 작품의 포즈는 힘차게 전력 질주하는 경주마의 다이나믹한 포즈일 것이다. 그런데 그의 대상 수상작 ‘선구자’는 놀랍게도 상상과는 정반대의 작품이다. 경주에 져서 말이나 기수가 의기소침하여 고개를 숙이고 터벅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상식을 넘어 허를 찌르는 것이다. 승자에게만 갈채를 보내고, 승자만이 독식하는 비정한 문화에 일침을 가한 통쾌한 쾌거의 의미로 간주된다. 아울러 작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한 사람의 우승자보다는 패배자인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로하는 접근을 선택했다. 승부사적인 모험이자 도박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의기양양한 우승자보다는 실의에 빠진 다수를 위로하는 것이 주최 측 속마음이자 기본 취지인 것을 정확히 간파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의 성취가 운 좋은 베팅에서 온 것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당연히 작품이 출중했으니 좋은 성과를 얻은 것이다. 국내의 그렇고 그런 공모전조차도 대상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하물며 ‘내노라’ 하는 국제미술계의 거물들이 참여한 데서 대상이 어디 허를 찔렀다고 타는 만만한 것이겠는가. 30대 초반인 1990년대 초반부터 해부학적 기초에 위에 해체 후 재구성한 것 같은 독창적이고 경이로운 모델링은 이미 국내 무대에서부터 호평을 받고 있었다. 20세기 초의 미래주의에 필적할 개성적인 다이나미즘의 조각, 특히 근육질 인체의 힘찬 동세와 변형의 표현은 관객들에게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조각의 힘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고전적인 장점과 아방가르드의 장점들을 절묘하게 결합시키고 있음이다.
2004년은 작가에게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는 중국의 베이징아트페어에 참가했다. 그곳에서 그의 작품 전량이 매진을 기록하였다. 중국은 당시 2008년 베이징하계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전역에 대형 건축물을 건설 중이었고, 그에 따른 공공조형물의 상당한 양적 수요가 예측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중국 내 갤러리들은 공공조형작업을 수행할 기량이 출중한 조각가들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보통은 공공조형물들이 기하적이고 구조적인 추상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전통에 따라 재현적 모델링 조각에 대한 선호가 강하다. 물론 중국에 모델링 솜씨가 좋은 조각가들이야 널려 있지만, 개성적이고 참신한 표현역량이 뛰어난 작가는 그리 흔치 않다. 그런 상황에서 김선구의 등장은 그야말로 중국미술계가 찾던 최적의 아티스트였던 것이다.
그 아트페어 현장에서 만난 북경의 어떤 갤러리는 전속계약을 강력히 원하여 바로 김포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중국 및 중화권 프로모션을 독점 계약하였다. 그 후 약 15년 동안 중국 각 도시와 홍콩, 마카오 등에 수없이 많은 공공기관 및 기업 주도의 많은 공공조형물들을 제작 설치하게 된다. 처음에는 워낙 많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중국 현지에서 제작하였으나, 중국의 주물제작 기술이 미흡한 데다 주물 과정에서 불법복제 우려가 많아 한국 작업실에서 제작하고 여러 조각으로 분리된 주물을 중국으로 옮겨 봉합 용접이나 조립을 현지에서 완성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그야말로 ‘미술에도 한류가 있다’는 제목의 신문기사가 있었을 정도로 중화권 K-아트의 기수로 맹활약을 했지만 그에게 고비가 닥쳤다. 바로 사드 사태였다. 주로 지방정부나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공조형물 프로젝트마다 줄줄이 취소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진정되어 다시금 중국 내 활동이 재개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계속 기다림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사드 사태에 봉착했을 때 그는 모델링 조각을 선호하는 곳 유럽으로 눈을 돌려 몇몇 갤러리들과 논의를 진행하다 이마저도 보류 상태이다.
그러나 그는 작금의 사태를 의외로 담담하게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일찍부터 3D 그래픽에서도 전문가를 능가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보통은 진흙으로 원형을 제작하지만, 요즘은 그래픽 모델링으로 시뮬레이션을 많이 한다. 더 참신하고 기발한 작품 아이디어를 다량 축적시키는 최적의 방법이다. 코로나 재난이 그에게도 영향을 적지 않게 미치고는 있으나, 더 높은 도약과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으로 믿어진다. 오늘의 조각이 동시대 감각을 추구하다 보니 전통적 모델링과 개성적인 표현에서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다시금 국내 무대로의 컴백이 국내 미술계, 지나치게 한쪽으로만 경도되고 있는 미술계에 의미 있는 균형추 역할과 함께 후학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K-아트의 선구자, 그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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