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민생회복 노력 발목 잡는 ‘사법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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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산업에 부정적인 한국정서, 금융사 노력에 변화
ESG 경영 도입, 사회적 약자배려 등에 가장 적극적
‘재판→항소→재판’ 지치는 금융社, 커지는 국민우려

김신 기자페이지 + 입력 2021-11-29 00:02:24

‘은행(銀行)’의 사전적 의미는 대출, 수신 등을 주요 업무로 하는 기관이다. 좀 더 쉽게는 여윳돈이 있는 사람에겐 이자를 지급하며 대신 돈을 맡아주고 반대로 돈이 필요한 사람에겐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자의 차익(예대마진)을 수입원 삼는 기업을 말한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산업자본 덩치가 커지면서 은행산업 역시 점차 고도화·전문화 됐고 지금은 ‘금융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산업의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금융산업의 중요성은 입이 닳도록 설명해도 부족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선 그 인식이 다른 나라에 비해 부정적인 편이다. 과거부터 줄곧 땀을 흘리지 않고 단순히 앉아서 돈으로 돈을 번다며 산업 특성 자체를 폄하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국내 금융기업들은 늘 위축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심지어 우수한 실적을 내고도 칭송을 받긴 커녕 따가운 눈총 피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나마 위안되는 사실은 최근 들어 금융산업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그 배경에는 금융산업이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는 세계적 추세와 더불어 인식전환을 위한 국내 주요 금융기업들의 부단한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단편적인 예로 국내 주요 금융기업들은 세계적 추세인 ESG 경영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편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ESG를 적극 도입해 착한기업으로 발돋움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에도 가장 적극적인 곳이 바로 금융권이다. 주요 금융기업 대부분이 저소득층에 대한 저금리 대출상품 출시부터 각종 사회공헌 프로그램 개발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약자 배려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민생경제가 최악 수준에 가까워진 이후에는 노력의 수위가 한층 업그레이드 됐다. 너나 할 것 없이 자영업자 저금리 대출상품부터 실직자·구직자를 위한 생활자금 대출 등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근 국내 금융기업들의 민생회복 노력은 점차 동력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주요 금융기업 대부분이 의도치 않게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사법당국으로부터 거센 압박을 받고 있어서다. 통상적으로 기업 내에서 사법 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해당 이슈 해결에 역량을 쏟을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사회공헌 활동 등을 비롯한 다른 업무는 크게 위축되기 마련이다.

일례로 신한금융지주는 조용병 회장이 채용비리 사건 관련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며 사법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하는 듯 했지만 검찰이 고등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고하면서 또 다시 재판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앞서 2심 재판부는 “청탁 대상자이거나 은행 임직원 자녀라고 해도 일반 지원자와 마찬가지로 채용 과정을 거쳤다. 대학이나 어학 점수 등 기본적인 스펙을 갖추고 있다면 부정 통과자로 보기 어렵다”며 조 회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밖에 하나은행도 최근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하나은행은 대장동 개발의 재무적 참가자로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참여한 게 전부다. 또 하나금융 부회장도 채용비리 재판을 받고 있다. 우리금융 역시 사법리스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판매 관련 우리금융 회장에 대한 중징계를 철회하라는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한 상태다.

과거 미국 하버드대학교 한 원로 교수는 땀 흘려 일하는 나라가 미국보다 부유하지 못 한 이유에 대해 “미국의 돈이 24시간 전 세계에서 미국인을 대신해 일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답한 바 있다. 당시 발언은 간단하면서도 명쾌하게 금융산업의 중요성을 역설한 재치 있는 답변으로 평가됐다. 선진국의 필수 조건이 금융산업 발전이라는 점을 강조한 당시 발언에 전 세계가 공감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각 국에선 자국의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금융산업 환경에 대대적 변화가 나타나면서 총칼 없는 전쟁이 더욱 본격화되고 있다. ‘선진국 도약’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지닌 우리나라도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물결에 당당히 올라타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은 상황이다.

하지만 장애물이 한 두 개가 아니다. 특히 ‘사법 리스크’는 주요 금융기업들의 발전은 고사하고 민생경제를 위한 노력까지 발목 잡는 치명타로 판단된다. 이미 무죄 혹은 그에 준하는 법원의 판결까지 뒤집으려는 행위가 개탄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특정 기업에 대한 발목잡기, 또는 민생회복 노력에 대한 찬물 끼얹기 행위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금융기업, 특히 시중은행은 곧 국민이라는 점을 사법·금융당국이 뇌리에 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신 s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