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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보다 더도 말고 단 하루만 더 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자폐 아이를 둔 부모라면 이 말에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흔히 ‘자폐 아이 한 명은 열 명의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힘들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폐아의 부모로 산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할 만큼 고된 아픔이 드리운다. 드라마 ‘굿닥터’가 2013년 방영될 당시 더불어 주목받았던 것 중 하나는 극중 자폐 주인공이 겪고 있었던 ‘서번트 증후군’이었다. 서번트 증후군은 자폐증이나 정신질환 등과 같은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영역에서 천재성이나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증후군이다. 드라마는 서번트 증후군의 주인공이 ‘특별한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의 편견을 이겨내고 일과 사랑 모두를 쟁취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드라마처럼 녹녹치 않다. 자폐를 가진 이들이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모두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소외되는 것이 현실이다. 인터넷에 ‘자폐’라는 두 글자를 검색하면 사회성, 언어, 놀이, 승마 등과 연관해 ‘치료’라는 단어가 대부분 붙어 나온다. 부모나 많은 사람들이 자폐가 있는 이들을 여전히 치료의 대상으로 여기고 정상과 비슷해지길 기대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경우다. 우리 사회가 포용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정작 포용이 아닌 ‘정상 같은’ 모습만을 강요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인식과 태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단체가 있다. 독자적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사회적 소수자를 발굴하고 세상에 소개하며 함께 활동하는 비영리단체인 ‘로사이드’가 바로 그 곳이다. 이들은 창작자의 작업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예술적 교감을 통해 소통을 실험하는 단체다. 로사이드(Rawside)는 날 것을 뜻하는 ‘Raw’와 주변·가장자리를 뜻하는 ‘Side’가 합쳐져 명명된 단체다. 이름 그대로 사회 주변의 약자와 함께 날 것의 작품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스카이데일리가 로사이드를 만나 자폐와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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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사이드의 설립자들은 자폐증 등 사회에서 외면 받는 사람들이 뭔가 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함께했다. 단체의 창립 철학은 이로부터 출발했다. 사진은 로사이드 사무실 앞로사이드 간판. ⓒ스카이데일리
로사이드는 2008년 알 수 없는 자폐증을 겪고 있는 곽규섭씨와 화가 김효나씨와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곽씨의 집을 방문한 김씨는 곽씨가 그린 낙서를 유심히 살폈다. 낙서 속에서 뭔가를 발견한 김씨는 곽씨의 어머니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A4용지 1/4만한 종이를 아들 곁에 항상 놔둘 것을 당부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곽씨의 집을 다시 찾은 김씨는 엄청난 수의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을 만나볼 수 있었다. 항상 낙서로 치부하고 버리기만 했던 어머니도 그가 그려낸 그림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일을 계기로 김씨는 곽규섭씨와 같은 자폐증을 겪는 이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자폐증 등 다양한 이유로 사회에서 외면 받는 이들에게 뭔가 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얼마 후 김씨는 화가 조득수, 크리스토프 니바졸리와 함께 로사이드를 설립했다.
▲ 로사이드의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인 아트서포터들. 왼쪽에 앉은 여성이 설립자 김효나씨 그리고 위쪽 시계방향으로 아트스텝 고재필(남자), 프로젝트 기획 최선영, 김인경(앉은이), 하명수. 유모차의 아이는 최선영씨의 아들 <사진=로사이드>
낙서가 작품이 되며…새로운 인생을 만들다
곽규섭씨는 로사이드 설립과 함께 시작한 ‘0호 작가’로서 많은 활동을 했다. 현재에는 음악작업에 몰두하며 로사이드 활동은 잠시 쉬고 있다. 창립자 김효나씨 역시 개인전 준비와 집필 등의 이유로 잠시 개인적 일에 몰두하고 있다.
프로젝트 기획자 최선영씨는 로사이드를 틀이 없는 단체라고 설명했다. 최씨는 “예술가들이 주로 참여하는 단체이다보니 자신의 개인전 준비나 기타 개인적인 사유로 잠시 떠나있기도 한다”며 “현재는 영상담당의 고재필씨, 디자인을 담당하는 권소희씨와 함께 총 세 명이 아트스텝으로 로사이드와 함께한다”고 말했다.
로사이드는 ‘멤버 아티스트’, ‘아트 서포터’, ‘후원 멤버’로 구성돼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 모두 로사이드와 함께하면서 동시에 언제든지 자유롭게 따로 활동을 할 수 있어 로사이드는 담이 낮은 단체라는 것이 최선영씨의 설명이다.
멤버 아티스트들은 로사이드가 발굴하거나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이들 중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 온 자폐환자·정신지체 장애자 등을 말한다.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현재 대다수는 자폐우들로 구성돼 있다.
후원 멤버들은 멤버 아티스트의 가족이거나 로사이드의 활동 취지에 공감하고 그 사정을 돕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다.
로사이드는 현재 고재필, 권소희, 최선영씨 세 명의 ‘아트 스텝’ 혹은 ‘공동창작 예술가’로 불리는 운영 스태프들이 상근하고 있다. 스텝들은 로사이드가 발굴했거나 로사이드를 찾아온 ‘멤버 아티스트’들과 함께 창작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함께 하는 것’이지 가르치는 곳 아냐
로사이드 참가와 관련, 최선영씨는 “대학을 다니며 우연히 특수학교를 촬영하는 팀의 보조로 처음 특수학교를 찾았다”며 “이 때 계기가 돼 특수학교에서 그림을 5~6년간 수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는 “그 특수학교는 개개인별 지도가 불가능해 한계가 분명했다”며 “심지어 그곳에 와서도 소외받는 아이들이 있는 것을 보고 괴로웠다”고 전했다.
▲ 로사이드의 프로젝트 기획 담당 최선영씨는 우연한 계기로 인해 특수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다 지금은 로사이드에서 작가들과 같이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또 최씨는 “그러던 중 로사이드란 단체를 알게 되고 직접 이곳에 찾아와 함께 하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같이 활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씨는 로사이드는 자폐아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최씨는 “미술계의 일부 사람들은 우리 회원들의 작품을 ‘아이그림’, ‘미완성의 그림’이라며 혹평을 하기도 한다”며 “우리의 목적은 그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아닌 소외받고 부족했던 회원들이 맘껏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최씨에 의하면 로사이드에서 활동하기 전 멤버 아티스트들은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그림이 낙서로 치부돼 왔고 그러다보니 그들에게 활동 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지 못했다. 그들에게 장을 마련해주자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반응들이 나타났다는 것이 최씨의 설명이다.
예술을 통한 소통이 불러온 작은 변화
많은 작가들이 거쳐 갔지만 꾸준히 활동을 하는 작가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라고 로사이드 측은 전했다. 하지만 로사이드와의 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몇몇 회원들은 작품 활동 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보였다고 한다.
최씨는 “자폐 역시 경증부터 중증까지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데 말을 하는 것과 별개로 의사소통이 힘든 것만은 사실이다”며 “의사소통이 힘들었던 어떤 작가는 전시회에 걸린 자기 작품을 관람객에게 끊임없이 설명하기도 했다”고 그들의 변화를 설명했다.
▲ 로사이드 작가들의 그림들. 위로부터 김동현, 정종필, 홍석환 작가의 그림 <사진=로사이드>
로사이드의 작가들이 꼭 그림만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아스퍼거 장애’를 가지고 있는 정진호씨의 경우 그의 표현 방법은 주로 ‘말’이다. 아스퍼거 장애는 일반 자폐증과는 달리 언어 발달 지연이 두드러지지 않아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현학적이거나 우회적인 언어를 지나치게 사용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정씨 역시 그런 증상을 겪고 있다. 자주 도서관을 방문해 엄청난 양의 책들을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정씨는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 가족들은 그의 말에 지치기 일쑤였다. 로사이드의 아트스텝들은 그의 말을 그저 들어줄 뿐이라고 했다.
최씨는 경청을 이렇게 설명했다. 최씨는 “정씨의 이야기를 듣기 전 꼭 ‘시간’을 정해놓는다. 그럼 그 시간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늘어놓다”며 “약속된 시각이 되면 그 말을 딱 잘라 끊는다. 정씨도 그렇게 따라준다”고 말했다.
로사이드에 관심이 많은 정현 미술평론가는 정씨의 이러한 사연을 듣고 로사이드와 함께 새로운 이벤트를 기획했다. 정 평론가가 강의하는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정씨의 강연을 연 것이다.
계원예대 디자인 관에서 열린 강의에서 정씨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강의를 했다. 로사이드 측은 정씨의 강의가 일반적인 강의와 같을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무궁무진한 스토리와 지식들이 쏟아졌지만 통상적인 강의의 질서정연한 설명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정씨의 말에 집중했고 그는 무사히 강의를 마칠 수 있었다. 강의 마지막엔 정씨가 직접 출제한 문제들로 학생들은 시험까지 치렀다. 90점으로 그날 강의 참여 학생 중 최고점을 받은 학생은 정 작가로부터 학위까지 수여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로사이드는 미술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술, 강의, 영화, 애니메이션 등 회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장’을 마련하는데 애쓰고 있다. 결과물에 집착하기 보다는 그 과정을 함께 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것이 로사이드 측의 설명이다.
▲ 지난 6월 27일 열린 작품 전시회 직후 작품 설명과 함께 질의응답 중인 로사이드 작가들. <사진=로사이드>
로사이드는 일본의 ‘장애예술운동’과 유사하다. 로사이드는 일본의 장애예술운동에서 영향을 받았고 그들이 지향하는 점도 이 운동과 맞닿아 있다고 한다.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라 불리는 이 같은 움직임은 각국별로 다양한 양상을 띠며 발달해 왔다. 주로 ‘천재성’에 주목하는 미국·유럽과 달리 일본에서는 1950~60년대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예술 활동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풀뿌리운동으로 곳곳에 알려져 장애예술운동으로 발전했다.
로사이드의 운영진 대부분은 부족한 예산으로 자비를 들여 모델이 됐던 일본의 장애예술복지기관 ‘민들레의 집’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로사이드는 이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하나의 뜻으로 한·일간 교류를 활성화 하고 있다.
작가 간 협업으로 영화제작…가족들에게 피운 변화의 씨앗
민들레의 집은 로사이드가 제작한 영화의 주된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진행된 ‘튤립, 민들레동산에 가다’ 프로젝트는 로사이드 소속 아티스트들이 민들레의 집에 일주일 동안 방문해 그 곳의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는 모습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담아냈다.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의사소통이 불편하다는 편견을 깨고 예술로 소통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목적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출시된 영화 ‘키티와 튤립’은 유튜브를 통해 알려져 독립영화제 ‘인디포럼’에 초청받아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에는 로사이드 창립에 영감을 줬던 곽규섭씨도 출연했다. 곽씨는 A4 종이 1/4 크기의 종이에 작가들의 성격·습관 등이 투영된 그림을 실제로나 영화속에서나 줄곧 그렸다. 영화는 곽씨를 포함해 여러 작가들이 만든 스토리를 엮어 작가 및 스태프 그리고 작가 가족까지 참여해 완성됐다.
기획담당 최선영씨는 “무엇보다 가족들의 참여는 큰 의미를 지닌다”며 “지쳐버린 가족들이 작가와의 대화에 참여하고 토크콘서트에도 나가는 작가들을 지켜보며 가족 간 관계까지 화목해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곁에서 작가들의 가족들 특히 어머니들을 지켜볼 때 위대하다고 생각될 때가 많다”며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가 돼보니 작가들의 어머니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껴진다”고 전했다.
▲ 지난 2013년 9월 서울시 성북구청 아트홀에서는 한일장애예술가 국제교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튤립, 민들레동산에 가다’가 개최됐다. 이 프로젝트로 완성된 영화 ‘키티와 튤립’에는 곽규섭씨와 그의 어머니도 출연했다. 어머니는 자식의 그림을 낙서로 치부하고 버리기만 하다가 영화에까지 나왔다. 사진 위는 ‘튤립, 민들레동산에 가다’의 포스터, 아래는 곽규섭 작가와 그의 어머니의 영화촬영 모습. <사진=로사이드>
로사이드는 지난해 메세나협회를 통해 자매결연한 삼성문화재단과 3년간의 후원을 약속받았다. 올 초 지원을 받아 큰 힘이 되었으나 예산이 부족한 점은 여전했다. 로사이드는 작가들의 작품을 상품화시켜 판매하는 등 작가들을 위한 예산 마련에 애쓰고 있다.
하지만 이런 로사이드의 모습을 보고 비슷한 일을 하는 일부 ‘사회적기업’들이 상품화를 걸고넘어지며 견제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최선영씨는 목적이 아닌 과정에 주목하는 사회가 되기엔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최씨는 “작가들을 향한 응원까진 바리지 않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들이 개선되고 이들이 꾸준히 창작활동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며 “로사이드의 지속을 위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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