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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 복개돼 대학로의 일부가 된 ‘대학천’은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 전 문리대 앞에서 청계천 쪽으로 흐르던 하천이다. 서적도매상의 산실이었던 ‘대학천 책골목’은 청계천 가에 흩어져 있던 책 도매상들이 1970년 들어선 동대문 종합시장 뒷골목에 모여들면서 형성됐다. ‘대학천 책 도매상가’는 70년대 이후 신간도서시장의 메카로 떠오르며 한때 서점 수가 80여개에 달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1981년 설립된 대형서점 교보문고가 성공적으로 정착하자 전국적으로 큰 규모의 서점들이 계속적으로 생겨났고, 동네 서점들이 점차 자취를 감추면서 ‘대학천 책 도매상가’는 쇠퇴기에 접어들게 된다. 특히 교보문고, 종로서적이 1997년 인터넷서점을 개설하고, 1999년 국내 최초의 온라인전문서점인 ‘YES 24’의 등장 이후 온라인 서점들이 잇달아 도서 유통시장에 뛰어들며 ‘대학천 책 도매상가’를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었다. 온라인서점이 가져온 대대적인 변화의 여파로 현재 ‘대학천 책 도매상가’는 10여개의 서점만이 남아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스카이데일리가 이제는 추억의 상권이 돼버린 ‘대학천 책 도매상가’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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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천 상가’ 1층에는 작은 골목을 중심으로 양쪽에 10여개 서점이 늘어서 있다. 전성기를 맞았던 70년대에는 80여개에 달했으나 대형서점의 확대와 인터넷 서점의 영향 등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취급하고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모은다. 위 지도는 종로6가 대학천 책도매상가 위치도. ⓒ스카이데일리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 9번 출구로 나와 약 200m 정도 직진하면 종합상가인 ‘대학천 상가’가 눈에 들어온다. ‘대학천 책 도매상가’를 구성하는 서점들은 이 상가 1층에 밀집돼 있다.
전성기인 1970~80년대 80여개에 달했던 서점 수는 현재는 10여개로 줄어들었고, 비좁은 골목 양쪽에 늘어서 있었다. 각 서점 앞에는 책이 쌓여져 있거나 포장된 책 묶음들이 나와 있어 ‘책방 골목’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대학천 책 도매상가’의 서점들은 계약을 맺은 출판사에 따라 제각각 취급하는 분야가 달랐다. 일반 서적에서부터 각종 사전, 아동도서, 전집, 한방서적, 법서, 종교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모습이었다.
현재 남아있는 서점들은 보통 20~50년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서점들도 대부분 월세를 내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는 게 이곳 상인들의 전언이다.
한 상인은 “과거에는 책 도매상가가 모두 서점으로 이뤄졌었는데 상당수 서점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그 자리에 특정 분야라고 할 것 없이 다양한 업종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온라인서점 등장으로 동네서점 급감하며 책 도매상 몰락
한 시대를 풍미했던 책 도매상들이 이처럼 암흑기에 접어든 이유는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의 등장 여파 때문이다.
2002년 부도 처리된 종로서적과 더불어 한국 대형서점의 쌍벽을 이뤘던 교보문고가 1981년 문을 열면서 서점의 대형화 현상이 가속화됐고, 동네마다 한두 개씩 분포돼 있던 100평 미만의 소형서점들이 대형서점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문을 닫기 시작했다. 또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90년대 후반부터 ‘예스24’를 필두로 속속 등장한 온라인서점들의 저가 공세에 동네 서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 ‘대승서적’은 주로 학교 및 공공 도서관에 서적을 판매하고 있었다. ‘대승서적’ 대표는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의 운영방식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수익구조의 차이를 지적했다. ‘상문서적’은 서점의 유통구조를 설명하면서 책시장 유통변화를 설명했고, ‘만나서적’은 가게 실정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며 이를 ‘자영업자의 눈물’에 비유했다. 위사진은 대승·상문·만나서적의 모습, 아래사진은 대학 및 법서적 을 취급하는 상문서적 내부 모습. ⓒ스카이데일리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문구류를 포함하지 않은 전국의 순수 서점 수는 1999년 4897개에서 2001년 2646개로 급감했고, 2003년 2247개, 2005년 2103개, 2007년 2042개, 2009년 1825개, 그리고 지난해 1625개로 꾸준히 감소세를 기록했다.
서점 수의 감소는 소매점을 주요 고객으로 책을 판매하는 도매상들에게 지대한 타격을 입혔다. ‘대학천 책 도매상가’ 서점들의 경우 책 유통시장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대부분 폐업 수순을 밟았다.
이곳에 자리 잡은 지 20년 된 ‘대승서적’ 대표는 “요즘에는 일반서점에 납품하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며 “주로 납품하는 곳은 학교와 도서관인데 주문량에 큰 변화가 없어 거의 수익이 나질 않는다”고 푸념했다.
이어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은 출판사와 직거래를 하며 판매보다는 홍보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도매상과는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대학서적 및 법서를 취급하는 ‘상문서적’ 대표는 “도매상들은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소매점에 판매해 보통 약 5% 정도의 수익을 얻는다”며 “수익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임대료는 늘어나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또 그는 “도매상들이 많은 책을 각 지방 서점에 공급하는데 한계가 생긴데다가 소매점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출판사들과 직거래를 하기 시작해 도매상들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30년 전통의 ‘만나서적’은 카톨릭, 불교 등 종교서적과 대학·일반도서 전문이다. 이곳에서 일한지 5년 됐다는 직원은 “학교와 도서관 등에 책을 납품하는 것도 대형서점 때문에 힘들어지고 있다”며 “일례로 최근 1500만원 상당의 책 주문이 들어왔는데 한 대형서점에서 주문자에게 900만원을 제시하는 바람에 계약을 뺏긴 적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서적을 주로 취급하는 ‘직매도서’는 주로 학교 구내 서점에 책을 판매하고 있었다. ‘직매도서’ 대표는 “예전과는 달리 학생들이 교재를 구입하지 않고 학교 인근 인쇄소에서 단체로 책을 제본하는 경우가 많아 책 구매가 감소했다”고 전했다.
오는 11월 도서정가제 개정…고착된 책 시장 변화 올까
도매상들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도서정가제’ 개정에 희망을 걸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등 온라인 서점들이 출판사가 정한 도서가격보다 싸게 팔 수 없도록 함으로써 책값의 과열 인하 경쟁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2003년부터 시행됐다. 그 내용은 온라인서점에 한해 출간 1년 내 신간도서는 10% 할인을 허용하고, 1년이 지난 책들은 자율적으로 할인 폭을 정하는 것이었다.
▲ 50년간 2대째 ‘유한서적’을 운영하고 있는 상가조합 대표는 개정된 ‘도서정가제’ 실시가 정착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책 시장이 상생해 나가야 책시장이 되살아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위사진은 유한서적 간판모습, 아래사진은 유한서적에서 취급하는 아동단행 서적 모습. ⓒ스카이데일리
이후 2007년 10월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따라 신간도서를 18개월 이내로 변경했고, 신간 10% 할인을 오프라인 서점에도 적용시켰다. 오는 11월 21일 개정되는 도서정가제는 출간 18개월 지난 서적에 대해서도 할인율을 자유롭게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50년간 2대에 걸쳐 ‘유한서적’을 운영하고 있는 상가조합 대표는 “20개에 달했던 온라인서점이 5개 이내로 줄어든 것을 보면 할인 판매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방증”이라며 “11월 개정되는 도서정가제가 정착된 후, 일반서점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시작하면 서점 개업은 다시 활기를 띄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현재 온라인서점들이 도서정가제 개정에 앞서 가능한 많은 책을 판매하기 위해 최고 6~70% 할인을 실시하고 있어 최근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며 “도서정가제 개정을 계기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서로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만 책 시장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미 동네서점들이 망하고 사라졌는데 지금에 와서 도서정가제를 개정해봤자 큰 영향력은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목소리도 만만치 않아 책 시장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형국이다.
한편 이곳 책 도매상가 내에 있는 서점은 10여평 이상의 크기도 몇 군데 있으나 대부분 평균 1~2평 정도의 크기였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2평 기준으로 보증금 500만원, 월세 40만원 수준이고 권리금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18평 크기의 ‘만나서적’의 경우 보증금 1500, 월세 187만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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