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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보험 청약서의 “임신 중인 태아가 다태아입니까?”라는 질문은 사실상 “그렇다면 태아보험은 포기하십시오”라는 말과 같았다. 여기에 ‘예’라고 답변하면, 계약은 사실상 끝이었다. 보험심사 부서에 전달되기도 전에 시스템에서 거절 처리됐다. 다태아가 곧 ‘리스크’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꽤 오래 지속됐다. 실제로,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쌍둥이 자녀를 둔 지인은 “임신 당시 태아보험 가입을 하고 싶었지만 두 명이라서 어렵다는 말만 들었다”고 말했다. 두 아이를 동시에 키우는 어려움과 동시에 의료비 걱정까지 온전히 떠안아야 했던 셈이다.
이 상황은 작년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공론화됐다. 작년 10월, 금융감독원 국감에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문제를 지적했고 이복현 당시 금감원장은 “실태를 잘 모르니 적극적으로 살펴보겠다”고 답변했다. 이 발언이 계기가 돼, 같은 해 12월 금감원과 금융위는 제5차 보험개혁회의에서 “삼둥이 이상 다태아도 단지 다태아라는 이유만으로 가입을 거부당해선 안 된다”는 원칙적 개선안을 내놨다.
시장도 조금씩 움직였다. 현대해상의 굿앤굿 어린이보험은 그 상징적인 사례다. 태아 단계부터 가입할 수 있는 이 상품은 선천적 이상, 조산, 신생아 집중치료, 고위험 산모질환 등을 폭넓게 보장하면서 쌍둥이·세 쌍둥이 등 다태아도 하나의 증권 안에서 함께 인수하는 구조를 내세웠다. 다자녀 가정에는 자녀 수에 따라 보험료 할인을 받을 수도 있다. 과거 시스템에서 일괄 거절되던 다태아가 이제는 설계서의 전제가 됐다는 점 만으로도 시대 변화가 느껴진다.
그러나 올해 10월 열린 국감에서 여전한 문제들이 드러났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험개혁회의 이후 인수 기준을 완화했지만, 실제 가입 건수는 크게 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통계에서도 체감 변화는 크지 않다. 다태아 출산 비중은 2004년 2.1%에서 2024년에는 5.7%로 20년 새 2배 이상 높아졌지만, 다태아 태아보험 가입 건수는 뚜렷하게 증가하지 않았다.
현장의 목소리는 더 냉정했다. 특히 일부 보험사들은 다태아 보험 인수를 사실상 포기했고, 또 다른 회사는 판매 채널을 축소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가입이 가능하더라도 임신 주수에 대한 제약이 있어 가능한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은 기본이다. 한 법인보험대리점 설계사는 “쌍둥이는 겉으로는 인수 가능해 보이지만, 뇌·심장 같은 핵심 담보를 빼거나 태아 한 명만 보장하는 조건으로 승인되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둥이는 말할 것도 없이 보험 가입 문턱이 더 높다.
물론 보험사 입장에서 다태아는 여전히 큰 부담이다. 조산·저체중아·신생아 중환자실 입원 등 의료 위험이 높아 출산 전부터 장기 의료비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고, 이 때문에 일부 보험사는 인수 기준이 완화됐지만 판매를 접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미 개별 보험사의 영업 판단을 넘어섰다. 출산율은 떨어지는데 난임 시술 확대로 다태아 출산이 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들을 위한 안전망 설계는 더 이상 민간 보험사만의 과제가 아니다. 올해 국감에서 지적한 것처럼 국가와 지자체가 고위험 임신·출산에 대한 공적 책임을 강화하고, 민간보험은 그 위에서 역할을 나누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신호는 보험상담 창구의 첫마디다. “다태아라서 안 됩니다”가 아니라 “이 조건이라면 가입 가능합니다”라는 안내가 일상화 될 날을 기대해 본다. 작년과 올해, 두 해의 국감이 제기한 화두가 그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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