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그거 이미 하고 있는 거 아니야?”
고속도로에서 운전대에 손만 얹은 채 앞차를 따라가는 자동차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하기 쉽다. 가속페달을 밟지 않아도 속도를 맞추고, 앞차가 느려지면 알아서 감속한다. 하지만 운전자가 믿고 맡긴 이 기능은 ‘자율주행’이 아니다. 적응형 순항제어 기능(ACC·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라는 주행보조 장치다.
문제는 이 차이를 제대로 아는 운전자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ACC 등 주행보조 기능을 자율주행처럼 믿고 전방주시를 소홀히 하면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시간이 늦어져 교통사고 위험이 커질 수 있다.
AXA손해보험이 15일 공개한 ‘2025 운전자 교통안전 의식 조사’에 따르면 ACC와 자율주행 기능의 차이를 알고 있다고 답한 운전자는 34.6%에 불과했다. 반대로 운전자 65.4%는 두 기능의 차이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셈이다. ACC 자체의 개념을 안다는 응답도 41.4%에 그쳤다. AXA손해보험은 2025년 국내 운전면허 소지자 1400명을 대상으로 이번 조사를 진행했다.
ACC는 운전자가 설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앞차와의 거리를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기능이다. 앞차가 속도를 낮추면 함께 감속하고 다시 속도를 높이면 설정 범위 안에서 가속한다. 장거리 운전의 피로를 줄이는 데 도움을 주지만 모든 도로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는 자율주행 기술은 아니다.
특히 정지해 있는 차량이나 일부 장애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결국 ACC가 작동하고 있더라도 사고를 막기 위한 마지막 판단과 대응은 운전자에게 남아 있다. ‘차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순간 주행보조 기능의 편리함이 오히려 위험 요인으로 바뀔 수 있는 이유다.
그런데 기능에 대한 이해와 달리 신뢰도는 상당히 높았다. 2025년 AXA손해보험 조사에서 ACC 장착 차량 운전자의 85.8%가 해당 기능을 절반 이상 신뢰한다고 답했다.
운전 경험이 짧을수록 신뢰도는 더 높았다. 운전면허 취득 후 5년 미만인 운전자의 ACC 신뢰도는 93.1%에 달했다. 10년 이상 운전자는 85.5%, 5년 이상 10년 미만 운전자는 84.6%였다. 기능에 대한 높은 신뢰가 반드시 정확한 이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ACC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장소도 사고가 나면 피해가 커질 수 있는 고속도로였다. 2025년 AXA손해보험 조사에서 ACC 장착 차량 운전자의 62.8%는 고속도로에서 이 기능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답했다. 정체 구간은 27.4%, 일반도로는 9.8%였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과 ACC 이용이 겹치는 경우다. 정체 구간에서 전화기를 손에 들고 자주 통화한다고 답한 운전자 가운데 52.3%가 ACC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주행보조 기능이 작동한다는 이유로 운전자의 시선과 주의가 도로에서 벗어나면 갑작스러운 정체나 정지 차량을 발견했을 때 대응이 늦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고속도로 사고 지표도 이런 우려를 키우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6년 1~5월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는 9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3명보다 52.4% 늘었다.
특히 정차 차량이나 기존 사고 현장을 뒤늦게 발견해 발생한 2차 사고 사망자는 같은 기간 3명에서 15명으로 5배 증가했다. 정체·서행 구간에서 발생한 사고 사망자도 12명으로 전체 고속도로 사고 사망자의 12.5%를 차지했다. 경찰은 ACC 등 주행보조 기능을 과신해 전방주시를 소홀히 하는 사례가 늘어난 점을 최근 2차 사고 증가 배경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AXA손해보험 관계자는 “ACC는 운전자의 피로를 줄이고 편안한 주행을 지원하지만 모든 주행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는 자율주행 기술은 결코 아니다”며 “기능에 대한 신뢰가 높은 만큼 역할과 한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ACC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은 채 주행 상황에 따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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