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사태도, 평생 대학도 다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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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훈의 시사토크… 20세기 사고에 갇힌 대학은 미래가 없다

고강훈 기자페이지 + 입력 2016-09-13 10:19:20

▲ 고강훈 편집위원 ⓒ스카이데일리

# 대학 진학 희망자 숫자가 대학 정원과 비슷해졌다. 현 상태라면 4~5년 후 대학은 지금보다 신입생을 15만명 이상 줄여야 한다.

이 같은 대학의 위기는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 때문이지만, 대학 졸업장의 가치가 떨어진 탓도 있다. 명문대를 졸업해도 취업이 쉽지 않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현실이 됐다. 대학 진학률 70% 선이 위협받고 있다.

유명 대학의 브랜드 가치도 함께 하락하고 있다. 48일째 본관 점거 농성 중인 이화여대 사태도 취업난 및 대학 브랜드 하락과 무관하지 않다. 이대 학생 및 졸업생은 평생교육 단과대학 유치가 대학 브랜드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화여대만의 일이 아니다. 서강대 이사회나 서울대 재학생들이 지역 캠퍼스 신설에 반대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 한국의 대학은 30~4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해도 너무한 구석이 많다. 서울대 이혜정 연구교수는 지난해 ‘서울대 A+ 학점의 비밀’을 공개했다. 2학기 연속 학점 4.0 이상을 맞은 서울대생 150명 중 실험에 응한 46명을 분석한 결과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교수에 따르면 4.0 이상을 맞으려면 교수님 얘기에 의문을 갖지 않고, 농담까지 받아 적고, 키워드가 아닌 문장 형태로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 한국 최고 학부가 21세기에도 ‘학점 앵무새’를 양산 중이다. 46명 중 41명은 ‘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어도 교수님과 견해가 다르면 답안지엔 안 쓰겠다’고 답했다.

대학의 현주소는 20세기 중후반에 머물고 있지만, 대학 입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크게 달라졌다. 앵무새 신입생을 원하는 대학은 별로 없다. 지난 12일부터 2017학년도 대입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됐는데, 서울 상위권 대학의 경우 신입생 정원의 70%를 수시로 선발한다. 서울대는 78%를 수시로 뽑는다. 의치대만 빼놓고 보면 이제 수시가 사실상의 정시가 됐고, 정시는 패자 부활전의 성격이 강해졌다.

수시 중에서도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대세가 되고 있다. 올해 수시 정원의 32%, 내년엔 더 많이 뽑게 될 학종은 학교 성적만이 아니라 동아리, 봉사, 독서 등의 비교과 활동을 두루 평가한다. 학종을 비롯한 수시 모집에 최적화된 특목고와 일반고 간의 비교과 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

# 일반고 중에는 심화 과정이나 비교과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학교가 절대 다수다. 수시 생기부나 자소서에 ‘똘똘한 활동’ 3개도 채워넣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반면 전국형 자사고나 몇몇 특목고 학생들은 교내 활동만 열심히 하면, 자소서에 쓸 얘기가 차고 넘친다.

그렇다면 일반고 학생들이 토론과 프로젝트 중심으로 수업이 짜여진 자사고 학생들과 경쟁할만한 무기가 있을까. 과거엔 없었지만 지금은 하나 둘 생겨났다.

다름아닌 ‘무크’( Massive Open Online Course) 즉 온라인 공개 강의다. 일반고 학생도 마음만 먹으면 국내외 무크를 통해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심화 학습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영어가 좀 되면 하버드, MIT 등 내로라하는 명문대 강의도 들을 수 있다. 매번 테스트를 통과하면 과목별 수료증도 준다.

무크는 자소서를 채울 심화 학습에만 도움 되는 게 아니다. 적성, 진로를 타진해볼 수 있고, 실제 진학할 대학 전공도 미리 탐색해 볼 수 있다. 수능이 자격 시험화 되면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논술이나 구술 면접 때도 할 말이 많아진다. 명강의를 선택 수강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쌍방향 소통도 가능하다.

# 대학도 무크 무풍지대가 아니다. 명문 사립대에 다니는 K군은 수업시간에 어리둥절한 일을 겪었다. 경제학 전공 교수님이 수업 시간 내내 미적분 동영상을 틀어주었다. 수업 태만의 이유는 상당히 '양심적'이었다. 교수님 왈 “나 보다 잘 가르친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대입 학원시장에서는 1타 강사 몇 명이 인강을 장악하고 있다. 명문 대학마저도 앞으로 점점 무크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듯하다. 국경 너머 국제적인 1타 강사진이 등장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강의 수용인원 제한이 없다. 인강처럼 1타 강사가 시장을 독점하는 게 소비자 입장에선 당연해 보인다.

4~5년 전에 3대 무크 서비스 중 하나인 코세라(Coursera)에서 20세기 정치학 강의를 엿본 적이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의 육성 녹음, 풍부한 자료와 세계사적 관점…. 차원이 다른,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강의였다.

무크의 확산은 시간 문제다. 이런 관점에서 이대 점거 농성을 쳐다보면 엄청난 돈을 써가며 4대강을 망친 지난 정권의 과오가 겹쳐진다. 한 학교당 30억원을 퍼주고도 이대 사태를 부른 교과부의 평생대학 추진이나 학생들의 평생 대학 거부마저도 부질없다. 비전 없는 지역 캠퍼스 공간 확장 또한 요즘 시대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신인류 탄생을 앞두고, 인적 자원이 유일한 자산인 나라에서, 대학이 20세기에 머물러 있어선 우리의 미래가 어둡다.

고강훈 grp103@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