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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성 원자력 발전소(사진)는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있다. 나아리 마을 주민들은 최근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원자력 발전소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월성원전 측에 따르면 원전 4기를 수동정지하고 점검 중이지만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방사능 누출 가능성이 있는 자동정지 괴소문이 돌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경북 경주·포항=이경엽 기자] “지금도 그때 생각만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온몸이 덜덜 떨려. 지진 때문에 너무 무서워서 병원에 가서 신경안정제를 받아왔다니까”
김태술(68·여) 씨는 지난 10일 간 발생한 지진의 진앙지인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덕촌리에 거주한다. 그는 당시를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증언을 했다. 김씨는 “일단 무서워서 집에서 뛰쳐나와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막 뛰었다”며 “지금 생각해도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지진으로 인해 가슴이 아파서 버스 타고 40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병원에 갔더니 신경증이라고 했다. 신경안정제를 받아와서 먹으니까 좀 나아졌다”며 “병원에는 나와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고 전했다.
황주평 씨는 경주시 황오동에 위치한 5층짜리 아파트 5층에 거주한다. 황 씨는 “첫 지진이 왔을 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가만히 있었는데 진도 5.8의 두 번째 지진이 왔을 때는 정신을 차리고 집밖으로 뛰쳐나왔다”고 증언했다.
황 씨는 이어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아파트 주민들 전부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며 “이불을 들고 나온 사람부터 잠옷차림으로 나온 사람까지 모두 급하게 나온 기색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그날 밤 황씨 가족은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동차 안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좁은 자동차 안에서 10시간 넘게 앉아 있었던 것도 고역이었지만 집으로 들어가는 것은 더 무서웠다고 한다.
황 씨는 “언론에 보니까 이런 여진이 길게는 1년까지 계속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진짜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서는 느낌이었다”며 “경주는 내가 평생 뿌리 내린 삶의 터전인데 ‘터전을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야하는 것 아닌가’는 두려움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시 지진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은 가족 모두에게 감염됐다. 지진 발생 이후 고등학교에 다니는 황 씨의 두 딸은 ‘생존 가방’을 꾸려 현관문 앞에 비치해뒀다.
▲ 김태술(68·여)씨는 “지진 이후 늘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며 기자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아들 덕분에 담장을 수리했다는 서남연(68·여)씨 역시 “지진 생각만해도 몸서리가 쳐진다”고 말했다. 사진은 경주시 나남면에 거주하는 서씨(왼쪽)와 김씨가 기자에게 지진공포를 증언하고 있는 모습 ⓒ스카이데일리
계속되는 여진에 밤잠 설치는 경주…언제 또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더 공포
황남동에서 만난 주민 최진구(가명) 씨는 여진으로 잠을 설치고 있었다. 그는 “낮 동안 밖에서 활동할 때는 진도 3.0 이하 여진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자려고 누우면 진도 2.0에서 3.0 사이 여진도 잘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 12일 지진 이후로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며 “다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지진에 대한 공포가 훨씬 더 크다”고 말했다. 최 씨는 진도 5.0이 넘는 지진이 연달아 일어난 지 일주일 만에 진도 4.5의 여진이 다시 발생하자 불안감으로 인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상북도가 지난 20일까지 집계해 발표한 지진 피해자 총 48명중 31명이 경주 사람이다. 세부적으로 단순한 찰과상 외래 환자 22명, 귀가 조치 부상자 3명, 입원자 6명 등이다.
신체적 피해자보다 정신적 피해자가 더 많이 발생했다. 경상북도에서는 지난 17일부터 전문심리상담사 7명이 지진피해자를 대상으로 심리상담을 해주고 있다. 지난 20일까지 3일간 경주시 주민은 66명이 상담을 받았다.
대통령, 야당대표 줄이어 찾는 월성 원전…인근 주민 “지진보다 더 불안하다”
이번 지진으로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은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나아리는 국내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인 월성 원자력 발전소(이하·월성원전)에서 1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스카이데일리는 나아리와 월성원전을 찾았다. 원전 입구에는 경찰들이 있었고 고급 승용차와 대형 버스가 줄줄이 들어왔다. 전날(19일) 일어났던 진도 4.5 여진 이후 박근혜 대통령,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월성원전을 찾다.
월성원전 측에 따르면 9·12 지진 직후 매뉴얼에 따라 원전 4기를 수동정지하고 점검 중이다. 지난 15일까지 진행된 1차 점검 결과 이상이 없음이 밝혀졌으며 현재는 2차 점검이 진행중이다.
나아리에 거주하는 김승환(58) 씨는 월성원전 입구 앞에 앉아서 꽹가리를 두드렸다. 지진 발생으로 인한 원전의 위험성을 알려주고자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다.
▲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은 경주시 뿐만 아니라 인근의 포항시까지 강타했다. 경주와 포항 시민은 물론 인근 지역의 주민들까지 지진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이구동성 말했다. 사진은 지진 직후 피해를 입은 나아리의 한 할인마트 모습 ⓒ스카이데일리
김 씨는 “우리 집은 월성원전으로부터 정확히 914m 떨어져 있는 원전과 가장 가까운 주택이다”며 “원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내가 나서기는 했지만 나아리 마을 주민 모두가 지진보다는 원전 때문에 더 불안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월성원전은 설계 수명이 다한 낡은 원전을 억지로 돌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 고장이 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위험천만한 원전”이라며 “주민들 사이에서 수동정지 한 것으로 알려진 4기중 2기가 수동정지가 아닌 자동정지를 했다는 괴소문이 돌아 불안해 죽겠다”고 말했다.
원자력 전문가에 따르면 원전은 원전 주변에 노출된 방사능이 위험치를 넘어설 경우 자동정지한다. 따라서 자동정지는 수동정지보다 위험한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리 한아름 할인마트 사장은 “우리 마을은 해안가에 위치한 마을이다. 제일 겁이 났던 두 가지가 바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쓰나미(지진해일)와 원전 사고였다”며 “이번 지진은 내륙이 진앙지여서 지진해일 가능성이 없다는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원전 사고는 여전히 두렵다”고 했다.
이어 “막말로 경주시내에서 지진이 일어나면 건물 밖으로 나오면 살 수도 있지만 우리 동네는 집에 있으면 깔려 죽고 집밖으로 나가면 방사능 노출로 죽는 신세다”고 하소연했다.
주민 불안에 대해 월성원전 관계자는 “월성 원전은 진도 6.5의 지진도 버틸 수 있는 내진 설계가 돼 지진에 안전하다”며 “지금처럼 발전기를 멈췄을 경우에는 진도 7.0에도 끄떡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많은 주민들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비교하며 불안해하는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지진이나 해일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전원 문제로 인한 노심용융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며 “월성 원전은 그런 문제에 대한 예방책이 잘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 자료 : 경상북도 ⓒ스카이데일리
경주 다음 피해 큰 포항…시민들 “지진 노이로제로 사람 많은 곳 겁나서 못 가”
이번 지진은 경상북도에 있는 여러 도시에도 영향을 미쳤다. 경주 다음으로 영향을 받은 곳은 포항시다. 경상북도에서 집계한 지진으로 인한 인명피해 48명 중 17명이 포항에서 다쳤다. 전체 4454건의 재산피해 신고 중 138건이 포항에서 발생했다.
포항에 거주하는 조윤진(28) 씨는 “처음 진도 5.1의 지진이 왔을 때는 발만 동동 굴렀다”며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먹통이어서 겁이 났다”고 했다. 이어 조 씨는 “채 한 시간도 안 돼 진도 5.8의 지진이 왔을 때는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전부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밝혔다.
조 씨는 “나를 포함한 포항 시민들이 지진 노이로제에 걸렸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불안에 떨고 있다”며 “몇몇 지인은 백화점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건물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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