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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의 대통령은 권력의 1인자이며 권부를 상징한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최고 통치권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의 대통령은 서구식 민주주의 기반위에 우리의 유교식 왕조문화 전통이 더해져 권위가 지나치게 강한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대통령이 국민의 가장 큰 심부름꾼이라는 의미보다 국민위에 군림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이처럼 군림을 하다보면 권력은 국민을 위해 쓰이기보다 사리사욕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하나같이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 ‘주권(주인)의 위임행위’라는 본연의 소명의식을 갖지 못한 흔적들을 많이 남겼다. 무소불위의 권력남용은 결국 주인인 국민들의 칼을 맞거나 스스로 부메랑을 맞아 비참하게 무너지기도 했다. 불명예 하야(퇴진)하거나 시해되고 감옥을 갔으며 또한 자살하기까지 한 대통령의 비극적 역사가 지금도 진행형인 느낌이다. 또 나라를 송두리째 풍전등화의 위기로 떨어뜨리기도 했고 온갖 권력형 비리들이 난무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임기말 예외가 아닌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이제 현직 대통령의 비리 게이트라는 미증유의 사태로 번지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 되면 권부의 상징은 그야말로 내려갈 곳이 없게 추락하게 된다. 청와대를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닌 배경이다.
정말 청와대를 이전해야 대통령들의 비극사를 막을 수 있을까. 많은 풍수가들이 지적하는 청와대 터에 대한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사실 과학적이도 않다. 하지만 워낙 민심이 흉흉하다 보니 청와대 흉터 논란이 다시 일고 있는 것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가 신의 영역을 침범한 자리에 있다거나 백두산에서 이어진 북한산·북안산의 지기(地氣)가 서울로 내려가지 못하게 청와대가 막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다시 나돈다. 다시 말해 청와대가 북악산 용맥의 목을 짓누르고 있어 아주 않 좋은 터라는 것이다. 청와대 터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북악산이 돌산인데다 청와대 터와 등을 돌리고 있어 흉터라는 말이 회자된다. 또 청와대 터에 물이 없고 북서쪽 자하문은 황천살(함몰처)라는 무서운 풍설도 있다. 풍수가들에 따르면 황천살은 청룡이 백호보다 낮아 청룡의 어깨 부분이 푹 꺼진 지형을 일컫는데, 한마디로 ‘죽어나가는 땅’(葬身之地, 몸을 묻는 땅)으로 표현된다. 풍수에서는 아주 꺼리는 대표적인 곳이다.
이런 흉터 논란을 애써 부인하기 보다 한번쯤 고찰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청와대 이전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이전지로 거론되는 세종시는 현재 국회와 청와대 이전을 마무리에 해야 행정도시가 완성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수현 세종참여자치연대 사무총장은 “수도권 집중 현상을 완화하고 지방분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국회는 물론 청와대까지 세종시에 내려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대권 잠룡 후보인 남경필 경기지사가 “청와대와 국회가 서울을 빠져나가야 서울 및 수도권이 경제·문화·관광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역시 충청권 대권 잠룡인 안희정 충남도지사 역시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시로 이전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원혜영 더민주 의원 또한 거들었다. 그는 “일각에서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데 아주 좋은 제안이다”고 밝히고 나섰다. 원 의원은 “대통령의 분권에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것 이외에도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지방으로 나누는 지방분권이 포함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세종시)은 “국회분원 및 청와대 제2집무실을 세종시로 이전해 실질적인 행정수도를 완성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청와대 이전을 검토해볼 필요성이 있는 이유는 이처럼 흉터 논란, 행정도시 완성, 고압적 권력의 분산 등의 배경에서다. 이 중에서도 우리는 대통령 권력이 너무 무소불위의 군림하는 제왕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한 국민적 인식전환에 방점을 두고 이전 필요성을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은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만 통치행위의 정당성을 갖는다.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헌법 제69조에 명시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내용의 대국민 약속을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런 약속은 국민들에게 배신으로 돌아왔다. 우리 현대사의 대통령 권력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비극의 점철’이었다. 그 어떤 대통령도 국민적 저항이나 비리연루 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영구적 독재를 꿈꾸다 4·19 혁명에 의해 불명예 퇴진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하의 총탄에 역시 독재의 종지부를 찍었다.
천문학적 비리에 연루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임기 후 옥살이를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나란히 법정에 서는 운명을 맞았다. 이들 전·노 군사정부는 또 형제와 친인척들의 비리로 몸살을 알았다. 이후 김영삼·김대중·노태우·이명박 전 대통령들 모두 아들이나 형제들의 비리 복마전에 직·간접 얽혀 국민적 비난을 받았다.
언제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임기가 끝나면 낮을 들기도 부끄러울 만큼 임기 중 이른바 대도(大盜)의 막후가 돼야 할까. 청와대는 대통령과 그 주변의 도둑들이 음산하게 꽈리를 튼 소굴이 돼 버린 섬칫한 느낌이다. 도둑 중에서도 가장 큰 도둑이 대통령 권력 막후라는 무대에 늘 도사리고 있다면 그 독을 맞는 피해자는 결국 국민들이다. 주인이 불행한 나라가 과연 민(民)의 나라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국민들은 청와대의 비극적 역사를 보면서 그 불행을 몸으로 맞고 있다. 더욱 우울한 것은 앞으로 나올 대통령들도 그런 비극의 한 중심에 서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데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는 커녕 국민 재산을 훔치고 나라를 위기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황제권위가 그래서 종식을 해야 한다. 친국민적인 이미지의 청와대가 될 수 있도록 이전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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