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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대문 상인들의 축구모임으로 1998년 시작된 야생마는 현재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어우러진 축구 동호회로 변모했다. 18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나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창립멤버들의 전언이다. [사진= 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학생들이 하교를 마친 용답초등학교 운동장. 운동복 차림의 남성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서로 가벼운 인사를 나눈 이들은 이내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이들은 모두 왼쪽 가슴팍에 파란색 말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국내 조기 축구동호회 회원 수는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 1996년 국민생활체육회의회에 등록된 축구동호회는 약 6000개였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프로스포츠는 야구다. 그러나 동호회 숫자로는 축구를 따라올 수 없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축구 동호인은 300만명이다. 한국의 축구 동호회는 특정 연령대를 중심으로 모인 조기축구회 형태가 대부분이다.
일반인 축구 동호회 ‘야생마’는 지난 1998년 동대문 상인들이 친목 도모를 위해 만들어진 축구동호회다. 처음에는 동대문 상인들로만 구성된 모임이었다. 약 20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이탈하는 회원이 생겼다. 빈자리는 지인 소개나 인터넷 카페로 들어온 회원들이 채웠다. 지금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을 가진 25명의 정식회원이 모인 모임으로 발전했다.
기자가 인터뷰를 한 날은 영하의 칼바람이 불었다. 평일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었으나 몸이 떨릴 정도도 추웠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18명이 축구를 하기 위해 나왔다. 참석률이 80%를 육박했다. 축구를 위해 월차를 내는 회원도 있을 정도로 회원들의 축구사랑은 남달랐다.
현재 창립멤버는 단 3명만 남아있다. 곽동신 회장, 권병갑 사무국장, 서정배 회원은 동대문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원년 멤버다.
궂은 날씨·부상 굴하지 않는 ‘축구 열정’…“축구는 마약과 같다”
▲ 동호회 야생마는 신구 회원들 간 소통이 잘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회원들을 위해 실버 축구동호회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안정호, 곽동신, 서정배, 진호균, 권병갑 회원 ⓒ스카이데일리
“축구는 마약이에요. 마약”
야생마 회원들은 축구에 대해 한결같이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안정호(53)씨는 감독 겸 선수다. 축구동호회 개근 회원이다. 현재 사슴농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주업이 축구고 부업이 농장이라고 할만큼 축구광이다. 그가 활동하고 있는 축구동호회만 야생마 포함 4곳이다. 주말과 평일, 야간과 주간을 가리지 않는다. 적어도 일주일에 3~4번은 축구경기를 뛰고 있는 셈이다.
“축구는 몸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경기입니다. 그러다보니 감정이 서로 격해질 때도 있죠. 하지만 부딪히면서 친해지고 정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쌓은 팀워크로 경기를 이길 때만큼 즐거울 때도 없죠”
창립멤버 서정배(51)씨 역시 축구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다. 그는 수차례 큰 부상을 겪었음에도 계속해서 축구동호회에서 활약하고 있다. 전방십자인대·내척인대 파열, 연골 파열 등 부상의 종류도 다양했다. 부상으로 인해 1년 반가량은 축구를 못한 적도 있지만 회복하자마자 필드로 돌아올 만큼의 축구 애호가다. 그는 축구심판 자격증까지 소지하고 있다.
“회원들이 부상을 입고 동호회를 떠날 때만큼 아쉬울 때가 없더군요. 저는 ‘다시 또 부상을 입지 않을까’라는 두려움보다는 ‘축구를 또 하고 싶다’는 열망이 더 강해서 부상을 당해도 계속 축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쾌감은 경기에서 이길 때입니다”
서 씨는 십여년 전 한 축구동호회 대회에서 승리를 거뒀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했다.
“대회에서 이기는 것도 좋았지만 젊은 친구들과의 격렬한 몸싸움 끝에 얻는 승리여서 더욱 성취감이 있었습니다”
신구세대 ‘인화’…“아무리 축구가 좋아도 사람이 안 좋으면 못 하죠”
▲ 영하의 추운날씨는 물론 비가오거나 눈이 오는 궂은 날씨는 축구를 미루지 않는다. 이곳은 새로운 회원을 뽑을 때 실력이 아닌 인성을 중시해서 뽑는다. 그것이 상부상조하며 오래 동호회를 유지할 수 있었던 근간이다. ⓒ스카이데일리
타 축구동호회와 다른 야생마의 장점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회원들은 약속한 듯이 “사람들이 좋다”고 답했다. 야생마 회원은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야생마는 다른 곳과는 달리 신구세대의 갈등이 없다.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권병갑(51)씨는 과거 만났던 젊은 회원들의 버릇없는 행동에 대해 지적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 중에서는 나이대가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잔소리로 치부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해도 ‘여기 밖에 축구할 데가 없는 줄 아나’며 나가버리죠. 하지만 야생마에서 활동하는 젊은이들은 예의가 바르기 때문에 소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선후배 관계가 끈끈합니다”
이날 인터뷰를 한 회원 중 막낸 진호균(34)씨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시간 활용이 자유로워 평일 낮에 축구를 할 수 있다. 그가 다양한 연령대가 모인 야생마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회원들의 인성 때문이다.
“사실 동호회를 많이 하다 보니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프로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패스실수를 할 수 있음에도 짜증을 내는 사람들도 수두룩하죠. 아무리 축구가 재밌더라도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과 감정적인 마찰이 심하다면 경기를 즐기기 힘든데 야생마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곽동신(54) 동호회장은 인성을 중시해서 회원을 뽑기 때문에 회원들간 상부상조하는 문화가 잘 형성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랫동안 축구동호회를 하다보면 인성이 좋지 않은 젊은 친구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뽑게 될 때는 성격을 중요하게 볼 수밖에 없죠. 다행히 야생마는 인화가 잘 이뤄지다보니 단합도 잘 됩니다”
동호회 역사가 오래되다보니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회원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곽 회장은 야생마에서 실버 축구 동호회를 따로 만드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50~60대 회원이 따로 공을 찰 수 있는 모임을 만드는 것을 구상 중에 있습니다. 축구동호회를 하는 회원들은 또래에 비해 체력이 강하지만 아무래도 젊은 친구들과는 체력적인 차이가 있죠. 60대가 되면 동호회를 이탈하는 회원들이 많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축구를 즐길 수 있는 동호회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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