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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희주 은희주옴므 대표는 30년 이상 맞춤정장을 만드는 일을 해 왔다. 가수 배기성, 야구선수 양준혁, 농구선수 우지원,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이진삼 전 체육청소년부장관이 이곳의 손님이다. 은 대표는 ‘2016 대한민국 최고 국민대상 시상식’에서 패션 맞춤정장 대상을 받았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인턴 중에서 오랜 기간 동안 노하우가 쌓인 의사만 자신의 이름을 건 전문의가 될 수 있습니다. 맞춤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일한 분들이 기술이 좋죠. 고수들은 한번만 봐도 치수가 몇인지 어떤 스타일이 어울릴지 알 수 있죠”
은희주 대표는 유명한 맞춤양복 장인이다. 그는 서울시 강남구에서 본인 이름을 내건 은희주옴므를 운영하고 있다. 매장에 들어서면 입구 쪽 벽에는 가수 배기성, 야구선수 양준혁, 농구선수 우지원 등의 사인이 있다. 맞춤양복은 덩치가 큰 운동선수나 스타일을 중시하는 연예인에게는 필수 아이템이다.
“기성복은 표준 체형을 기준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전부 다릅니다. 만약 키가 같은 사람이라도 등이 굽은 사람, 어깨가 비뚤어진 사람, 뚱뚱한 사람, 마른 사람 등 각자 체형이 다르기 마련이죠. 체촌(치수를 재는 것)을 정확히 해야 몸에 딱 맞는 옷이 나옵니다”
은 대표가 맞춤양복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체촌이다. 은 대표가 치수를 재는 일은 다른 업체에서도 궁금해 할 정도다.
“어떤 날은 두 사람이 함께 들어오더니 제가 치수 측정을 하는 모습을 사진 촬영하더라고요. 느낌이 이상했어요. 치수를 재는 중간에 전문용어를 쓰며 여러 가지 묻더라고요. 그러고 손님들은 치수를 다 재더니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하더군요. 정중하게 어느 업체에서 오셨냐고 물었더니 ‘아닙니다’라며 쏜살같이 나가더라고요”
은희주 대표는 정장 한 벌을 맞추기 위해 50군데가 넘는 부위를 체촌한다. 가슴 및 허리 둘레는 기본이고, 손목 둘레, 이두박근 둘레 등 다양한 부위를 잰다. 체촌 후에는 이를 바탕으로 종이 패턴을 뜬다. 이는 나만의 맞춤복을 위한 설계도를 그리는 과정이다.
“저가 맞춤양복점에서는 패턴을 뜨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저는 강남점 말고도 청담점과 북아현동에도 매장을 운영했었습니다. 다른 매장을 정리한 이유가 체촌이나 패턴을 제대로 다루는 직원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점포를 여러 곳 운영하면 매출이 늘더라도 매장 관리가 안 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고객 신뢰를 잃을 수 있습니다”
▲ 은희주 대표는 고객들마다 각기 다른 다양한 체형을 오랫동안 분석해 왔다. 그는 정장 한 벌을 맞추기 위해 50군데가 넘는 부위를 체촌한다. 체촌 후에는 이를 바탕으로 종이 패턴을 뜨고 이를 가봉해 정장으로 만든다. ⓒ스카이데일리
봉제사로 시작해 봉제공장 운영…가게 오픈 10년만에 ‘명인’ 반열 올라
은 대표가 처음부터 양장사가 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젊었을 때는 가리지 않고 이 일 저 일을 했었다. 그러다 친구 따라 들어간 동대문 봉제공장에서 이 일을 하게 됐다. 당시 봉제 작업은 고생과 노력의 시간이었다.
“23살 때 일을 처음 시작했어요. 친구가 원래 동대문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죠. 친구따라 일을 했다가 약 10년 동안 봉제사를 하게 됐어요. 그때는 손바느질을 해야만 10년이나 20년씩 입을 수 있는 양복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손바느질로만 양복을 만들기도 했죠. 바쁠 때는 아침에 일을 시작해 밤 11시 12시까지 했죠”
이렇게 일을 하고도 은 대표가 정작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은 대표는 자신이 맡은 봉제 일만 하지 않고 틈틈이 양복 제작에 대한 전반적인 기술을 익혀나갔다. 그는 현재 동대문 봉재협회 이사이기도 하다.
“공임비가 한 건 당 정해져서 많이 할수록 많이 벌 수 있지만 비수기의 경우 일이 없어 무급일 때도 있었죠. 일이 힘들다 보니 끝까지 버티면서 오래 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하는 사람도 드물어요. 재단, 바지 만들기, 손바느질, 다림질 등 각자 맡은 분야만 일을 하죠. 하지만 저는 패턴도 배우면서 제조 과정을 모두 익히려 노력했죠”
이후 그는 양복 제조 공장을 차려서 운영했다. 당시 은 대표는 공장을 운영하면서 원단에 대해서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좋은 원단을 싸게 들여오는 노하우도 당시에 익힌 것이었다. 그러나 건강상의 이유로 공장을 정리했다.
“공장을 접은 뒤 2006년 본격적으로 맞춤양복점 은희주옴므를 서대문구 북아현동에다 열었어요. 양복점을 내기 위해 노라노패션학원의 이주삼 원장에게 직접 사사받기도 했죠. 맞춤양복은 손바느질이 들어가고 섬세한 작업이 많아 매장을 오픈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어요. 오픈 후 얼마 안 돼 언론 보도가 되면서 매출이 좋았습니다. 연예인도 찾아오는 양복집이 됐죠”
▲ 은희주옴므에서는 구두도 맞춤으로 주문 가능하다. 은 대표가 직접 발의 크기를 측정한 뒤 고객의 발에 꼭 맞는 제품을 주문제작해 제공한다. ⓒ스카이데일리
은희주옴므가 입소문이 나면서 다른 곳에서 디자인을 훔치는 경우도 있었다.
“보통 맞춤정장은 기본적인 스타일만 하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디자인 연구는 다른 사람들은 잘 안 하려고 해요. 한 번은 어떤 손님이 오셔서 명동의 한 맞춤정장 업체에서 특이한 디자인을 주문했더니 은희주옴므 홈페이지를 보여주며 고르라고 했다더군요. 이후로 홈페이지에 제 디자인을 안 올리게 됐죠”
그의 실력은 여러 기업의 유니폼 제작 요청으로 입증됐다. 은 대표는 2008년 인천공항철도 남성복 유니폼, 2009년 이스타항공 남성복 유니폼, 2010년 효성중공업 신입사원 단체복, 2013년 SBS ESPN 골프채널 아나운서 정장 등을 제작했다.
은 대표는 ‘2016 대한민국 최고 국민대상 시상식’에서 패션 맞춤정장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매장에는 지인 소개로 오는 손님이 많다. 그 중에는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이진삼 전 체육청소년부장관도 있다.
은희주 옴므에 유명인들만 오는 것은 아니다. 그는 비싸지 않은 맞춤양복을 지향하기 때문에 실용적인 옷을 찾는 젊은 손님들이 더 많은 편이다.
“너무 비싼 건 권하지 않아요. 간혹 비싸게 팔려고 사회초년생에게도 ‘울 100%’가 좋다면서 권하는 곳들이 있어요. 울은 멋있기는 하지만 입다보면 금방 찢어질 수도 있죠. 차라리 젊은 사람들에게는 순모와 폴리에스테르 소재가 섞인 혼방이 실용적이죠. 보통 이런 손님에게는 49만원에서 59만원 맞춤정장이 적당합니다”
그는 결혼식 예복으로 입는 정장의 경우 칼라(collar)를 예식이 끝난 뒤 일반 정장 스타일로 바꿔주기도 한다. 수선비 6만원만 지불하면 예복을 따로 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결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최근 웨딩샵에서 대여해주는 턱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예비 신랑들 사이에서 호응이 높다.
“지금도 정체하지 않기 위해서 고객의 체형, 패턴, 디자인 등을 연구하며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업계에서는 은희주옴므가 가장 까다롭다고 소문나 있죠. 저는 이 직업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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