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마비시키는 정치 테마주 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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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마비시키는 정치 테마주 기승

스카이데일리 기자수첩

이기욱 기자페이지 + 입력 2016-12-27 18:25:11

▲ 이기욱 기자(금융부)

최근 국내 정계는 그야말로 격변기를 지나고 있다. 차기 대선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전국을 뒤흔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정계는 유례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

청문회에서 나온 말 한마디에 정당 지지율이 급등락하는가 하면 여당은 내홍을 수습하지 못해 분당을 선언했다. 야당의 유력 인사들은 개헌, 결선투표제를 두고 수싸움 중이다.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 한 명은 “한 몸 불사르겠다”는 말 한마디로 대선 지지율 1위로 등극했다.

정국이 요동치자 덩달아 소위 ‘테마주’라 불리는 기업 주가 역시 요동을 쳤다.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이 확실시 되자 여·야 유력 대선주자 관련 주식에 투자자들이 관심을 기울였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조기 대선체제의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성이 사라진 시장은 투기판으로 변질될 조짐을 보인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관련된 기업 중에서는 대성파인텍이 크게 올랐다. 지난 9월 선임된 대성파인텍의 사내이사는 문 전 대표와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한 사이로 알려졌다. 대성파인텍은 당일 21%의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또 다른 문재인 테마주로 분류되는 서연탑메탈, 고려산업 등의 주가도 각각 4.15%, 2.85% 상승했다.

같은 날 반기문 테마주로 분류되는 기업의 주가도 일제히 상승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친인척이 대표로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지엔코는 5.05%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임원 중 한 명이 반 총장의 지인으로 알려진 성문전자의 주가는 8.15% 올랐다.

대선 지지율 3위 이재명 성남시장의 테마주로 알려진 형지엘리트, 아즈텍WB 등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최근에는 해당 정치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기업까지 신종 테마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동서기업으로 알려진 동양물산기업의 경우 김 전 총재가 반 총장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반기문 테마주로 분류됐다. 해당 기업의 주가는 반 총장의 대선출마관련 발언 이후 고공행진하고 있다.

정치 테마주의 가장 큰 문제점은 투자의 근거가 약하다는 점이다. 특정 인물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투자 결정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 기대감은 급변하는 정세에서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의 테마주로 분류된 유니크를 예로 들 수 있다.

유니크의 주가는 손 전 고문의 정치적 입지가 줄어듦에 따라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기업 대표가 손 전 고문과 고교·대학 동창으로 알려져 있는 유니크는 손 전 고문이 정계복귀를 선언한 지난 10월 20일 전일 대비 20%가량 상승했다. 하지만 현재 해당 주식의 주가는 상승 이전의 주가 3770원보다 낮은 3615원을 기록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런 비정상적인 정치테마주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과 금융감독원, 서울남부지검, 한국거래소 등은 지난 13일부터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정치테마주’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시장질서확립TF’를 구성해 무기한 운영 중이다.

이들은 지난 23일에는 반 총장 테마주 중 하나인 큐로홀딩스를 첫 ‘이상급등주’로 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테마주를 관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한탕주의’를 바탕으로 한 ‘묻지마 투자’ 근절이 당국의 규제보다 실효성이 높다. 주식은 ‘도박’이 아닌 ‘투자’다. 정치인의 지지율이 아닌 기업의 실적, 사업현황, 성장가능성을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기욱 gwle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