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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정국으로 차기 대권을 향한 잠룡들의 물밑 움직임이 벌써부터 치열하다. 이 과정에서 수면 하에 있던 개헌논의도 본격 거론되고 있어 국민적 관심을 모은다. 이른바 ‘제왕적 권력’으로 치부되는 현행 대통령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또 다른 권력형 비리가 계속될 우려가 크다는 이유 때문이다. ‘권력분점’이 결국 권력형 비리를 막을 대안으로 부상했다.
물론 개헌시기는 구체적이지 않다. 이해득실을 감안한 잠룡들의 계산이 분주한 탓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개헌이 잠룡들이나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에 의해 좌지우지 돼서는 안 될 사안이라는 점이다. 개헌은 반드시 국민여론을 지기기반으로 해서 이뤄져야 한다. 현행 5년 단임제의 대통령제를 여하한 바꿔야 한다는 것이 국민 여론인 만큼 그 구체적인 방안도 국민들의 여론을 따라야 한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과도기적 이원집정부제’ 형태를 국민여론에 붙이는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분권형 대통령제’(semi-presidential system)를 기반으로 한 이원집정부제 형태다. 실질적으로 한국의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다. 그로인한 권력형 비리는 비단 박근혜 정부 때만의 일이 아니었다. 우리 근대사에서 존경할 만한 대통령보다 지탄을 받는 대통령이 많이 나온 것은 그런 오욕의 막후권력 역사 때문이다. 역대 모든 청와대 안주인이 비리로 얼룩지지 않은 일이 없다.
당연히 대통령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 개헌의 유력한 대안인 것이 틀리지 않다. 많은 전문가들도 이원집정부제에 찬성입장을 내고 있는 중이다. 이원집정부제 하에서 대통령은 통일·외교·군사·안보 등의 업무로 제한된다. 다른 수많은 내치는 의회의 수반이 관장한다. 이 경우 대통령의 권력은 지금처럼 전권을 휘두를 수 없어 권력형 비리의 근본원인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이는 국민 모두가 상식적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방안이 되고 있다.
문제는 정치권의 셈법이 다르다는데 있다. 이에 특정정당과 특정인물 지지가 다른 국민들의 여론 또한 갈라지고 있다. 따라서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됐던 분권형 대통령제가 다시 제왕적 대통령제로 가는 방안으로 유턴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자신의 임기에서 반쪽 대통령이 되기를 원치 않는 유력 대선주자들도 이에 적절히 탑승하는 분위기다.
이 같은 유턴의 핵심 배경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대권 잠룡 중 양강구도를 구성하는 이들 두사람 때문에 또다시 개헌논의마저 국론이 분열되는 양상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에 구애를 하는 친박라인의 새누리당은 특히 분권형 대통령제의 명분을 십분 살리고 있다. 반 전 총장을 꽃가마 태우되 자신들이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가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에 국정농단 사태에 가슴을 쓸어내린 국민들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대안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당연히 거부감을 갖게 됐으니 혼란스러워졌다.
문재인 전 대표는 정권연장 기도가 있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에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반면 제3의 정치색을 갖고 있는 국민의당은 이원집정부 개헌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은 대표는 다만 새누리당과 개혁보수신당 측에 대선후보를 낼 자격이 없다는 전제를 붙이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짐을 싸서 나온 비박계 개혁보수신당은 당을 이끌고 있는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의 생각 자체가 다르고 이런저런 셈법들이 불거지면서 뚜렷한 노선이 안 보인다. 결국 개헌 정국은 지금 오리무중이다. 국민들의 여론도 제각각으로 갈라졌다. 이러다가는 국민 모두가 원하는 개헌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될지도 모를 상황이다.
대통령 권력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찬성하면서도 대선역학 구도가 서서히 나오면서 개헌논의가 이처럼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의원내각제가 또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숱한 지탄의 대상 1순위로 거론돼 온 것을 감안하면 이 또한 달갑지 않다는 국민들이 많다. 실제로 국민이 뽑은 대통령 권력이 호랑이라면 똑같이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은 여우에 비교된다. 요리저리 자신의 기득권만을 챙기는 여우보다 차라리 못된 호랑이가 낫다는 비아냥이 그래서 나온다.
우리가 이런 혼란한 시점에서 개헌을 바라보는 시각은 지금 매우 분명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막기 위한 응급땜질 방식으로 권력분점을 꾀하는 것은 근본적인 대안이 되지 않는다. 당연히 대권셈법으로 개헌분란을 조장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따라서 개헌방향은 대한민국의 바른 권력이 서도록 하는 중장기 관점으로 고민돼야 한다. 최소한 10~20년 이후에는 권력형 비리가 나오지 않는 대안을 강구하는 중장기 로드맵이 중요하다. 이를 감안해 본다면 권력분점은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 현행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방안이 실효적이라고 할 수 있다.
번거로운 일이 될지 모르지만 차기 또는 차차기 권력은 권력분점 형태로 가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대통령제를 다시 도입하는 방안이다. 일종의 과도기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한다면 우리도 미국의 대통령제처럼 안정적인 체제를 구축할 시간을 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이원집정 권력분점으로 갈 경우 국익에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컨대 수출로 먹고살며 지탱하는 한국경제는 대외적인 협상력에서 강력한 결정력과 지도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혐상상대가 우리 대통령의 결정력을 의심하거나 깎아내려 보면 우리에게 유리한 협상전략 자체를 짜기가 어려워진다. 양자간 FTA 영토를 거침없이 확장해 온 한국경제는 앞으로도 FTA 지형을 더 넓혀야 하는 숙제가 있다. 이를 외교·안보만 갖는 반쪽 대통령이 수행하게 되면 책임부분이 모호해져 강력한 리더십으로 배수의 진을 친 대응을 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 판단 자체가 흐릿해진다는 것이다.
또 안보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내치를 기반으로 한 온전한 대통령 권력만이 강한 군 통수권으로 지도력을 행사한다. 내치 기반이 없는 군 통수권은 허수아비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곧 전시나 준전시 등 비상사태시 구심점이 없는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방과 안보에 대한 결정력은 최고 통수권자의 강한 결단력이 수반돼야 하는 사안이다. 그 결정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지도자 스스로 목숨을 걸아야 하는 일인 탓이다. 대통령 권력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이런 결정에 그 어느 누구 하나 선 뜻 나서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이런 한국의 특수한 경제여건과 안보여건을 감안하면 권력분점은 옷에 묻은 얼룩을 지우려다가 옷을 아예 불태우는 사태를 자초할 수 있는 방안이다. 우리는 그래서 다른 유럽의 주요 나라처럼 이원집정부제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위험한 상황을 자초할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권력형 비리라는 얼룩을 지우지 않을 수 없는 만큼 과도기적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통한 대통령제 유지(환원)가 한국의 실정상 최선의 대안으로 검토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정치권은 이를 국민여론에 붙여 판단하는 방법을 심도 있게 검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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