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기업 포스코, 은밀한 반국민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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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기자페이지 + 입력 2017-01-09 00:02:09

▲ 김신 편집이사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파문의 여파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 해가 지나고 달력이 바뀌었지만 상황은 여전하다. 국정은 마비됐고, 여·야 간 대립은 첨예하다. 민생 경제가 잔뜩 얼어붙은 상황에서도 국민들이 먹고 살 걱정 대신 국가부터 걱정하는 모습도 바뀌지 않았다.

이에 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가시질 않고 있다. 사소한 사안에도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불신의 골은 오히려 깊어지고 있다. 의혹은 곧 의심, 의심은 불신에서 나온다는 점에 비춰보면 사실상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까지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라리 ‘신뢰’라는 단어 자체가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얼마 전 이런 국민 여론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자신들의 정책 방향에 대치되는 언행을 보인 문화계 인물들을 따로 분류해 관리했다는 게 핵심이다. 관리는 해당 인물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정부 주도의 문화계 각종 프로젝트나 혜택 부여 시 블랙리스트에 적힌 인물들을 배제했다는 것이다.

문화조차 정부가 입맛대로 조종하려 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크게 공분하고 있다. 과거 일제시대 때나 있었을 법한 일들이 벌어졌다는 게 국민 여론이다. 문화의 자율성과 독창성을 억제하려 했다는 사실에 문화계의 반발이 특히 심하다. 심지어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없다는 것 자체가 굴욕’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기업으로 불리는 포스코의 공익재단이 보인 행태는 국민적 지탄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포스코가 지난 2013년 설립한 ‘포스코1%나눔재단’은 포스코 그룹사들과 외주파트너사의 임·직원들이 매달 급여의 1%를 기부해 설립·운영되는 공익재단이다. 세부 활동으로는 △국내 소외계층 사회복지 증진 사업 △국내·외 저개발지역 구호활동 및 자립지원 사업 △문화예술진흥 및 전통문화보존사업 △기타 법인의 목적달성에 필요한 사업 등이 있다.

하지만 ‘포스코1%나눔재단’의 공익사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쪽으로 치우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박근혜 정부와 긴밀하게 연결된 단체로 유독 많은 기부금이 빠져 나간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이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파문과 직접적인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 기관도 포함돼 있다.

우선 ‘포스코1%나눔재단’은 2014년 해외지도자 연수 과정 운영 등을 목적으로 영남대학교 산학협력단 등에 약 6억4000만원 가량을 기부했다. 다음해인 2015년에도 같은 곳에 약 3억8000만원을 지급했다. 목적은 개발도상국 지역지도자 양성교육이었다. 각각 전체 기부금액의 15.80%, 5.59%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하지만 영남대학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재단 이사장을 역임했고 현재도 학교법인 이사진 과반 이상의 추천권을 갖고 있는 곳이다.

‘포스코1%나눔재단’은 또 문화계 블랙리스트 존재가 처음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문화예술위원회’에도 거액을 기부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단체인 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영위한다.

지난해 10월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473명의 문화·예술인이 적혀있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도 의원이 주장한 블랙리스트 실체의 근거는 바로 문화예술위원회의 회의록 이었다.

회의록에 따르면 권영빈 전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과 심사위원들은 블랙리스트를 암시하는 자료를 근거로 창작지원대상에서 일부 문화·예술인들을 배제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 문건은 얼마 전 특검 조사를 통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포스코1%나눔재단’은 설립 첫 해부터 한 해도 빼먹지 않고 문화예술위원회에 기부금을 냈다. 기부 규모를 점차 늘리기까지 했다. 설립 첫 해 3억5000만원 가량에 불과했던 기부금은 2014년 약 17억원, 2015년 약 28억원으로 증가했다. 2015년의 경우 문화예술위원회에 낸 기부금은 당해년도 전체 기부금의 41%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포스코는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을 생산하는 탓에 민영화 이후에도 줄곧 ‘국민기업’이라는 수식어를 부여받았다. 공적자금 성격의 국민연금이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는 데 대해서도 타 기업과 달리 긍정적인 시각이 많다. 포스코를 외국 자본에서 지켜내야 한다는 국민들의 암묵적 동의 때문이었다.

그러나 포스코가 공익재단을 통해 보인 행태는 이 같은 국민의 여망과 정면으로 대치되고 있다. 국민기업이 아닌 정부의 기업, 아니 대통령의 기업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어 보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포스코를 이끄는 권오준 회장이 광고사 지분 강탈, 미르·K스포츠 재단 49억원 출연 등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라 사태의 심각성은 더해진다.

지난 4일 포스코 최고경영자(CEO) 후보추천위원회는 “권오준 회장을 지난달 두 차례 만나 그동안의 성과나 반성에 대해 돌아봤으며, 앞으로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지도 들었다”며 “권오준 회장 연임 여부는 무엇이 포스코의 장기적인 이익이 될 것인지를 고려해 25일 이사회 전까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권 회장의 연임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키포인트는 ‘포스코의 장기적인 비전’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현재 국민 여론은 “포스코의 최순실게이트 연루 의혹, 포스코1%공익재단의 정부 비위 맞추기 행보 등을 감안했을 때 이미 해답은 나와 있다”는 쪽에 가깝다. 해답은 누구보다 권오준 회장이 가장 잘 알 것으로 판단된다. 오점이 많은 만큼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김신 s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