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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은행권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찾고 있는 가운데 고령화 및 1인가구를 겨냥한 이색 신탁 상품을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고객들은 새로운 상품들 가운데 실제로 가입할 만한 상품이 없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신한은행, KB국민은행 ⓒ스카이데일리
최근 은행권에서 급증하고 있는 고령화 및 1인가구를 겨냥한 이색 신탁 상품을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 ‘펫(pet)’부터 시작해 치매안심, 성년후견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작 고객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중은행, 우후죽순 ‘이색’ 신탁상품 출시…반려견 신탁까지
신탁은 고객(위탁자)이 자신이 소유한 재산을 은행 및 신탁업체(수탁자)에게 위임하는 것을 말한다. 은행은 고객으로부터 위임받은 재산을 고객의 이익이나 특정한 목적을 위해 관리하거나 처분할 수 있다.
최근 고령화 및 1인가구 증가 등 자산관리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신탁 시장 규모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3년 말 173조원이었던 시중은행의 신탁계정 수탁잔액은 지난해 9월 말 218조원으로 3년여만에 26% 증가했다.
이처럼 신탁 시장 규모가 커지자 시중은행들은 저마다 ‘최초’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이색 신탁 상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생활 환경이 다양해진만큼 여러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1월 반려동물을 위한 ‘펫(Pet) 신탁’을 출시했다. 펫 신탁은 반려동물 주인이 가입한 뒤 자금을 맡기면 주인 사후에 반려동물을 돌봐줄 부양자에게 반려동물 보호·관리에 필요한 자금을 일시에 지급하는 상품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아직까지 법적으로 반려동물에 대한 직접 상속이 불가능한만큼 현실에 맞게 변화를 시도했다”며 “사후 정기적인 방문 등을 통해 반려동물을 제대로 돌봐주는지 확인 과정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은 앞서 지난해 10월 고령화시대에 맞춰 신탁과 성년후견제도를 결합한 ‘성년후견제도 지원신탁’을 금융권 최초로 출시한 바 있다. 성년후견제도란 장애·질병·고령 등 본인이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경우 후견인을 선임하고 후견인을 통해 재산관리 및 일상생활 지원을 받는 제도를 말한다.
성년후견제도 지원신탁은 본인의 인지상태가 양호한 고객이 향후 치매 발병 등 후견인이 필요한 상황을 대비해 가입하는 상품이다.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미리 선정된 후견인이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지급받아 고객(위탁자)을 위해 사용한다. 후견인이 위탁자를 위해 사용하는지 여부를 감시하는 후견인 감시제도도 마련됐다는 것이 은행측의 설명이다.
▲ ⓒ스카이데일리
KEB하나은행도 이와 비슷한 상품을 내놨다. 고령화 시대에 초점을 맞춘 ‘치매안심신탁’과 ‘성년후견지원신탁’이다. 치매안심신탁은 치매 환자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출시됐다. 현재 치매에 걸린 환자뿐 아니라 향후 이를 대비한 자산관리계획 설계 및 상속 지원 등 단계별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성년후견지원신탁은 후견심판을 받은 치매 및 발달장애인 등의 재산관리를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신탁이다.
특히 하나은행이 지난 2010년 금융권 최초로 출시한 ‘유언대용신탁’은 고객 사후에 미리 금융사와 계약한 수익자(배우자 또는 자녀 등)에게 자산 상속 및 배분하는 상품이다. 별도 유언장을 작성할 필요없이 유언의 효력을 가진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6월 ‘명문가문 증여신탁’을 출시했다. 고객이 미리 재산을 맡기면 사후 유산 상속시 상속·증여세 등 세금을 절세해주는 상품이다. 6개월에 한 번씩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는데 분할 증여시 10% 할인율이 적용돼 총 증여세액을 30% 이상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신한은행은 2015년 말부터 ‘내리사랑 신탁’을 출시해 본격적으로 판매했다. 유언대용신탁 일종으로 고객이 생전에 재산을 미리 분할하고 다양한 형태로 상속을 설계할 수 있는 상품이다.
너도나도 ‘최초’ 신탁, 소비자 “실효성 없다” 반응 냉담
이처럼 시중은행들이 너도나도 ‘최초’를 강조하며 이색 신탁을 출시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반응은 차갑다. 많은 상품들이 출시됐지만 실제로 가입할 만한 상품이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먼저 지난해 10월 출시된 KB펫신탁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30건을 판매하는 데 그쳤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애완견 수명이 짧아 굳이 가입할 필요성을 못느끼겠다는 반응이다.
푸들을 키우고 있는 김태극(32) 씨는 “고령자거나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지 않은 이상 사람에 비해 수명이 짧은 애완견은 본인이 끝까지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애완견을 위한 신탁에 가입할 만큼 넉넉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KB성년후견제도지원신탁과 하나은행 성년후견지원신탁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두 신탁 모두 출시된지 얼마되지 않아 지켜볼 필요는 있지만 고객들의 관심을 끄는데 실패했다는 여론이 적지 않다.
▲ 최근 시중은행에서 치매안심신탁, 성년후견지원신탁, 내리사랑신탁, 명문가문증여신탁, 펫신탁 등 이색 상품 출시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은행권에서도 상품 출시 후 자사 직원들에게 상품 교육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어 소비자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KEB하나은행 신탁 출시, 가족사진(이상 뉴시스), 강아지, 한남동 삼성가 전경 ⓒ스카이데일리
성년후견제도 자체가 낯설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두 개의 신탁상품 모두 법원이 ‘성년후견’ 판결을 내려야만 가입할 수 있어 실효성을 두고 의문스럽다는 반응이다. KB성년후견제도지원신탁의 경우 지난해 10월 출시 이후 같은 해 말까지 실적은 ‘0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유언관련 신탁에 대해서도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실제로 기존 유언과 동일한 효력을 갖고 있지만 사망 이후 충분히 법적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아직 초기단계지만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있는 만큼 향후 관련 법 체계를 잘 세워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색상품을 출시한 시중은행들이 자사 직원에게 상품 교육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돼 상품을 출시해놓고도 오히려 소비자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황정은(27) 씨는 “KB국민은행 고객센터와 은행 지점에 KB성년후견제도지원 신탁에 대해 문의했는데 오히려 내게 타사 상품을 착각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며 “어떤 상품인지 잘 모르겠으니 알아보고 다시 연락 드리겠다는 말 뿐이었다”고 털어놨다.
이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 여타 시중은행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소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상담센터를 비롯해 은행 지점 직원들이 자사가 내놓은 신탁 상품을 인지조차 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은행권의 이색 신탁 출시와 관련해 금감원 신탁업무팀 소속 관계자는 “최근 은행은 저금리 기조 때문에 고객유치를 통한 순이자마진을 내기가 어렵고 홍콩 유럽 등의 주가지수가 좋지 않아 ELS신탁 등을 통한 수수료수익을 내기도 어렵다”며 “혼족·고령화 시대에 맞춘 이색 신탁을 출시해 은행도 홍보하고 수수료 수익도 얻기 위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너무 생소한 상품들을 출시하면서 크게 인기를 끈 상품은 딱히 없다”며 “앞으로 은행들이 소비자들을 어떻게 유치해야 할지 더 고민해야 할 부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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