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끔 거울을 볼 때마다 내 얼굴의 어느 부분이 어머니를 얼마만큼 닮았는지, 아버지의 어디를 또 얼마나 닮았는지 생각해 본다. 또, 부모님의 얼굴을 볼 때는 미세한 잔주름과 얼굴 근육의 변화를 통해 그분들이 어떤 감정 상태에, 어쩌다 그런 생각과 느낌이 들게 되셨을 지도 웬만큼 다 파악할 수 있다. 부모님께서는 나와 가장 오랜 시간 동안지내오신, 적어도 내가 태어난 이래로 흐른 17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를 낳고 기르고 더욱 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매사에 최선을 다 해주시는 분들이다. 때로는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나의 불만을 묵묵히 들어주시고, 동생과 싸우고 난 뒤에 무한대로 발산되는 짜증을 옆에서 이해해 주시려 노력해 주시는 모습이 보인다.

막상 분한 기분이 풀리고 나면, 마음에는 한 가지 찜찜함이 남는다. ‘왜 부모님은 언제나 나를 이해해 주시려 하지? 아까 분명 나는 짜증을 내고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분명 저분들의 기분도 지금 좋지만은 않을 거야’ 근데 부모님의 얼굴에는 분명 인자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다. 진심으로 감사하지만 동시에 너무 죄송하다. 나는 언제 철이 들 수는 있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저분들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드린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렇게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해 드리는 입장이 됐다.

사실 부모님에 관해 기록하는 것이 이번 처음은 아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써온 비밀다이어리 일곱 권 중 첫 두 권은 죄다 부모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당시 나의 세대에서는 비밀 일기장 쓰기가 한창 유행했던 때였다. 나의 단짝 친구는 온갖 낙서와 별 의미 없이 정성만은 가득 담아 그림들을 그린 후,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도록 미니 자물쇠로 잠가놓아 보물 1호로 보관하곤 했다. 반면, 나는 당시 부모님의 일별 패션, 식사메뉴, 상황별 목소리, 표정, 심지어 부모님께서 어렸을 적 키우셨던 병아리가 죽어버린 이야기 등을 모두 상세히 그려놓곤 했다. 그때 이후로는 공책에 기록해나간 주제가 친구나 공부를 중심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너무 바쁜 고등학생이라 그 내용을 아예 들추어 볼 수도 없게 됐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맞이한 이번 여름방학에 ‘빠마 이야기’를 공모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고, 호기심에 잠깐 공책을 꺼내어 읽다 부모님과 깊은 대화를 하게 됐다. 내가 아래에 기록해 나갈 내용 역시 모두 이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해 풀어나간 것이다.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 중 하나는 부모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대화였다. 항상 어른이었을 것만 같던 나의 부모님도 한때는 말썽 피우고 고집 센 울보에 애교 부리는 아기들에 불과했었다니 아무리 상상해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경우 168cm의 큰 키에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된 편인 목소리 그리고 화장하셨을 때에는 꽤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분석이긴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나보다 나은 신체특징을 가지고 계신다고 믿기 때문에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고상하신 어머니께서 옛날에 짜장면을 먹기 위해 외할머니의 지갑에서 500원을 빼 가셨다고 한다. 한때는 어머니께서도 먹는 것 앞에서는 침을 줄줄 흘리고 식욕을 주체 못 하는 어린아이였다니, 정말 귀여우면서도 어느덧 나라는 사람의 어머니가 돼 참 멋있는 분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우리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대구에서 알아주는 부잣집 딸과 아들이셨고 대학까지 나오신 분들이다. 교육열이 무척 세셨고 특히나 도덕 교육에 힘을 쓰셨으며, 집에 가사도우미 언니와 애완견도 있었다고 하니 집안 분위기가 대충 상상이 간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부가 사기에 휘말리자 외조부모님은 파산하실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께서 돈을 훔친 때도 집이 망한 지 얼마 안 된 직후라고 하는데 안 그래도 도덕성과 인성을 중시하셨던 외할머니께서 더더욱 신경이 예민해진 상태에서 큰 호통을 치셨고 어머니는 엉덩이에 멍이 들 때까지 빗자루로 맞았음을 알게 됐다. 사실 어머니께서도 어린 내가 동생과 싸우면 엉덩이를 때리곤 하셨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외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참됨과 바름, 맑음, 정직을 매우 중시하시는 분이다. 또, 잠깐 언급이 됐지만, 어머니께서는 애완견 “토토”를 키우셨다. 당시에는 쉽게 구할 수 없었던 해외 수입 견으로, 정확히 종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황색 털에 중견 정도 크기였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외할아버지의 눈을 피해 토토에게 자신이 먹어야 할 소고기를 몰래 주다 혼난 기억, 가정이 파산의 위기에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해 비싼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랐던 기억, 어느 정도 눈치를 챈 후에 혼자 의기소침해 있다가 외할머니와 함께 울던 기억을 회상하시며 어린 시절은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해 주셨다.

어머니께서는 큰오빠와 맏언니 밑에서 자라셨다. 외삼촌께서는 매우 똑똑하셔서 공무원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신 후 가족이 큰 잔치를 열었을 때 외조부모님이 얼마나 흐뭇해하셨는지 그 인자한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또, 이모 역시 명석한 두뇌로 전교 회장과 학과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으시고, 교육대를 입학하신 후에는 어머니의 교육비와 조부모님 부양을 지원하기 위해 집에 매월 용돈을 드렸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훌륭한 언니 오빠 밑에서 자라서 정말 좋았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는 그만큼 학업에 대한 부담과 파산 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는 뜻임을 말해 주셨다. 심지어 가정이 정말 어려웠을 시에는 수학 여행비를 담임선생님께 갖다 드리지 못하는 등 가난을 이유로 자존심이 상했던 적이 상당히 많았다고 하셨다.

‘우리 엄마’ 하면 항상 당당하고 멋있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렇게 어릴 적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니 처음부터 당당하고 멋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이라는 걸림돌을 극복하고 나서 비로소 세상의 압박으로부터 해탈함으로써 그 누가 보더라도 떳떳하고 바른 자세를 가질 수 있었음을 깨달았다. 지금 당장 나에게는 어머니의 가난이라는 걸림돌이 없지만, 학업에 대한 열정이 넘쳐나는 한 고등학교에서 매 순간 가까워지는 고사 일정은 나 자신을 한없이 맥없고 자신감 없게 만들곤 한다. 이러한 순간에도 나는 어머니가 얼마나 더 큰 역경을 겪었으며 그런데도 지금은 이렇게 멋있고 당당한 ‘맘’으로 살아가고 계신지를 보며 힘을 얻어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이러한 어머니는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만나게 되셨을까. 나의 비밀 다이어리에 기록돼 있는 것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끼리 만났으며 두 분께서는 중매로 결혼하셨다는 내용뿐이었고 이것이 실제였음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나의 아버지는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셨고, 어떻게 처음 돈을 벌게 되셨을까?

아버지께서는 지금 우리 집 소재지인 개봉동에서 태어나셨다. 개봉은 서울의 외곽에 있어 아버지께서 태어나신 67년도에는 거의 시골이나 다름없었던 것 같다. 나는 아버지께서 약 10마리의 개와 병아리를 직접 사육하신 경험에 대해 듣게 됐는데, 친조부모님께서는 토종개를 유독 사랑하셔서 매일 저녁 아버지께서 남은 돼지고기나 음식을 흰 진돗개 ‘순이’에게 먹여주며 예뻐했다고 한다. 국어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순이’라는 이름이라니 참 촌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께서는 ‘순이’는 새 하얗고 깔끔하게 결진 깨끗한 털을 보고 감탄해 심사숙고해 지은 이름임을 거듭 강조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병아리 중 하나를 모처럼 하이힐에 정장을 갖춰 입고 온 할머니께서 밟아 버리는 바람에 병아리는 내장이 처참히 튀어나온 채 압사 당했고, 아버지께서는 이때 할머니를 얼마나 많이 원망하며 울었는지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평소 형과 누나와 자주 싸우며 자란 아버지는 아무래도 막내라 그런지 조부모님께 매를 많이 맞고 자라셨다고 하는데, 언젠가 한 번은 불장난하다 누나가 아끼는 앨범 하나를 모조리 태워버려 매로 엉덩이와 등이 빨갛게 부어오를 때까지 맞으셨다고 한다. 사실 이해가 잘 안 가는 것이 있는데, 아버지 세대는 폭력이 특별한 경각심 없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대부분이 학생들을 궂은 매로 다스렸다고 하신다. 심지어 한 학생은 역사 선생님께서 뺨을 때리는 바람에 어금니가 나갔으며, 수학 선생님께서는 이미 닳을 대로 닳은 죽도로 학생들의 종아리를 내리치며 종아리에 피멍이 든 학생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당시 남고라 더 심한 것 같기도 한데, 나는 교내 체벌금지로 인해 한 번도 선생님께 맞아본 적이 없어 너무나도 익숙하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혼날 때마다 아버지는 애완 병아리를 쓰다듬고 함께 놀며 교감을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동물을 매우 사랑하신 분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개야말로 주인의 사랑을 가장 잘 알고 눈을 통해 가장 깊은 교감을 할 수 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하시는데, 특히 하굣길에 ‘순이’가 꼬리를 찰랑찰랑 치며 20분 거리를 뛰어오고도 자신을 반길 때의 그 기쁨은 말로 이루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셨다. 어쩌면 ‘우리 아빠’ 하면 떠오르는 그 특유의 자상함은 ‘순이’와 같은 개를 대할 때 아버지의 친절함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어린 아버지에게도 청춘이 찾아왔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자신의 가장 큰 열정을 가지고 가장 바쁘게 생활하고 가장 강렬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때인가 보다. 아버지에게 가장 강렬한 감정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장래 원하는 사랑을 만나고 안정된 가정을 이루어야겠다고 결심하신 아버지께서는 무역회사에서 일하셨지만, 곧 회사생활에 만족하지 못하시고 자신만의 회사를 설립하셨다. 문득 어릴 적 아버지가 처음 만들어 오신 새 회사 명함에 당당히 적혀있는 아버지의 성함을 보고 자랑스러워했던 나의 자신이 기억이 난다. 아버지께서는 본래 사업을 펼치시는 것이 꿈이었기에 대학에서도 경제경영학과를 졸업하셨는데, 원하는 대학의 학과를 가기 위해 고등학교 3년 내내 하루에 잠을 4시간씩 쪽잠을 자며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에 대해 알려주셨다.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타고난 두뇌형보다는 노력 형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시면서 남들이 놀 때 배가량의 노력을 투자한다면, 누구나 원하는 목표에 가까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 때 반에서 꼴등에서부터 시작해 중학교에 들어서서는 전교권에 들기 시작하셨는데 이때의 비법은 잘하는 친구를 관찰하고 자신의 마음을 차분히 해 계획을 몸소 실천하는 것임을 말씀해주셨다.

사실을 따져보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대구와 서울의 외곽에서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오셨는데,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되신 걸까? 사실 이 부분은 내 다이어리에 가장 많이 기록돼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이번에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물론 나의 다이어리에는 다소 유치하게도 아버지가 백마 탄 왕자님처럼 그려져 있고 어머니는 엘레강스한 공주님과 같이 묘사돼 있긴 하다. 당시의 내가 읽었던 동화책 내용에 진지하게 몰입해 부모님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않았나 싶다.

우선, 부모님께서 선을 보실 때 서로에 대한 첫인상에 관한 얘기를 나누게 됐다. 어머니의 경우 아버지의 살이 하얗다는 것, 뚱뚱하지 않고 목소리가 좋다는 것이 첫인상이었고, 아버지의 경우 어머니가 키가 크고 날씬하며 예쁜 미소와 당당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음이 첫인상임을 말해주셨다. 두 분 다 서로에 대해 좋은 첫인상을 가지고 시작하신 것이다. 이 이후에는 놀이공원과 수영장, 카페, 도서관 등에서 서로의 만남을 이어갔고, 거의 1년 만에 굉장히 빨리 결혼을 하게 되셨다. 내가 찾아본 사진 앨범에는 꽤 깔끔하고 아름답게 펼쳐진 결혼식을 마친 후, 괌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두 분의 로맨틱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두 분은 결혼한 지 1년 만에 바로 나를 출산하셨고 이때의 기쁨은 형언불가하며 이는 오직 내가 직접 아이를 낳아야만 느껴볼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어머니께서는 출산 전 내가 딸이라는 소식을 듣고 피부가 좋아야 한다며 콜라를 포함한 해로운 음료와 인스턴트는 일체 금식하셨고, 아버지께서도 어머니께서 멜론이 갑자기 땅기셨을 때 바로 호텔 레스토랑에 가서 멜론을 구해 오셨다. 또, 기타를 잘 연주하셨던 아버지께서는 악기 연주로 태교에 힘을 쓰셨다고 한다. 마침내 두 분의 노력 끝에, 나는 너무나도 건강하고 피부가 비교적 하얀 우량아로 태어났다.

얼마 전 한창 떴었던 ‘응답하라 시리즈’가 기억난다. 부모님께서 역대급으로 그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 하시길래 저분들은 지금 자신의 추억을 회상하고 계신 걸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니 부모님께서 옛날의 분위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큰 기쁨을 느끼신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젠 그 모습이 곧 내 모습이겠구나하는 현실이 점차 마음에 와 닿는다. 나의 엄마, 아빠 역시 어린 시절 누군가의 보호를 받았던 연약한 존재였지만 지금은 성숙한 어른이 돼 또 다른 나를 키워내고 계신다. 어쩌면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말 한순간에 불과해 내가 왜 어른이 됐는지를 곰곰이 생각할 날도 올 것만 같다. 이제부터는 부모님께서는 나의 말만을 들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깨고 정말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 같고, 그 어리고 철없던 아이들이 지금의 나와 같은 청소년기를 거쳐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음을 가장 가까이서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어머니, 아버지 이제는 그 이야기, 제가 들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