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연상 트럼프, 나치즘의 시대정신을 읽다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정현의 인문 책방…데틀레프 포이케르트 <나치 시대의 일상사>

혼란의 시대 과격한 지도자에 대한 열망…공론장 붕괴와 과잉 카리스마가 불러온 참사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2-04 18:10:36

▲ 문화평론가 정현. ⓒ스카이데일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이 연일 언론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미 상당한 수의 무슬림들은 오도가도 못한 채로 공항에 발이 묶였다. 일부 수단 출신 운동선수들은 미국 내 직장을 잃을 처지에 있다.

취임식 당일 대규모 시위대와 마주해야 했던 신임 미국 대통령의 행보는 이미 지난 1월 11일 열렸던 첫 기자회견에서도 우려를 자아낸 바 있다. 당시 기자회견 후 질의응답 과정에서 비판적 물음을 던지는 언론에게 트럼프가 한 말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가짜 뉴스다. 실패한 쓰레기일 뿐이오.” 포용보다는 선동과 편 가르기를 취하는 트럼프의 태도는 언제라도 내란을 불러올 기세다. 마치 80여 년 전 독일 나치당의 등장을 재연하는 듯한 분위기다.

나치 시대는 선동의 시대

지금의 대혼란 국면과 유사한 시기는 대공황을 불러온 1930년대다. 당시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돈 속에서 반유대주의 극우정치세력들이 부상하게 된다.

1933년 1월 총리에 취임한 히틀러는 강력한 선동가로서 시대의 혼란을 유대인에 대한 국민적 분노로 흡수한 정치지도자였다.

당시 나치당의 지지율은 대체적으로 다음의 요인들에 의해 급부상한다. 첫째, 1차 세계대전 패전의 원인은 좌파세력에 의한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유대인들이며 이들의 반란으로 인해 독일은 세계대전에 패한다.

둘째, 일부 유대인 부르주아들이 게르만 민족의 영광을 오염시키고 있다. 이들은 인종적으로도 열등하며 이 열등함이 결혼과 출산 등을 통해 게르만 민족에게 오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히틀러는 천부적인 연설가였으며 언제나 강력한 언설로 자극적인 인상을 사람들에게 부여했다. 나치의 정치선전을 주도한 괴벨스는 히틀러 시대의 핵심관료였다. 영화 <의지의 승리>를 통해 잘 알려진 영화감독 리펜슈탈은 나치즘의 이데올로기를 미학적으로 거대하게 포장한 당대 대표적인 예술가였다.

정치선동이 대중들의 동의를 강력하게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대의 혼란이다. 시대의 혼란은 적과 동지의 경계를 가르도록 요구하며 이를 통해 일상을 내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르게 몰고 간다. 그리고 이때부터 공론장은 지도자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해 대체된다.

나치시대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관

나치즘의 핵심 표적은 유대인이었다. 히틀러는 유대인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유대인을 다시 혈통의 계보에 따라 등급별로 구분했다. 그리고 이후 아우슈비츠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시켰다.

이처럼 적이 구체적으로 설정된 순간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우선 유대인들이 일상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존재라는 것이 중요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들을 적으로 상대하면서 독일(비유대인) 국민들은 일상을 극단적인 폭력의 상황 속에서 마주하게 된다.

유대인과의 전쟁은 곧 내전의 형태에 가까웠다. 여타의 내전처럼 국가의 공적(公的) 기구들은 온전히 작동하지 않았다. 따라서 국가공무원 대신에 민간 폭력조직들이 일어섰다. 나치 돌격대라 명명된 이들은 히틀러에 열광하며 유대인을 살해하거나 괴롭히기 시작했다.

공적 기구와 언론들은 제 기능을 상실했다. 대중들도 국가의 공적 기구에는 불신을 보내다가도 히틀러에게는 광적인 열광을 보내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책의 저자 포이케르트가 주목한 것은 이러한 혼란기에 평범한 독일인들이 경험한 일상이었다. 그에 따르면 당대 대중들이 히틀러에게 보낸 지지는 어떤 광적인 심미적 효과를 갖는다.

시민들이 체제를 옹호하는 방식은 공적 제도에 대한 동의를 취할 때가 많다. 경제정책과 외교정책, 가족정책 등 수많은 정책들은 선거를 통해 평가받는다. 그러나 나치 시대를 특징지은 것은 이러한 공적 기구와 공론장 일체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이었다. 그리고 그 불신은 지도자에 대한 광적인 열광과 특정 인종에 대한 극단적인 폭력을 통해 완전히 보완됐다.

혼란의 시대는 폭력적인 지도자에 대한 열망을 부추긴다

혼란을 무마하는 것이 더 많은 혼란을 수반하는 폭력이라는 사실. 나치 시대의 역설은 그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폭력의 무상함은 지도자의 위대성을 찬양하는 광적인 열광을 통해 보충된다.

오늘날 트럼프에 대한 찬반 논란은 그 어떤 시대보다 과격한 갈등과 내란을 부추길 모양새다. 다만 트럼프의 과격함이 지도자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시대가 과거를 그대로 재연할지, 아니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시켜 나아갈지 신중히 지켜볼 일이다

고태경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