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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국민대통합위원회]
#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난 지금껏 인생을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인연을 만났다. 내 아내와 자식들, 우리 손주들 그리고 우리 방울이까지.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늘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이라고 한다. 내 손이 갈라지도록 일하는 한이 있어도 내 예쁜 자식들 밥 한입 더 먹이고, 똥 기저귀 손수 갈고 애지중지 키운 나의 아들과 딸이 어느새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버지로 한 가정의 기둥이 돼 내 곁에 작은 추억만 남겨둔 채 공허하게 떠나갔다. 나란 기둥 안에서 조심히 보호받고 자라던 어린나무들은 어느새 커다란 나무가 돼 자신들의 어린나무를 지키기 위해 나의 곁을 떠나갔다. 사람은 겪어야 깨닫는 것이라 했나. 나란 기둥 안에서 떠나지 않을 것처럼 꼭 붙어있던, 또 나에게 온기를 더해주던 아이들이 어느새 자라 떠나니 나란 기둥의 옆엔 이제 시린 바람만이 휭 불고 오직 공허함만 남을 뿐. 나란 기둥의 구멍에는 어느새 차가운 바람이 들어와 내 몸을 굳게 만들고 온기에 목이 말라 점점 썩어간다.
이별은 누구나 다 겪는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내 곁에 항상 머물러주던 내 일상과도 같은 아이가 어느새 자라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자신의 어린나무들을 지키기 위해 듬직한 기둥이 돼 내 곁을 떠나가게 되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프고 마치 내 소유의 모든 것들을 앗아간 것 같은 허무함. 그리고 슬픔이 나에게 있어서 격하게 휘몰아친다. 모두가 겪는 일반적인 일이긴 하지만 누군들 내 피붙이를 멀리 보내는 것이 어찌 아무렇지도 않으리. 지켜야 할 것 없는 기둥은 의미 없이 서 있다 점점 썩어간다. 이별로 인해 점점 썩어간다. ‘이별’이란 단어를 반가워할 이들이 있을까. 부모들은 그럴 것이다. 자식들이 출가할 때 자식들을 위해 부모의 머리로는 보내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마음만은 그렇지가 않을 것이다. 가슴 한편이 자욱한 연기로 가득한 듯 눈은 매캐해져 시려오고, 가슴은 더욱더 아파질 것이다. 물론 나도 내 자식들의 부모로서 이러했다.
내 주위 사람들과의 “이별”이란 말은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속을 모두 연기로 가득 채우고 어느새 나의 몸을 지배해 모든 곳을 시리게 만들며 머리를 더욱더 아파져 오게 하고 어느새 사라져 나의 외로움은 점점 더 격해진다. 나는 10남매 중 막내란 이름표를 달고 나왔고, 이 이름표 옆에는 오래되고 지속적인 사랑이라는 불가능한 딱지도 함께 붙어 왔다. 형, 누나들과 당연히 나이 차이가 크게 있는 나에게 있어서 내 곁에서 계속해주는 가족들의 ‘사랑’은 그저 사치이었다. 부모님을 일찍 떠나보내고 나의 형제들도 일찍 한두 명씩 떠나보내다 보니 나를 둘러싸고 있던 내 가족들은 어느새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고 결국은 나 혼자만 남아있게 됐다. 11번의 가족과의 이별. 얼마나 많이 겪었나.
하지만 이별이란 놈은 만나면 만날수록 더욱더 낯설어지고 달갑지가 않은 놈이다. 그놈이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게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별. 그놈은 나를 놀리기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별을 거부하던 나는 어느새 수십 번의 이별을 겪은 듯하다. 가족뿐만 아니라 나의 친구들도 하나둘 떠나가다 이제 내 주위에는 몇 명 남아있지 않다. 결국, 나는 또 그들의 이별에 대해 미리 대비해야 할 상황이 온 듯하다. ‘이별’이란 것을 수없이 많이 경험해 왔지만, 그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과 만났고 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과 이별을 했다. 이제 내 나이 79세로 이별이란 것에 무뎌질 때도 된 것 같은데 무뎌진 곳은 몸이 기억한다고 하는 듯이 이별을 마주칠 때마다 나의 마음은 아픔을 기억해 다시 나에게 아픔을 재현해준다. 나의 마음은 또다시 시린 연기로 가득하게 된다. 항상 나는 이별을 겪어왔지만 이제 나의 적지 않은 나이에 나의 주변 사람들과 나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그런 때가 온 것 같아 점점 두려워지고 무심해진다.
# 보석은 깎여지고 갈릴수록 빛을 발하는 것.
비탈길과 자갈길……. 산전수전 다 겪고 많은 이들을 내 곁에서 홀연히 떠나보낸 지도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 나의 희어버린 머리와 이미 굳어버려 아내의 따뜻한 손길도 잘 느껴지지 않는 굳은살 박인 나의 손끝이 험난했던 그리고 고달프고 힘들었던 나의 세월을 다시금 내 머릿속을 그때의 힘든 기억들로 채워준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다. 나의 낙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나의 새로운 낙, 그리고 나의 새로운 삶을 만들어보기로 한다. 나는 나의 새로운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긴장되고 또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된다. 그 전의 삶이 힘들고 고달프고 외로웠다면 나의 두 번째 인생은 고달프고 외로웠던 전의 인생에 대한 나의 소심하고 능동적 발악인 셈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과 이별하고 느꼈던 나의 외로움들. 혼자 얼마나 외로웠고 쓸쓸하고 공허했는가. 내 곁을 묵묵히 지켜준 나의 아내와 함께 살 새로운 집을 오래된 나의 옛날 집 바로 옆에 짓기로 했다. 힘겹게 농사일을 해가며 나의 자식들을 고생고생 키웠던 옛날 집 바로 옆에 그리고 한평생을 바쳐온 농사를 아래, 위의 한 넓은 밭이 집 앞에 있도록 새로운 집, 나의 새로운 인생을 위한 계획을 하나하나 만들어갔다. 내 집에 정성을 한 땀 한 땀 들여 집 앞은 산의 경치도 절경이고, 넓은 나의 고추밭과 콩밭도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캔버스 용지처럼 하얀 하얀색 집을 지었다. 또 집을 지은 김에 내 집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단 자식 같은 나의 강아지 방울이를 나의 새로운 식구로 받아들이게 됐다.
집을 지은 지도 10년, 방울이와 함께 살아간 지도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나의 새로운 인생은 내 멋진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커다란 캔버스 위의 밑그림인 스케치에 불과하다. 이젠 이곳으로부터 나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며 나만의 색을 채워 넣을 차례이다. 예전의 쓸쓸하던 과거는 옛집 속에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고이 담아둘 것이고, 가끔 향수에 취하고 싶을 때 꺼내어 보겠지. 이젠 옛날 일을 옆에 담아둔 채 나의 새로운 인생이 스케치 된 캔버스에 나의 웅장한 붓놀림. 그 화려한 춤을 숨긴 무대의 막을 올릴 차례이다.
# 프롤로그 - 조래원 할아버지 삶의 자서전을 써드리며..
누군가의 인생에 들어가 그들의 책을 대신 써준다는 일이 과연 흔히 할 수 있는 일일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맺어준 인연으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자서전을 써드린다고 했을 때 솔직히 많은 걱정이 됐다. 원래 알고 친분을 쌓은 할아버지도 아니고 처음 뵙는데 어떻게 그의 인생 이야기를 내가 쓸 수 있을까.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다 해 주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만나고부터 걱정거리는 싹 사라지고 웃음만이 주위를 가득 채울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마치 우리를 친손녀들처럼 따뜻하게 맞이해주셨고 할머니도 우리에게 농담도 해주시며 마음 편하게 대해주셨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주시는 오미자 진액 또한 친근한 맛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계시는 남대리 산골 마을에 갈 때마다 이야기를 취재하러 가는 조사관이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애교도 부릴 수 있는 친손녀처럼 대하겠노라고 항상 생각했다. 나의 친할머니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과거 이야기들.. 남대리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항상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자주 뵙지 못하는 나의 할머니... 결국 나도 자서전을 다 쓰게 되면 남대리 할아버지를 뵐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다. 책 쓰기가 끝나면 약속되지 못할 만남에 더 이상 할아버지를 뵐 기회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보다 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더욱더 집중했고 같이 아파하며 그의 인생에 들어갔다. 그래서 탄생한 이야기가 바로 ‘진흙 속에 뿌려진 씨앗’이다. 글을 쓸 줄 모르시는 할아버지를 위해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 이러한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있게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 ‘조래원 할아버지’께 이 책을 드리며 이 책을 대신 써준 손녀들은 할아버지에게 엄청난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는 바이다.
[정리=영주여자고등학교 1학년 김소민·우소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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