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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리학자 김태규 칼럼니스트 ⓒ스카이데일리
작업실에서 친한 지인과 차를 마시던 중에 봄꽃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러다보니 우연히 동백꽃이 화제로 떠올랐다. 꽃 중에 가장 멋진 꽃이란 말에 선뜻 동의했다. 나 호호당 역시 동백꽃에 대해선 각별한 인상을 가겼기 때문이다.
동백꽃은 부산이나 통영, 여수, 해남 등 주로 남해안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직접 가보지는 않았으나 일찍부터 고창의 선운사 뒷산과 해남의 대흥사 뒷산의 동백꽃은 참으로 볼만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동백꽃에 대해 각별한 인상을 가진 것은 떨어진 꽃이 마치 칼로 도려낸 듯 말끔한 낙화(落花) 때문이다. 또 대개 꽃이 질 때면 시들어서 힘이 없는데 떨어진 동백꽃을 만져볼 것 같으면 꽃잎이 여전히 싱싱하고 살아있다.
이에 떨어진 동백꽃을 볼 때마다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열사를 연상하게 된다. 품은 뜻대로 결연히 행동에 나섰다가 체포당해서 목이 단칼에 잘려나갔으나 그럼에도 두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이 한 행동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동백꽃을 ‘열사의 꽃’ 혹은 ‘지사의 꽃’이라 부른다. 강개(慷慨)하고 장렬(壯烈)한 인상이어서 각별히 애호하는 동백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여기는 동백꽃이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감수성도 천차만별인 법이다. 제주도에서는 꽃이 떨어지는 모습이 목이 잘리는 것을 연상시킨다 해서 불길하게 여긴다는 말도 있다. 일본에서는 싱싱하던 꽃이 한 순간 툭 하고 떨어지는 것에 대해 갑작스런 불행에 비유한다고 한다.
남해안 일대에선 지금 막 동백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빠르면 2월 중순에서 3월 중순까지가 개화시기이다. 나 호호당은 부산에서 자랐기에 부산의 명소인 용두산 공원이나 해운대 동백섬 등에서 어려서부터 동백나무와 꽃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꽃잎이 아주 붉다. 나뭇잎은 대단히 통통하고 진한 녹색이다. 언젠가 남해로 놀러간 적이 있는데, 어느 식당의 안채 마당에서 장맛비에 시원하게 젖고 있는 동백나무를 봤다. 그 두툼한 잎사귀 위로 세차게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이 나무를 ‘동백(冬柏)’이라 부르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선 명칭이 또 다르다.
중국에선 이 나무가 차나무에 속한다 해서 ‘산다(山茶)’라 하며, 꽃은 ‘산다화(山茶花)’라 부른다. 또 다른 명칭으론 ‘해석류(海石榴)’라든가 ‘내동(耐冬·겨울을 견디는 나무)’이라고도 한다. 중국인들이 동백꽃을 대단히 애호하는 까닭에 명칭도 다양한 편이다.
일본에서 ‘춘(椿)’이라 부르는데 이와 관련해 얘기할 것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소설 ‘춘희(椿姬)’다.
엄밀히 따지면 소설 ‘춘희’는 일본말로 번역된 제목이고 뒤마 소설의 원 제목은 ‘동백꽃의 여인’(La Dame aux Camelias)이다. 소설 춘희는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통해 더욱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소설 춘희는 귀족의 아들과 창부의 이루어지기 어려운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이다. 오늘날 흔해빠진 텔레비전 드라마의 소재인 재벌집 아들과 없는 집 처녀 간에 이루어지는 비현실적인 사랑 이야기의 원형이라 하겠다.
오래 전 중학교 시절 누님이 소설 춘희를 읽는 것을 보고 궁금해서 한 번 보았는데 도무지 공감할 수 없었다. 한창 무협소설이나 좋아하던 나였기에 “뭐 이런 따위” 하면서 전혀 흥미를 느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문득 어떤 연관성이 떠오른다. 이미자가 부른 불후의 명곡 ‘동백 아가씨’가 어쩌면 소설 춘희에서 힌트를 얻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다.
노래 ‘동백 아가씨’는 1964년에 상영된 같은 이름의 영화 주제곡으로 만들어졌다. 신성일과 엄앵란이 주연으로 나왔다.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로 유명한 이미지가 가진 많은 히트곡 중에서 동백 아가씨는 가히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내용 역시 뒤마의 소설과 비슷한 면이 있다.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과 사랑을 맺은 섬 처녀가 결국 버림을 받고 술집에서 일하게 되면서 겪는 가슴 아픈 사연이기 때문이다. 일하는 곳의 술집 이름이 ‘동백바(Bar)’였다.
동백 아가씨의 노랫말도 절절한 아픔이고 그리움이다.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하는 대목에서 들려오는 이미자 씨의 가녀리게 흐느끼는 비음(鼻音)은 가히 절기(絶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노랫말 중에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라는 대목도 있다. 바로 이 ‘도려낸다는’ 표현은 동백꽃이 질 때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앞에서 내가 지사 혹은 의사의 꽃이라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동백 아가씨’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 꽤나 긴 세월 동안 금지곡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됐는가에 대해선 지금도 확실한 것이 없지만 어쨌거나 1987년 민주화 이후 풀려났고 여전히 우리 국민들의 대표 애창곡으로서 사랑받고 있다.
동백나무 중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은 최근 지정된 것을 포함해서 현재 재552호까지 나아가고 있는데, 그 중에서 동백나무가 무려 7개나 포함돼있다.
앞서 동백이 차나무과에 속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 까닭으로 동백꽃으로 만든 차도 있다. 동백꽃차 혹은 ‘산다화차’가 그것이다. 중국의 재스민 차처럼 일종의 화차(花茶)인 셈이다. 예전에 한 번 맛을 본 적이 있어서 하는 얘기이다.
그러나 역시 동백의 백미는 차보다 기름이다. 동백의 잎과 꽃에는 기름 성분이 대단히 많아서 예전엔 머릿기름으로 많이 사용됐으며 최근에도 적잖이 애용되고 있다.
소설 ‘춘희’나 노래 ‘동백 아가씨’의 사연을 생각하면 동백꽃은 참 슬픈 꽃이란 얘기가 된다. 하지만 나 호호당은 동백꽃이야말로 절개(節槪)를 갖추되 의기(義氣) 또한 넘치는 지사 혹은 열사의 꽃이란 생각을 한다.
그러고 보니 대여섯 살 어린 시절 용두산 공원의 동백꽃을 배경으로 선친께서 찍어주신 흑백사진도 앨범 속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난다.
3월 하순 경에 여수 돌산으로 놀러갈 계획이 있는데, 오동도에 가면 어쩌면 그때까지도 피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부디 그랬으면 싶다.
봄이 되니 계절 감각이 동해서 오늘은 동백꽃에 관한 얘기를 글로 쓰게 됐다.
김태규의 희희락락호호당
http://www.hohod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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