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만 남은 시대…디지털 민주주의 무엇인가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정현의 인문 책방…아즈마 히로키의 <일반의지 2.0>

정부가 디지털로 변하는 시대에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읽는다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3-11 16:26:12

▲ 문화평론가 정현 ⓒ스카이데일리

아즈마 히로키는 일본의 소장 문화연구자다. 그는 2011년의 어느 날 갑자기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읽겠다며 책을 출간한다.

책의 제목은 <일반의지 2.0>. 2.0은 디지털을 암시하고, 일반의지는 루소가 민주주의의 기반이 될 사회적 합의의 모델로 간주한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민주주의는 어떻게 가능한가.

무의식의 민주주의

놀랍게도 민주주의의 구현을 위해 아즈마가 주목하는 것은 합리적 토론과 논쟁 같은 것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민주주의가 토론을 필요로 하고, 토론을 통해 타인을 설득할 것을 권유받곤 했다. 언론출판의 자유, 공론장, 사회적 합의 등이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핵심어구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아즈마는 이러한 기존의 통념을 강력히 비판한다.

한 명의 개인은 특정 상황에서 매우 합리적인 인간일 수 있다. 우리는 물건을 사기 위해 본인의 재정 상태를 고려하고, 저축을 위해 이자를 계산한다.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들은 대체로 계산가능한 일들을 범주별로 정리하고, 위험요소를 분류하며 이뤄진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서로가 지켜야 할 규칙을 마련하며 공동체의 체계를 완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인간들이 무더기로 모이면 어떻게 될까. 5000만 인구가 모여서 한국사회의 미래를 논할 때 합리적 토론보다 먼저 시작되는 것은 갈등과 충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개인은 합리적일 수 있으나 대중, 즉 거대한 무리가 된 인간이 그 합리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프로이트의 눈으로 보는 국가모델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강력하게 폭로한 이는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19세기 말 임상치료를 하던 중 프로이트는 환자의 히스테리 반응이 그의 무의식의 세계와 긴밀히 연관됨을 깨닫는다.

프로이트는 이후 꿈을 분석하고, 신화와 문학의 여러 메타포들을 다루며 인간이 근본적으로는 무의식의 세계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밝혀낸다. 아즈마가 본 인간의 정신세계는 기본적으로 프로이트적 의미의 무의식의 세계다.

인간은 계산과 측정보다는 충동과 욕망에 의해 지배되며, 그 욕망은 군중을 이루는 순간 거대한 힘이 돼 폭발하기도 한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말하는 사회는 동시에 배려와 존중이 항상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암시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인간의 무의식은 언제나 일정한 통제를 필요로 한다고 간주됐다. 감옥이 설계되고, 병원과 재활원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인간이 온전히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합리적이지 못한 인간은 사회에 불안을 낳으며, 통제를 필요로 하게 된다. 과거의 정부 모델은 위로부터 통제하고, 시민사회를 견인하는 모델에 가까웠다.

토론 없는 디지털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통제의 이면에서 사람들은 투쟁한다. 온전한 합의가 불가능한 사회에서 인간은 갈등하거나 자기들의 이해집단을 만들어서 일군의 세력을 형성한다.

루소는 “긴 토론, 논쟁, 소란 등은 특수한 이익의 대두와 국가의 쇠퇴를 고한다”고 말했다. 아즈마는 이 문장이 기본적으로 토론이 합의를 만들어 가는 데 유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합의의 장애물이 됨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토론과 소통은 파벌을 만들고, 합의는 파벌들의 권력투쟁으로 무너진다는 의미다.

대신 아즈마가 주목하는 것은 디지털 플랫폼의 완전히 새로운 민주주의 형식이다. 거대기업 아마존이 빅데이터를 통해 고객의 욕망과 소비습관을 측정하듯, 새로운 정부는 디지털 ‘플랫폼’의 형식을 빌려 대중들의 욕망을 추적한다. 빅데이터가 대중의 욕망을 찾아내듯 토론을 대체하는 일종의 ‘데이터베이스’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일반의지란 데이터베이스를 의미한다” 루소가 사회계약의 기반이라고 말한 ‘일반의지’는 사실상 대중의 집합적 무의식이 되고, 통제기구였던 정부는 이제 디지털 플랫폼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즈마의 발상은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마케팅 전략과 국가의 공공성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토론이 사라지고 욕망의 무의식만 남은 세계에서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고태경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