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주 
헌법재판소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 결정으로 우리 헌정사에 또 다른 얼룩이 묻었다. 현직 대통령의 정의롭지 못한 사태가 그렇지 않아도 누더기가 돼 왔던 헌법에 오욕을 덧칠하게 됐다. 이번 사태는 대통령 흑역사에 정점을 찍었다고 할 만큼 역사적으로 수치스럽기 그지없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통수권자라는 점에서 설사 민간인들에 의해 자신이 농락을 당했다고 해도 그 관리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정황들을 몰랐다고 하는 것이 더 나쁘다는 자기반성으로 돌아봐야 한다. 나아가 그로인해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 온 우리 헌정사가 또다시 치명적인 독침을 맞아 그로기 상태에 빠졌기에 ‘헌법’ 앞에 진심으로 고개 숙인 죄인이 돼야 한다.
헌법은 법 이상의 숭고한 가치가 있다. 5천만 국민의 마음을 모으는 구심점인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야 할 소중한 대한민국이라는 국체의 메가 기둥이다. 헌법은 국론을 하나로 모으는 힘의 원천이고, 그런 힘을 함의(含意)하고 있다. 따라서 국론이 분열되면 그 숭고함을 훼손시키는 범죄행위라는 점을 절치부심 받아들이는 것이 소중하다. 헌법 아래 한 가족이라는 가치를 저버리면 누구나 죄인이다.
그런데 최순실 오욕의 역사가 묻은 헌법의 권위가 또 다시 땅에 떨어지려 하고 있다. 소위 잠룡으로 치부되는 대선 후보들과 그들을 따르는 권력지향형 무리들로 인해 헌법이 농락당할 우려감을 들게 한다. 개헌이냐 호헌이냐를 놓고 찬반논란이 그렇다. 또 개헌을 한다고 해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대부분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있는 듯한 검은 속내들로 차여 있다.
대선 일정이 짧아지면서 국민과 국가보다 권력을 쫓는 하이에나 무리들이 벌써부터 이합집산을 해가며 세(勢)를 결집하고 있다. 이들에겐 권력의 먹잇감이 헌법인 모양이다. 실제로 헌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권력과 이권이 갈린다. 이런 식이라면 최고 권력자 대통령을 유일하게 파면할 수 있는 헌법의 권위가 알고 보니 그들을 위한 ‘무력한 뒷방 권력’이라는 비아냥을 피하기 어려운 비통한 마음을 갖게한다.
권력가들의 입맛에 맞추는 식의 개헌이나 호헌 논의는 있을 수 없다. 이는 헌법을 자신들의 권력쟁취를 위한 칼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얼굴마담으로 격하시키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그 방증의 하나가 개헌을 하자는 쪽이 먼저 비겁하게 몸을 낮췄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개헌 목소리를 강하게 내던 정치권 인사들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또 다른 제왕적 권력에 그들도 이미 빠진 것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개헌을 하자는 방식을 놓고 격론이 분분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추진동력은 약해 보인다. 과연 진정성 있게 개헌을 할 의도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다만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임기 3년 대통령제, 연립정부안, 제7공화국 등 다소 구체적인 개헌방향을 내놓기는 했지만 그의 ‘철새식 정치’가 국민들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새 대통령을 짧은 시기에 뽑고 권력을 다시 위임해야 하는 만큼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수렴하는 과정이 시급하다. 시기는 지금 뿐인 탓이다. 대선이 끝나면 권력분점을 주 논제로 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이상 개헌논의가 온전히 사라질 가능성이 많다. 차차기를 보는 대선주자까지 감안하면 개헌은 물 건너 갈 가능성도 있다.
분명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문을 연 6공화국 헌법이 30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이젠 시대와 환경에 맞게 헌법 스스로 옷을 갈아입을 때가 됐다는 점이다. 권력의 야심가나 추종자들이 계산하고 재단하는 식의 개헌이 아닌 국민 총의가 모아지는 개헌이기에 헌법은 사실상 ‘셀프 개헌’이라는 국민중심의 로드맵을 가야한다. 오래된 민주주의 이념의 명제인 ‘국민에 의해, 국민을 위한, 국민의 개헌’이라는 말을 새삼 곱씹어야 한다.
국민참여 개헌은 국민들에게 여론을 호도하는 일부터 자제하는 것이 그 첫 걸음이다. 우선 개헌을 현실에 맞게 실시하되 현행 대통령제가 과연 꼭 나쁘다고 할 것인지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작금의 대통령제가 제왕적이라는 표현은 사실 옳지 못하다는 뜻이다. 국민주권을 보호하는 자율방패라고 할 3권분립에서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
제왕적이라는 표현 자체가 공화제가 아닌 군주제에 다름 아니라는 의미다.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하면 헌법 제1조1항 맨 첫머리에 있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라는 국시체계를 뒤흔드는 판단이다. 국회해산권이 없는 대통령이 과연 제왕적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자문하게 된다. 제도는 좋지만 권력을 농단하도록 견제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이 더 문제인 측면이 강하다. 그 과정에서 먹이사슬이 형성되고 그 사슬 속 이권이 바로 제왕적 권력을 잉태시키는 주범이 아닌가.
우리 헌법은 제정된 이후 권력자들의 입맛에 난도질당해 왔다. 권력의 성찬이 돼 주는 밑반찬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기들도 여럿 있었다. 따라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해 온 대통령제를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그럴듯한 유혹의 말로 쉽게 버리는 것은 마뜩치 않다. 대통령 권력이 아닌 ‘청와대 권력’을 민주화 할 수 있는 작동장치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합심해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재론하지만 이를 전제로 대통령제를 과연 수술대에 올려놓을 필요가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개헌은 오히려 대통령의 권위를 지키주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질 필요가 있다. 군사·외교적으로 약소국의 위치에 있는 우리의 처지를 감안하면 대외적으로 국익이 되는 대통령 권위는 오히려 높아진 권력에서 나온다. 일사불란한 통치와 위기를 조율하는 과감한 결정을 위해 중임제는 대표적인 개헌 방점이다. 임기가 4년이든 5년이든 중임제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올곧게 추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그 대신 청와대 수석들을 대폭 줄이고 인력이나 규모도 중폭 조정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행정부 장·차관들이 수석들의 자리를 대신해 대통령이 청와대 궁궐의 호랑이가 아닌 실무형 국무위원들과 머리를 맛대는 솔선수범의 강력한 리더십을 갖는 일꾼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금처럼 단임제를 유지한다면 기득권을 먹고 지키려는 세력들이 또 부패의 온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더욱이 분권형이 되면 권력을 나눠먹기 위한 ‘두 얼굴의 굿판’이 더 치열해질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헌법가치를 살리는 길은 권력을 올바로 쓰도록 조정하고 수정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 작금의 상황처럼 권력싸움의 수단에 헌법이 자리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대하역사소설 ‘우리나라 삼국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