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그 이상” 위기맞은 보통사람 스위트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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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박해천의 <콘크리트의 유토피아>

‘한강의 기적’ 아파트 공화국 시작과 혼란…중산층 상징이 된 아파트 신드롬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3-18 14:27:30

▲ 문화평론가 정현 ⓒ스카이데일리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금리인상이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채우고 있다. 가장 큰 후폭풍으로 지목되는 것이 국내 아파트 대출시장의 혼란이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부동산 시장을 지탱하는 것은 가계부채다. 금리 인상은 이 가계부채의 뇌관을 흔들 것이고, 그 뇌관이 가장 폭넓게 자극할 영역이 아파트 대출 시장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국에서 아파트 대출 시장이 경제위기의 뇌관으로 지목받는 이유가 있다. 알려졌다시피, 한국에서 아파트는 단순 주거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아파트 값은 오른다’는 통념은 오래전부터 아파트를 재산 증식의 도구로 전환시켰다.

아파트는 한국에서 ‘중산층’ 입성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곳에 발을 디디면 일단 정상적으로 부와 삶을 영위하는 계층에 편입된 것으로 평가받는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한강에서 시작된 아파트 건설 신드롬은 1980년대를 경과하며 신도시 개발과 맞물렸고, 이후 중산층 ‘스위트 홈’의 상징이 되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아파트 건설이 붐이 일어났다. 건설사들은 짓고, 입주자들은 대출을 받아 중산층의 세계에 편입한다. 아파트로 들어간 중산층들은 아파트 값이 오르기를 바라며, 빚을 갚는 일에 몰두한다.

가끔 주변에 아파트 값을 떨어뜨릴 일이 터지면 단결해 투쟁한다. 가히 아파트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이 ‘빚내고 집 산다’의 신드롬이 이제 위기에 봉착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이 ‘아파트 신드롬’은 어떻게 정착된 것일까

한강의 기적에서 아파트 콘크리트의 기적으로

한국의 경제발전을 빗대는 표현인 한강의 기적은 아파트 붐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다. 이른바 ‘콘크리트의 기적’이라 부를 만한 일들이 1960년대를 기점으로 일어났다. 1962년 건설된 마포아파트가 분기점이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좌식 온돌방에 익숙했다. 사람들에게 입식 패턴의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건축물은 낯설게 다가왔다. 이 때문에 마포아파트는 완공 후 한동안 미분양 문제에 봉착했다. 수도권 특히 한강을 주변으로 건축 붐이 들어간 아파트들은 언론과 정부 정책의 틀에서 중산층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다고 회자되곤 했다.

마포아파트에 이어 아파트 신드롬의 바통을 이어받은 건축물은 서울 용산에 지어진 1970년대 건축물 한강맨션이었다. 맨션(mansion)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당시에 아파트는 대저택(mansion)을 지닌 이들, 즉 부유한 소수 계층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신도시 중산층 시대의 시작과 혼란

소수 부유층에서 전유되던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서민들의 삶에 파고든 것은 언제일까. 아파트 건설 붐은 1970년대 말, 혹은 1980년대로 넘어오며 본격적으로 강남으로 확대된다.

이 책의 저자 박해천에 따르면, 1980년대 강남의 아파트 건축은 1970년대 한강변의 아파트들과 구분된다. 후자는 기존의 부유층이었던 서울 출신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전자는 강남 아파트들은 지방 출신의 성공한 젊은 세대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공간으로 나타났다.

이때부터 서민들의 계층의식에 변화가 나타난다. 1980년대 초중반 실시된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사람들은 스스로의 생활수준으로 ‘보통 수준’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 후보는 자신을 ‘보통사람’으로 표방했고, 경제성장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보통’이 되는 일을 삶의 규범으로 인식케 했다.

이때 보통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개발도상국에서 준·선진국으로의 진입이라는 경제적 배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에게 이제 ‘보통 수준’이 된다는 것은 과거의 가난과 결별해 모두가 영위할 거라고 간주된 현대적 중산층이 되는 것을 뜻했다. 중산층과 더불어 ‘스위트 홈’이라는 표현이 부상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아파트는 판자촌의 가난이 있던 자리에 들어섰다. 가난과 결별한 중산층의 삶은 고속 성장으로 표방된 한국 경제발전 신화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아파트란 단순 주거 공간을 넘어 서민들의 정체성의 모델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그 중산층들의 아파트 신드롬이 위기에 봉착해 있다. 현행의 가계부채 위기는 바로 중산층의 정체성 위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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