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도구화…생명조작 시대의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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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카우시크 순데르 라잔의 <생명자본>과 영화 <로건>

생명을 도구로 만드는 기술의 오용 가능성을 경고하는 두 개 의 텍스트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4-01 17:43:31

▲ 문화평론가 정현 ⓒ스카이데일리

생명공학의 발전과 더불어 항상 떠오르는 화두는 생명윤리다. 인간의 생명에 테크놀로지는 어느 정도까지 개입해도 되는 것일까? 이 윤리적 물음은 세계의 국제적 질서와 결합하며 생각보다 꽤 복잡한 문제를 낳는다.

당장 인공수정 기반의 대리모 문제를 보도록 하자. 많이 알려진 대로, 이제 대리모 현상은 국제적 분업의 형태를 띤다. 인도의 익명의 여성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자궁을 제공하고, 유럽의 부유한 백인들은 그 자궁을 활용해 생명 잉태의 과정을 아웃소싱해 결과물(아기)를 받아낸다.

새로운 의약품은 항상 실험을 요한다. 역시 제3세계의 가난한 이들은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일정액을 받고 의약품 실험에 자신의 몸을 맡기기도 한다. 에이즈나 여타 치명적 병에 대한 의약품들은 부유한 극소수에게만 활용될 수 있고, 수많은 이들은 약 처방의 권한을 박탈당하는 일들이 많다.

이 문제를 좀 더 넓게 가져가 보면 어떨까. 생명공학이 인간 자체를 대신할 로봇형 인간 혹은 신인류형 인간을 만들어 낸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 <로건>이 흥미로운 이유는 인간에 대한 생체공학적 실험이 어떤 디스토피아로 귀결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을 살해하는 생체공학적 인간의 발명

<로건>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영화 시리즈의 하나로 상영됐다. 로건은 태어날 때부터 생체공학에 의해 일반적 인간과 다르게 태어났다. 그런데 이 생체공학의 목적은 인간을 대신할 병사, 즉 인간을 살해할 초인적 병사를 육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난한 여성의 자궁을 빌리되, 생체실험을 통해 인간보다 더욱 강력한 존재로 만드는 것, 초인적 능력을 가지되 항상 마음 안에 (타인을 죽일 수 있도록) 분노를 간직하게 하는 것이 이 생체 실험의 목적이었다. 주인공 로건은 이 실험의 주요 발명품이었으나, 실험자들이 ‘분노’의 감정을 그에게 삽입하는데 실패하며 문제가 발생한다.

실험자들로부터 탈출한 로건이 이제 투쟁하는 대상은 인간을 죽이기 위해 발명된 로봇형 인간들이다. 그리고 그 병사들과 자신을 발명해 세계를 파괴하고자 하는 세력들과 그는 대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대결을 위해 로건은 흥미롭게도 멕시코와 캐나다의 국경을 넘나들고자 한다.

멕시코라는 가난한 국가의 여성들은 그 로봇형 병사들의 탄생을 위해 자궁을 제공하는 이들이다. 생명 생산의 국제적 분업은 영화에서도 매우 상징적으로 그려진다. 로건은 자신의 거처로 가기 위해 멕시코 국경을 넘어간다. 멕시코란 어던 나라인가. 멕시코의 가난한 국민들은 일과 생계를 위해 미국의 자본을 필요로 하며, 이민을 결심하기도 한다.

국경이 다시 전선이 되는 시대

한편, 순데르 라잔의 책 <생명자본>은 영화 <로건>과 유사한 시대적 현상을 해석하되, 주로 인도 등의 제3세계 지역과 서구 간의 관계에 집중하는 책이다. 이 책은 인간의 신체를 생체공학적 실험과 관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21세기에 특징적인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라잔에 따르면, 세계화 시대에 국경은 이동이 자유로운 곳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제3세계와 제1세계가 ‘생명공학’이라는 화두를 통해 만나는 지점은 ‘자유’와는 매우 이질적인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봤듯 누군가는 자신의 몸을 제공하고, 누군가는 돈을 지불해 생명생산을 아웃소싱해 그 결과물을 향유한다.

국경은 자유보다는 위계가 상존하고, 같은 문명권에서도 어떤 다른 세계의 경계를 그어놓은 듯하다. 영화 <로건>에서 로건의 거처가 멕시코였다면, 로건과 그 동료들이 적을 피해 넘어가고자 하는 곳은 캐나다의 어느 마을이다. 미국의 거대 의학실험 집단을 사이에 두고, 멕시코와 캐나다의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일로 그려진다. 혹시 인도의 여성들도 대리모가 되거나, 이주민이 돼 일터를 찾아 나설 때 이와 유사하게 목숨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생명공학이라는 과학의 문제는 현실의 국제적 관계와 빈부 문제 등을 통해 매우 복잡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고태경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