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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리학자 김태규 칼럼니스트 ⓒ스카이데일리
결혼정보회사는 등급표란 것을 가지고 있다. 직업에 따른 등급을 기본으로 해서 구혼자의 외모나 키, 양쪽 집안의 재력이나 사정 등등 여러 조건을 감안해 최종 등급을 매긴다. 등급표는 회사마다 사실상 똑같다. 일종의 ‘시장 표준 등급표’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시장 표준 등급표’라고 하는 이 말은 여러 번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가 표방하는 현실적인 가치기준이 단계별로 그 값이 매겨져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가치관’이란 말이 있다. ‘가치관’이란 사람이 자기를 둘러싼 세계나 어떤 대상에 대해 부여하는 가치나 의의에 관한 견해나 입장을 뜻한다. 사람마다 태어난 시대, 성격, 성장환경 등이 다르기 때문에 가치관 또한 저마다 다르고 지극히 다양하다.
이처럼 한 쪽에선 가치가 엄밀하게 획정(劃定)돼 있고 또 한 쪽에선 지극히 다양하다. 갈등이고 모순이다.
시장은 다수의 수요자와 공급자 간에 거래가 다량으로 일어나는 곳이다. 때문에 늘 그때그때 가격이 정해진다. 추상적인 가치 또한 등급이 붙고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다. 이를 ‘시장가’ 혹은 ‘시장가치’라고 한다.
우리는 늘 답을 구하고 찾지만 시장가 혹은 시장가치는 절대 정답이 아니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늘 변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관적인 생각이고 견해일 뿐인 개인의 가치관 역시도 정답이라고 보기 힘들다.
결론적으로 시장가치나 개인의 가치관이나 모두 정답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뒤집어 말하면 가치란 것이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도 된다.
가치 혹은 가치 체계는 시대에 따르고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최고의 가치로서 진선미(眞善美)를 이야기했다. 대단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참됨, 선함, 아름다움 등 3가지의 영원한 덕목이 환경과 시간에 따라 그 내용이 늘 달라진다는 점이다.
결혼정보회사가 가진 등급표는 물론 우리 사회의 현실과 시장 가치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결혼정보회사의 경영자나 담당자가 특별히 속물(俗物)이거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다만 놀랍고 무서운 사실은 가치의 우선순위를 나타내는 ‘등급표’가 획일화됐는데도 지나쳐 보이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아마도 우리 사회 자체가 획일화됐기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된다.
획일화됐다는 말은 흔히 바람직하지 않은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상 어느 곳을 가나 어느 정도는 가치의 틀이 짜여있고 규정돼 있기 마련이다. 다만 우리 사회는 그 틀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산층’이라는 말이 실제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였다. 중산층은 안정된 수입을 가능하게 하는 대규모의 일자리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중산층이란 단어가 생겨났을 때부터 이른바 많은 인력을 채용하는 기업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1982년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우리의 중산층은 대단히 근면했고 억척이었다. 잘 살아보자는 강한 의욕과 신분상승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중산층이 지향하는 가치가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었고 대동소이했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난제가 발생했다. 오늘에 이르러 우리 사회의 현실 가치 체계는 바늘 틈 하나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경직되고 획일화돼 버린 것이다.
특히 취업이 수월해지고 용이해진 세대들, 즉 1964년을 중심으로 앞뒤 5년의 세대들, 이른바 586세대들의 경우 학부 시절까진 무척 진취적인 성향을 보였으나 사회 진출 후 기성세대·기득권층이 되면서 그야말로 획일화된 가치관을 지니게 됐다. 비록 생각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물론 저마다 얘기를 들어보면 개개인은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겠지만 현실적인 행동은 철저하게 획일화돼 버렸다.
586세대가 본격 사회활동에 들어간 1992년을 전후해서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성장해갔다. 하지만 동시에 더욱 더 치열한 경쟁사회가 됐기에 한눈을 팔 겨를이 없었다. 한눈을 팔면 즉각 뒤쳐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박하사탕’이란 영화가 있었다. 지난 2000년에 개봉됐기에 최근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586세대들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영화이다. 그 영화에 나온 명대사 중 ‘나 돌아갈래’라는 말이 있다. 이는 586세대의 심금을 울렸다. 586세대들은 돌아가고 싶었다. 다시 말하면 치열한 경쟁이 싫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작 경쟁 대열에서 자발적으로 이탈한 사람, 즉 돌아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눈앞의 치열한 경쟁에서 눈을 돌릴 순 없었기 때문이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현실이 그 영화를 잊지 못할 영화로 만들었다.
경쟁에서 이탈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어쩔 수 없이 탈락하거나 아니면 맨 선두에 서서 결승선을 넘어서는 일이다. 씩씩한 우리의 586세대 들은 모두가 죽을힘을 다해 맨 선두에 서고자 했다.
1964년을 5년 전후해서 태어난 586세대는 숫자 면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집단이다. 그들의 집단적 행태는 정치적으론 진보적 색채를 보였으나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 구도 하에서 단일화된 모노톤(monotone)의 목소리를 낸 결과 지금의 획일화된 가치 체계를 만들어놓았다.
물론 획일화된 가치체계가 그들의 책임이라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586세대가 가장 숫자가 많고 1982년부터 생겨나기 시작해서 1992년부터 본격 확산되기 시작한 우리 사회의 중산층을 대표하는 세대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리고 2002년부터는 중산층의 확산이 멈추기 시작했고 반면에 양극화가 서서히 진행되기 시작했다. 중산층으로 들어가는 문이 좁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연봉제와 계약제, 임시직과 아르바이트가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중산층의 문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2002년은 우리 국운의 추분이었으니 그로서 사실상의 본질적 성장이 멈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2년이 되자 외형성장도 멈추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그저 재정적자를 확대하고 대출을 늘리는 억지 성장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즉각 디플레이션과 불황이 닥쳤을 것이다.
최근 일간지에 보니 20대 젊은이들의 번아웃 증세가 심각하다고 한다. ‘다 타 버렸다’는 뜻을 지닌 이 단어는 젊은이들이 극도의 신체적, 정서적 탈진 상태와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단느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유야 누구나 알 것이라고 본다. 획일화된 가치 체계 아래 질식될 지경에다가 취업의 어려움은 날로 가중되고 있으니, 굳이 이 자리에서 더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시 돌아가서 얘기해보자. 어떤 이유로 우리 사회는 획일화되고 모노톤의 가치 체계만을 허용하고 있는 것일까에 대해 좀 더 얘기해보자. 지금부터의 얘기가 이 글의 요지이고 핵심이다. 독자들께선 좀 더 주의를 기울여서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구한 말 세계사의 흐름에서 탈락한 뒤 일제 치하에 있었던 나라다. 그러다가 졸지에 해방이 되고 나라를 세웠지만 또 다시 6.25 전쟁이란 엄청난 비극을 겪어야 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물질적으로 철저하게 폐허에서 출발해야 했다. 그런데 그에 못하지 않게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물질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철저한 폐허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예로부터의 유교적 그리고 불교적 가치관은 철저하게 허물어졌기에 현대 사회에 맞게끔 계승 발전시킬 것이 전혀 없었다. 조선말의 사회체제가 철저하게 몰락해있었기에 그 또한 남아날 것이 없었다.
대한민국은 정신과 물질 양면에서 폐허와 공백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다. 우리는 1960년대 말 박정희 정부 시절의 새마을운동에서 외쳤던 구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것이 전부였다. 당시 너무나도 먹고 살기가 어려운 시절이라 그저 잘 살아 보자고만 했지, 잘 산다는 것에 어떤 항목과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은 미처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1982년부터 우리 경제가 서서히 발전하면서 중산층이 생겨났지만 그때만 해도 여전히 잘 살아 보자고만 했을 뿐이었다. 무엇이 잘 사는 것이냐에 대한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진 않았다.
그 이후에도 오로지 치열한 경쟁사회 뿐인 대한민국이었다. 돌아가고 싶어도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사라져버린 대한민국이었다.
1982년부터 중산층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년이 흘러 2012년이 되자 중산층이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60년의 순환이기에 30년이 흐르면 반대되는 흐름이 등장하는 까닭이다.
그 사이에 모노톤의 획일화된 가치 등급표만 남았다. 젊은이들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등급표 말이다. 저마다의 다양한 가치관에 대해선 이제 감히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어려운 현실이 되고 말았다.
흔히 답답하거나 어려울 땐 판을 엎어버리고 갈아치웠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혈기왕성한 나이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 바람에 졸지에 우리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감옥에 보내버렸다.
물론 나 호호당 개인의 생각이지만 검찰은 전직 대통령을 거의 잡범 다루듯이 몰아세우고 있다.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정도에서 그쳤으면 했지만 아쉽게도 이런저런 사유를 붙여 구속을 하고 이어서 옥살이까지 시킬 모양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현실, 즉 우리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 가치 등급표는 요지부동이란 점이다. 등급표는 국운의 바닥인 2024년을 지나고 다시 많은 세월이 흐르다 보면 좀 더 쓸 만한 버전이 나올 것이라 본다. 그런 것을 일러 역사의 발전이라 한다.
또 한 번의 봄날이 눈앞을 스쳐가고 있다.
김태규의 희희락락호호당
http://www.hohod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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