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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우 칼럼니스트
풍산(風山)점(漸)의 뜻을 살펴보자. 점은 점점 증가, 차츰 증가, 번지다의 뜻을 지닌다. 어떤 일이 차례대로 진행되는 모습이다. 주역 괘의 상황도 산 위로 바람이 불어오는 모습을 표현한다. 봄이 돼 동풍이 산으로 불어오니 나무들이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과정이다. 외부의 변화로 인해 내부 역시 변하게 되는 과정이다.
기업의 경우 새롭게 수립한 전략이 기존의 방법을 바꾸기 위해 계속 불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전략을 실행하는 수단은 프로세스이므로 새로운 사업에 맞는 프로세스를 기존 프로세스를 토대로 점차 발전시켜 나가는 단계다.
신제품 출시나 신사업을 하게 되면 판매 시장, 고객이 달라지고 제품에 필요한 부품들도 변하게 되므로 기존과 다른 일하는 방식이 필요하게 된다. 때문에 사업이 다각화되는 과정에서 필요한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제대로 뒷받침을 해 주지 못하면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특히 스피드와 효율 측면에서 고전한다.
국내 기업들이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을 앞지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높은 프로세스 효율과 빠른 스피드였다. 같은 반도체를 만드는 사업이지만 우리 기업들은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 동일한 면적위에 층을 쌓아 올리는 방식을 채택했고 면적당 집적도를 높여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반도체 공장 건설 과정에서 일종의 조립식과 같은 모듈화(부품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생산해 장착하는 기술방식)를 통해 경쟁자들 보다 공사기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공장을 빠른 확장은 공급 증가로 이어졌다.
기존 경쟁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물론 새로운 시장에 뒤늦게 참여하는 경쟁자들에게 진입장벽을 설치하기 위해서도 프로세스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LCD TV시장에서도 국내 기업들이 공급망 관리를 통해 품질, 원가, 스피드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에 선발 주자였던 일본 기업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제품의 외관이나 성능과 같은 유형의 경쟁력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만들고, 판매하고, 서비스를 할 것인지 등 무형의 프로세스 경쟁력도 중요하다. 이를 실행할 프로세스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시작이 반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시작이 좋으면 무언가 잘 될 것 같은 믿음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는다. 그래서 ‘시작이 반 이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물론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 번에 옷을 입을 수 있긴 하지만 큰일의 경우에는 진행하면서도 당면하는 문제들이 워낙 많기에 좋아하기엔 이르다.
비전은 잘 만들어 졌고 필요한 자원도 확보하고 사업을 시작했으니 추진 팀을 주축으로 계획대로 추진하고 점검하면 될 것이라 생각 한다. 하지만 초길종란(初吉終亂)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잘 나가지만 끝에는 어지럽고 혼란스럽다는 말이다. 용두사미와 비슷한 뜻이다. 다가올 혼란을 대비해 방심은 금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계획과 실행의 차이 확인
기업의 사업영역이 증가하고 규모도 커지게 되면 직원들도 늘어나고 종전에 안하던 일도 새로 생겨나게 된다. 일이 증가하고 직원들도 함께 늘어나면 분업화에 이은 전문화가 필요하게 된다. 예전에는 한 사람이 하던 일도 이제는 여러 사람이 나눠서 일을 해야 효율이 좋아진다.
예를 들면 규모가 작을 경우에는 구매부서에서 조달, 구매, 물류 등을 모두 수행할 수 있다.하지만 규모가 커지게 되면 조달 전문, 구매 전문, 물류 전문 인력들이 생긴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안 하던 일들도 추가하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제품의 설계 단계부터 구매인력이 같이 참여해 원부자재비를 절감하는 개발구매 업무 등이 있다.
신사업이 추가 될수록 이러한 전문화는 계속 이어진다. 이는 어느 순간 유사한 업무를 여러 사업부가 따로 진행하면서 전체 효율을 저하시키는데 앞장서게 된다. 신사업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업이 이전과는 다르기 때문에 프로세스와 시스템도 새로 만들고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사업부간 중복을 확인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장이다.
그 보다는 기존의 프로세스를 자세히 분석하면서 신사업 프로세스와의 Gap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는 같은 일이지만 이를 표현하거나 사용하는 용어가 달라서 다른 프로세스로 착각하고 운영하고 별개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경우가 많다. 기계들만 표준화 할 것이 아니라 간접 부문의 사람들이 하는 일도 표준화해야 한다.
New Business Process 설계
삼성그룹이 경영 스피드를 향상시키고 시스템 운영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삼성전자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계열사에 확산시키는 프로젝트 진행했다. 당시에는 전자 제조업, 건설업, 석유화학업 등 다양한 산업이 속해 있어 하나의 표준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개별 회사의 프로세스를 분석해 본 결과 ‘공통으로 묶을 수 있는 것’ ‘해당 산업에 특화된 것’ ‘개별 회사 고유의 프로세스’로 구분할 수 있게 됐고 공통부분은 전체를 표준으로 설정하는 새로운 프로세스가 됐다.
프로세스와 시스템 인프라 확보
표준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갖추면 신사업을 추진할 때도 표준화된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차이분석을 하고 산업 및 제품 고유의 프로세스만 특성에 맞게 별도로 설계하면 된다.
프로세스 설계 시간 단축과 시스템 개발기간 단축, 그리고 신속한 정보 제공으로 인해 신사업의 리스크를 조기에 발견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상태가 심각해 금융위기 수준의 위협이 다가오던 시절 삼성전자는 이미 보유하고 있던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통해서 해당 국가의 고객별 신용 상태 및 부실 채권 규모 등을 신속히 파악해 별다른 재무 손실 없이 금융위기를 극복했다.
이러한 인프라가 갖춰 지지 않은 상황에서 수종사업을 추진하면 증가된 복잡도를 커버하지 못하고 수렁에 빠진 듯 헤매다 외형증가와 함께 엄청난 부실을 양산하고 곤경에 처하게 된다. 부실의 대표적인 예가 과도한 재고, 장부와 실물의 불일치, 그로인한 현금 흐름의 동맥경화이다.
프로세스와 시스템 구축이 별개의 작업이 아니라 사업의 기본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으로 보고 초기에 확보하면 처음엔 힘들지라도 나중에 편해지는 초란종길(初亂終吉)을 맞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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