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의 시대에서 속물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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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김홍중의 <마음의 사회학>

진정성의 시대에서 속물의 시대로

속물, 또는 인간과 괴물 사이를 살아가는 존재의 사회학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4-22 14:22:11

▲ 문화평론가 정현 ⓒ스카이데일리

한때 ‘헬스’라고 불렀던 곳이 지금은 주로 ‘피트니스(fitness)’라 불린다. 피트니스란 무슨 뜻일까.

일상에서 ‘옷의 핏(fit)이 좋다’는 말을 한다. 옷이 몸에 잘 맞거나 옷의 라인이 예쁘다는 의미다. 또, 옷을 입는 것은 ‘피팅(fitting)’이라 한다. 핏이란 적합하다, 잘 맞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옷이 몸에 잘 맞아야 하는 것만큼 인간의 몸매는 어떤 표준 사이즈에 잘 맞아야 할 필요가 있다. 피트니스 클럽은 더 이상 건강(헬스)을 초점으로 잡지 않는다. 몸만들기. 즉, 피지컬 피트니스는 몸 자체가 관리의 대상이 된 시대, 몸매라는 것이 타인의 시선에 의해 평가되는 대상이 된 시대의 산물이다.

과거에 몸은 배고픔과 연관돼 평가됐다. 행복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었고, 살이 찐다는 것은 부유하다는 것을 함축했기에, 결코 수치스러운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반면, 이 시대는 몸 자체를 외형적으로 개조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꿈틀거린다. 날씬하되, 근육이 잘 조화된 몸, 볼륨이 있되 비만하지 않은 몸을 갖고자 하는 욕망은 모든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성형과 피트니스의 유혹이 ‘자기계발’이라는 화두와 맞물리고, 몸이 굶주림이라는 생물학적 욕구를 넘어 가치평가의 대상으로 부상한 이 시대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마음의 사회학’이라는 제목을 단 이 책은 생존과 신체의 문제에 집착하는 이 시대의 마음을 읽고자 한다.

배고픔에서 벗어난 후 오히려 몸에 집착하는 사람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생활의 발견’ 등의 작품으로 화제를 부른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은 대체로 IMF 이후에 발표됐다. 속칭 ‘찌질’하고 비루한 엘리트들의 삶을 조명한다.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된 “우리가 인간은 못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대사는 IMF 이후 시대상을 압축한 말로 조명받기도 했다.

도덕적 진정성이 강조되고, 공동체의 질서가 세간의 화두를 모으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생들은 스스로를 지식인으로 간주하며 사회의 도덕적·정치적 선구자가 되고자 했다. 이념은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 동력이 됐고, 국가와 민족은 개인 위에서 대의를 이끄는 존재가 됐다.

그러나 90년대를 전후로 시대는 급속도로 변한다. 개인화의 시대, 다양성의 시대라 불린 90년대에는 이른바 X세대가 등장하며 새로운 시대의 문화가 등장했음을 암시했다. 삐삐와 핸드폰의 등장, ‘워크맨’을 활용해 길거리를 거닐면서도 귀로는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소비문화의 새 장막이 시작된 때였다.

대량소비와 대량생산의 이러한 시대는 80년대 말의 3저 호황을 거치며 잠깐 반작한 후 IMF 위기가 시작된다. “인간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 더 이상 기존의 숭고한 도덕적 가치나 대의에 떳떳한 존재가 되지 못하더라도 완전히 몰락한 속물은 되지 말자는 뜻이 저 대사에 함축돼 있다.

한국사회에서 IMF 이후는 경제적 타격과 더불어 ‘생존’이라는 화두가 쓰나미처럼 모든 가치관을 휩쓸어간 시기였다. 이른바 ‘속물’의 시대, 혹은 홍상수의 대사대로라면 ‘괴물’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몸은 평가받는다, 그리고 속물의 시대는 시작 된다

국가와 민족, 혹은 이념과 대의가 몰락한 시대에 개인들은 철저히 홀로 던져져 고립된다. 모든 가치를 생존이라는 화두가 흡수한 시대에는 놀랍게도 생존의 의미 자체도 변화를 겪게 된다.

기존에 생존은 배고픔에서 해방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생존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에 몸이 생물학적 건강(혹은 배고픔)이라는 문제와 연관됐다면, 오늘날 몸은 철저히 도덕적 평가의 대상으로 변모한다. 예컨대,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다고 평가받고, 게으름은 스스로에게 무책임한 것이라고 규정된다.

배고픔의 시대는 결핍의 시대였고, 그 결핍을 메운 것은 놀랍게도 공동체적 대의였다. 때로 사람들은 그 대의를 위해 목숨을 버리기도 했고, 희생을 강요받기도 했다. 반면 피트니스(fitness)와 자기계발이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이라고 할 수 있다. TV에서는 먹방이 나오고, 사람들은 자기 PR을 위해 스스로를 과장되게 뜯어고치고 규격에 맞추고자 한다.

성형에서 피트니스까지, 생존의 모든 것은 이 과시와 어필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필자는 이렇듯 타인에게 자신을 과장하고 과시하는 형태를 일본의 사고구조를 빌려 속물적 태도라고 간주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타인에게 노출해 있다. 모두가 노출돼 있으니 이제 돋보이기 위해 노출된 것을 얼마나 더 선명하게 과장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 셈이다. 속물은 시대정신이 된다.

고태경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