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오너 父子의 흔들리는 경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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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오너 父子의 흔들리는 경영상

스카이데일리 칼럼

김신 기자페이지 + 입력 2017-04-24 00:01:49

▲ 김신 편집이사

지난 2013년 ‘등기임원(등기이사)’이란 단어가 새삼 조명을 받은 일이 있다. 5억원 이상 연봉을 받는 상장기업 등기임원의 보수 공개를 의무화 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베일에 감춰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민감하게 여겨졌던 ‘연봉 공개 의무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대상인 ‘등기임원’의 역할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등기임원’은 뜻 그대로 ‘이사’ 가운데 ‘법인 등기상에 등기된 이사’를 일컫는다. 이사의 법률상 의미는 ‘법인의 사무를 처리하며 이를 대표해 법률 행위를 행하는 집행기관 또는 그 직위에 있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등기임원을 두는 가장 큰 목적은 무엇보다 회사의 행위에 대한 법률적 책임성을 분명하게 하기 위함이다. 주식회사의 위법행위로 손실을 봤을 때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지 업무의 책임성을 법에 명시해 분쟁 소지를 줄이고, 기업 경영이 보다 투명성 있고 책임감 있게 이뤄지도록 한 것이다. 그만큼 자본주의에서 회사의 실질적 주인인 주주가치를 엄정하게 보호하기 위한 의도가 깔렸다.

등기임원은 회사를 대표하는 무거운 책임을 부여받은 만큼 그에 합당하는 대가를 받는다. 막강한 권한은 부여받음은 물론 적지 않은 보수까지 챙긴다. 또한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그리고 책임 범위가 넓을수록 대개 대가도 함께 커진다. 연봉만 보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일반 샐러리맨의 수십배를 챙기기도 한다.

과거 일부 재벌기업의 경우 단지 오너 일가라는 이유만으로 등기임원에 이름만 올려놓은 채 합당한 이유 없이 고액의 연봉을 챙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5억원 이상 연봉을 받는 상장기업 등기임원의 보수 공개 법안이 발의된 데는 이를 막자는 취지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이 실시된 후 상장계열사 등기임원에 올라 있던 몇몇 재벌 오너는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나 연봉 공개 대상에서 피해나가는 ‘꼼수’를 썼다.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오너 일가는 끝내 자신의 보수를 철저히 감췄다. 뿐만 아니라 기업의 소유주로서 막강한 권한을 과시했지만 등기임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법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특혜’를 누리기도 했다.

최근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 오너 부자 역시 등기임원 지위를 내려놓은 채 실리만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논란의 주인공은 동부그룹 오너인 김준기 회장과 그의 장남 김남호 동부화재 상무다. 두 사람은 동부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위치해 있지만 정작 등기임원에 올라 있는 계열사(상장기업)는 단 한 곳도 없다.

그룹 내 각 계열사에 대한 어떠한 법적인 책임에서도 자유로운 이들 부자의 연봉은 공개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하게 판가름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들 두 부자는 연봉 이외에도 상당한 금액을 계열사로부터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두 사람 모두 주력계열사인 동부화재해상으로부터 수백억원대의 배당금을 챙겼다.

지난해 말 기준 637만9520주를 보유한 김남호 상무는 105억2621만원을, 김준기 회장은 69억4403만원을 각각 배당금 명목으로 수령했다. 같은 시기 동부화재 등기임원(대표이사)인 김정남 사장은 연봉(7억700만원)과 배당금(12억450만원)을 다 합쳐도 20억이 채 되지 않았다.

과거 한 때 계열사 64개를 보유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를 보이던 동부그룹은 얼마 전 유동성 위기로 그룹 해체 위기에 내몰렸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해 가까스로 위기는 면했지만 그 과정에서 기업 규모가 크게 쪼그라들었다. 과거의 위상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됐다. 동부그룹의 위기는 기업인수 등 무리한 외형확장이 그 이유로 꼽힌다.

통상적으로 그룹의 외형 확장은 총수의 의지나 결단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동부그룹의 무리한 외형 확장 역시 김준기 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일부 소액주주들 사이에서 동부그룹 사세 축소가 김준기 회장이 패착(敗着) 때문이라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그룹 위기의 책임은커녕 수백억원대의 배당금을 챙기기 바쁜 김준기 회장 일가에게 따가운 시선이 모아지는 배경이다.

물론 ‘배당’은 상장기업의 주주에게 부여된 당연한 권리다.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들에게 골고루 배분한다는 보편타당한 인식에서 비롯됐기에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주주’에 한해서다. 경영적 판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오너에게 있어 배당의 의미는 좀 더 확대돼야 하는 게 맞다.

수십여개의 계열사를 보유한 재벌총수라면 특정 계열사가 아닌 그룹 전체의 성적표를 보고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특히 기업 경영의 법적 책임 없이 막강한 권한만 행사하는 총수라면 배당에 있어 더더욱 엄격해야 한다. 다른 소액주주들 때문에 배당을 해야 한다면 총수 일가의 몫만큼은 적자 계열사에 출연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 현 상황에서 김준기 회장 부자(父子)가 챙긴 수백억원대 배당금은 그룹의 미래에 불안을 드리울 수 있는 ‘여론의 역풍’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김신 s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