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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부동산<6>]-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돌직구 발언 화제 심상정, 가족재산 불과 3.5억

남편 명의 아파트 한 채만 보유…주요 대선후보 재산 순위 ‘꼴찌’

서예진기자(uccskku@skyedaily.com)

기사입력 2017-05-04 1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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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일 치러질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선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별명은 ‘심블리’다. 이는 그의 이름과 영어 ‘러블리’가 합쳐져 탄생한 단어다. 이 별명은 그가 지내온 인생 역경과는 어울리지 않아 더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 후보는 여러 차례에 걸친 토론회에서 날카로운 지적을 한 덕에 ‘사이다’, ‘심크러쉬’라는 긍정적 평가와 ‘말이 너무 거칠다’는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얻었다. 심상정이 날카로운 지적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서울대 최초 총여학생회를 만들었고 10년간 수배 생활을 했으며, 금속노조에서 활동하며 주 5일제를 이끌어내는 등 고난과 역경의 세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많다. 스카이데일리가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 중 재산이 가장 적은 것으로 알려진 심 후보의 부동산 현황에 대해 취재했다.

 ▲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남편인 이승배 씨 명의로 현재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삼송우림필유아파트의 한 호실을 소유하고 있다. 해당 호실은 공급면적 149.61㎡, 전용면적 114.44㎡ 규모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씨는 이 아파트를 2013년 7월에 매입했다. ⓒ스카이데일리

지난달 2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한 제1차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성폭력 범죄를 공모한 후보를 경쟁자로 인정할 수 없다. 홍 후보는 사퇴해야 한다”며 “오늘 홍 후보와는 토론하지 않겠다”고 비판했다.
 
심 후보가 이같이 말한 것은 홍 후보의 자서전 ‘나 돌아가고 싶다’에서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 모의를 밝힌 것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심 후보가 공격의 포문을 열자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도 홍 후보에게 “강간 미수 공범”,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이같이 홍 후보에게 직격탄을 날린 심 후보는 주요 정당 후보 중 가장 적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 후보가 신고한 부동산은 경기 고양시에 있는 남편 명의 아파트 정도였다.
 
‘친노동’ 심상정 정의당 후보, 5억 아파트 등 재력도 ‘친서민’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자 등록을 마친 5개 주요 정당 후보 가운데 심 후보의 총 재산은 3억5078만8000원으로 가장 적었다. 심 후보는 남편 이승배 씨 소유 경기 고양시 소재 아파트(114.44㎡) 4억9500만원, 본인과 직계가족 명의 예금 5850만원 등과 함께 2억2700만원의 채무를 신고했다.
 
심 후보가 제19·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부터 매년 신고한 고위공직자재산변동 사항에 따르면 2015년 2억8480만6000원에서 2016년 2억8573만7000원, 올해는 3억5078만8000원을 기록했다.
 
이는 현재 남편 명의로 보유한 경기 고양시 덕양구 삼송우림필유아파트 호실의 실거래가가 3년 간 7000만원 정도 올랐기 때문이다. 2억2700만원의 채무는 생활비와 학비 명목으로 신고했다. 심 후보의 재산목록 1위는 해당 아파트 호실이 85.7%로, 거의 전부인 것으로 분석됐다. 그의 재산 내역은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는 보통 시민들의 재산 내역과 비슷해 ‘재산도 친서민’이라는 웃지못할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심 후보의 남편 명의로 된 호실이 위치한 경기 고양시 삼송우림필유아파트는 삼송지구가 조성되며 지어졌다. 입주는 2013년 10월부터 이뤄졌다. 고양 삼송지구는 은평뉴타운, 지축지구와 인접해 서북부 주거안정을 위한 단지 조성, 인간 자연생활이 융화된 복합형 주거단지 건설을 위해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조성된 곳이다. 
 
삼송우림필유아파트는 우림건설에서 지었으며 6개동 455세대로 규모가 큰 단지는 아니다. 이 씨 소유의 호실은 공급면적 149.61㎡(약 45.3평), 전용면적 114.44㎡(약 34.6평) 등의 규모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씨는 이 아파트를 2013년 7월에 매입했다.

선관위에 등록된 후보자재산신고사항과 2015년 3월 발표된 고위공직자 재산변동에 따르면 이 부부는 은행 대출 외에 아파트 구입을 위해 1억원의 사인간 채무를 졌다고 신고했다. 누구에게 아파트 구입 중도금을 빌린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심 후보는 이 아파트를 2015년 4억1554만8000원, 2016년 3월에는 4억2000만원, 올해 3월에는 4억9500만원으로 신고했다. 이는 이 일대 아파트 시세가 상승한 것을 반영한 것이다. 이 일대 부동산들은 해당 호실의 시세를 4억5000만~5억1500만원으로 평가했다.
 
구로동맹파업 주도한 ‘인민무력부장’서 금속노조 ‘철의 여인’으로
 
심 후보는 1959년 경기 파주시에서 태어나 충암중, 명지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범대학 역사교육학과에 진학했다. 심 후보 측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대학에 진학했을 때는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던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특히 한 방송에서 “좋아하는 남자마다 다 운동권이다 보니 어느새 나도 운동권이 돼있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운동권에 투신한 후 1980년 서울대 최초로 총여학생회를 창설하고, 서울대 초대 총여학생회장이 됐다. 그리고 같은 해 구로공단으로 위장취업해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등 노동운동을 펼쳤다.  
 
 ▲ 심상정 후보(사진)는 1959년 경기 파주시에서 태어나 충암중, 명지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범대학 역사교육학과에 진학했다. 1980년 서울대 최초로 총여학생회를 창설하고 서울대 초대 총여학생회장이 됐다. 그리고 같은 해 구로공단으로 위장취업해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등 노동운동을 펼쳤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대우어패럴 미싱사로 일하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1985년 6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기 최초의 정치적 연대 파업 투쟁인 구로동맹파업에 나섰다. 구로동맹파업은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동맹파업이었다.
 
파업은 자본가들과 결탁한 구사대의 폭력과 경찰의 탄압 속에 1주일 만에 끝났다. 이 사건으로 44명의 노동자가 구속되고 1000여명의 노동자가 해고됐다. 1984년 노조 결성 및 쟁의로 수배 중이었던 심 후보는 구로동맹파업의 주동자로 지목돼 지명수배됐다. 심 후보는 “파업 닷새쯤 되던 날 자장면을 먹으며 뉴스를 보던 중 화면에서 ‘1계급 특진, 현상금 500만원’이 걸린 내 얼굴을 보았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구로동맹파업 이후 1985년 심 후보는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을 만들어 조직적인 민주노조운동에 나섰다. 이때 서노련을 같이 조직한 인사로는 현재 자유한국당 소속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있다. 1986년 5월 4일 전두환 정권은 서울노동운동연합을 국가보안법에 의한 반국가단체로 규정, 이들을 연행해 서노련은 사실상 해체됐다. 심 후보는 체포를 피해 수배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심 후보는 서노련 와해 후에도 1988년 전국노동단체협의회 결성에 참여했다. 1990년 전국노동조합 협의회가 창립되자 ‘인민무력부장’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쟁의국장과 조직국장을 역임했다.
 
다만 그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창립일 하루 전에 경찰에게 연행돼 창립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심 후보가 경찰에 연행됐을 당시 ‘10년의 수배 생활을 해온 노동운동의 거물’이 잡혔다며 경찰들이 “얼굴 좀 보자”고 몰려들었고, 심 후보는 창립식을 TV로 봐야만 했다고 한다.
 
심 후보는 이때 불구속으로 기소돼 1993년 법정에 섰다. 선고 공판이 있는 날 그는 만삭의 몸이었다. 판사는 “무죄를 선고하고 싶으나 관련 법규가 최소한 집행유예를 선고하게 돼있다”는 설명과 함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준비위원으로도 활동한 심 후보는 1995년 11월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창립될 장시 민주금속연맹과 금속산업연맹의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금속연맹은 산업별 노동조합인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으로 발전했다.
 
금속노조는 2003년 대한민국 최초로 산별중앙교섭을 통해 노동조건 개선 및 임금 삭감 없는 주 5일 근무제를 합의했다. 심 후보는 금속노조에 몸담으며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민주노동당에서 진보 정치 첫 발…지금은 정의당의 ‘심블리’
 
심 후보는 2003년 금속노조 사무처장직을 물러나 진보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삼성그룹을 비롯한 대기업의 순환출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이외에도 재정경제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기존 거대정당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 심 후보는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진보 정치인의 길을 걸으면서 2번의 후보사퇴, 3번의 탈당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난 1월 20일에는 “열심히 일하면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진보 정당의 대표로서 과감한 정책을 발표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는 심 후보의 모습. ⓒ스카이데일리
 
2008년 민주노동당을 탈당해 노회찬 의원 등과 진보신당에 합류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섰다가 당시 유시민 후보를 지지하며 야권 단일화를 위해 사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경기 고양갑에 출마, 새누리당 소속 손범규 후보에 170표차로 신승했다. 그러나 ‘통진당 사태’로 탈당해 유시민·노회찬 등과 정의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당시 야권 단일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문재인 통합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했다.
 
2015년 정의당 당 대표 선거에서 노회찬 후보를 꺾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 그는 지난 1월 20일 “열심히 일하면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진보정당의 대표로서 과감한 정책을 발표했다. 그는 오는 9일 치러질 19대 대통령선거 후보로도 나선 상태다.
 
심 후보는 대권 도전을 공식화하며 “국민의 삶을 바꾸는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등 과감한 노동정책을 발표했다.
 
또한 경제 불평들을 해소하기 위해 △정경유착 재벌 총수 구속 △전경련 해체 △재벌 일가 특혜 폐지 △원청과 협력업체 간 초과이익공유제 실시 등을 내세웠다. 특히 재벌 3세 경영 세습을 금지하고 재벌 독식 경제를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정치활동을 하며 남성들을 압도하는 연설과 토론 실력으로 심 후보가 얻은 별명은 ‘심크러쉬’(심상정+걸크러쉬), ‘원더우먼’ 등이다. 밝고 스스럼없이 소통해 ‘심블리(심상정+러블리)’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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