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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국민들을 긴장케 한 한반도 위기설 또는 전쟁설은 안타깝게도 과거 미-소(러시아) 냉전체체가 남긴 작은 나라의 비극이라는 또 다른 재연 장면으로 절치부심 다가왔다. 냉전의 산물 한반도의 남-북은 그렇게 현존하는 우리의 치열한 비극적 자화상이다. 미국의 북한 선제타격론에 우리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이라는 외교적 굴욕을 맛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닥친 전쟁위기에 당사자인 우리가 철저히 소외당한 것은 냉전이 끝났음에도 우리의 생존권이 여전히 미국에 달려있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했다.
군사적으로 동맹을 넘어 혈맹이라는 미국은 중국과 모종의 밀당(밀고 당기기) 외교를 하면서 일본과도 교감을 가졌다. 우리만 이 과정에서 쏙 빠졌다. 러시아까지 그 틈새에서 입김을 발휘해 우리는 동북아 주변 4강국에 아무런 스탠스를 취할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렸다. 냉전체제의 산물인 분단·전쟁·휴전 그리고 분단의 고착화 후 경험한 약소국 트라우마가 바로 전쟁 위기설의 본 모습으로 재연됐다. 한반도는 4강국이 요리할 도마위에 오른 물고기 신세로 전락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사드 배치비용 10억 달러를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의 허를 찔렀다. 이는 트럼프가 코리아패싱 설계에 화룡점정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 위기설이 고조된 직후인 4월말에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정부와 전혀 사전교감없이 그야말로 뒤통수를 쳤다.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한반도에 전개된 시점에서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트럼프는 보란듯이 ‘미국이 남한을 보호하는 비용을 대라’고 포효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는 아직도 종전이 아닌 휴전이라는 준전시상태에 있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 및 핵개발 도발에 우리는 전시에 준한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사드배치로 이어졌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미국의 대북 전략은 미국의 글로벌 군사전략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미국의 국익과 직결되는 곳에 바로 북한과 김정은 정권이 있다는 것은 한적한 시골 사랑방의 화제거리가 될 정도로 모두가 아는 공지의 사실이다. 북한 정권의 존립은 미국의 국익에 절대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지렛대는 바로 북한 지렛대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치졸하게도 그런 수법을 동원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세기의 제국 로마의 망국이 약소국을 대할 때 대국답지 않은 치졸한 정책으로 망가졌듯이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 그런 걸음을 걷고 있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대북 전략을 포함해 누가 봐도 미국의 국익이 작동하는 글로벌 군사작전의 한 일환이다. 그 비용을 우리에게 전가하는 밑그림(전시상황)을 그려놓고 우리에게 전가시키는 행위는 그야말로 유치하다. 더욱이 우리는 미국 수출산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무기구매 최대 고객이다. 한국은 미국산 무기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구매하는 초우량 고객의 위치에 있음에도 트럼프는 그 조차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행동을 했다. 이건 누가 봐도 글로벌 대국이라는 리더십을 잃고 망동하는 모습이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등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2006년 방사청 개청이래 지난해 10월까지 미국산 무기를 무려 36조원 어치나 구매했다. 단연 세계 최대 규모라는 점에서 우리는 미국에 군사 외교적으로 당당할 위치에 있다. 국방기술품질원의 ‘2016 세계 방산시장 연감’ 자료를 봐도 한국은 2006~2015년까지 미국무기 수출국 순위에서 1위에 랭크됐다. 우리는 무기수입 중 독보적 1위가 미국이고, 미국은 가장 많이 자국의 무기를 수출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미국무기 수입은 앞으로도 천문학적 규모로 진행형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진행되는 미국무기 도입 사업에 따라 앞으로 한국이 미국에 줘야 할 돈의 규모가 10조원이 넘는다. 여기에 단일 기지로는 세계 최대규모인 평택 미군기지 조성에도 총 17조원 중 우리가 약 9조원을 내놓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평택 기지를 필요이상으로 너무 크게 짓고 있다. 이 또한 평택 기지가 한반도용을 넘어 미국의 동북아 거점기지로 활용되기 위한 목적이 크다. 한국은 미국의 방위동맹보다 돈을 열심히 대는 방위산업의 최전선에 있는 격이다.
실제로 우리가 수입하는 한해 약 10조원 가량의 무기도입 비용중 약 90%가 미국산이다. 지난 2014년만 해도 78억달러(약 9조원) 규모의 수입무기 중 약 70억달러(약 8조원)가 미국산이었다. 반면 이 기간 미국은 약 40조원 가량의 무기를 수출해 독보적인 글로벌 무기수출국 1위에 올랐다. 우리가 이처럼 미국 방산산업의 효자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미국 무기만이 첨단이 아님에도 우리는 미국 무기를 충실하게 수입한다. 하지만 큰 손 고객으로 대접은 커녕 오히려 무시당하고 나아가 우리가 미국의 은전을 입고 있는 입장이 돼 버렸다. 미국의 북한 지렛대는 이처럼 가공할 경제무기가 돼 우리를 공격한다. 우리 국민의 혈세가 미국 행정부와 국회에 전방위적으로 로비를 하면서 줄을 대고 있는 미 방위산업체들에게 줄줄이 빠져 나가고 있다.
최근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세계 무기 거래량이 냉전 후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중 글로벌 무기 수출시장의 33% 가량을 미국이 차지하고 과거 냉전의 강국이었던 러시아가 23%로 2위를 달리고 있다.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는 미국과 반미국가들의 후견인을 자처하는 러시아가 이처럼 무기를 팔아대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보호자나 후견인이란 말이 참 어색하다. 공교롭게도 미·러에 이어 무기수출을 많이 하는 빅6 국가에 중국, 프랑스, 영국 등 이른바 유엔 안보리 핵클럽 영구 상임이사국이 포진해 있다.
핵무기 초강대국 지위를 갖고 있는 국가들이 다른 나라의 핵확산을 강력하게 억제하면서 살상무기들을 무차별 수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히 미·러 냉전의 두 주역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노골적으로 분쟁과 갈등을 일으키면서 방산이라는 핵심 수출산업을 이끌고 있다. 이를 반증하듯 냉전이 끝났음에도 글로벌 무기시장이 확대일로다. 이런 무기시장 확산의 핵심에 바로 대한민국도 자리하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북한 지렛대는 미국의 국익에 절대적이다. 아니 미국 방산업체에 북한은 가장 우량한 비즈니스 명분이 되고 있다. 미 방산업체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갈등과 전쟁위기를 전략적으로 고조시킨다는 설은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기도 하다. 과거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인내는 그런 점에서 미국의 진짜 속내를 의심하게 했었고, 작금의 트럼프 행정부는 그것이 끝났다고 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국익을 챙기는 노골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 어디서든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절대 강국이다. 이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뜻과 같다. 이런 막강한 글로벌 권좌의 위치에 있는 미국이 약소국을 대상으로 지나치게 약탈적 근성만을 드러낸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소국적 지위로 전락시키는 자충수에 다름 아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대국답지 못한 리더십을 갖는 강국은 반드시 몰락의 길을 갔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 우리에게 최대 고객의 예우를 해도 모자랄 판에 진액까지 빨겠다는 심산으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북한 불장난을 부추기고 있다. 약소국의 생명을 대신 내건 채 눈앞의 이익을 쫒는 트럼프식 행동의 미국은 더 이상 강자도 강국도 아닌 빈껍데기 군사대국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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