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 다한 청년들…그들의 노력, 진정 부족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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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성공과 경쟁의 신화에서 다시 찾아야 할 공감의 세계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5-20 15:35:01

▲ 문화평론가 정현 ⓒ스카이데일리

“입사할 때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됐으면서 갑자기 정규직 하겠다고 떼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위인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20대를 대상으로 인터뷰된 내용 중 한 대목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시대의 새로운 화두로 부상하고 있는 지금, 사회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문제는 무엇인가. 당장의 비용이나 법적 화두를 넘어 먼저 취업을 앞둔 20~30대들의 반응이 뜨거워지고 있다.

책의 제목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다. 차별에 찬성한다는 것, 불과 20년 전으로만 시계를 돌려도 20대 청년들의 이러한 반응을 예측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세계의 어떤 연구를 찾아봐도 비정규직의 노동생산성이 정규직의 노동생산성에 뒤진다는 분석은 없다. 그런데 새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에서 정규직화를 말한 이후, 청년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새로운 논쟁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외환위기 후 20여년 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됐고, 자기계발은 취업준비생 개개인이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과제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무임승차론’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네가 비정규직인 것은 너의 노력이 부족해서야. 네가 가난한 것은 네가 무능하기 때문인데, 무임승차하려면 안 돼’ 성적조차도 강남과 강북을 가르는 시대, 기회 자체가 빈익빈부익부로 양극화되는 시대에 이러한 질타는 뭔가 와전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임승차에 대한 불만

책의 저자는 지난 2008년 한 수업에서 학생들과 KTX 승무원 비정규직 문제를 토론하는 자리를 갖는다. 정규직과 다를 바 없는 일을 하면서도 저임금에 고용불안을 상시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KTX 승무원들은 정규직화의 약속을 받다가 끝내 회사로부터 해고됐다.

‘지상의 스튜어디스’라는 화려한 이미지와 달리 KTX 비정규직 승무원들은 외주업체를 통해 고용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기도 했다. 글의 서두에 인용했던 학생의 발언은 KTX 비정규직 승무원들에 대한 논의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비슷한 물음은 주제를 달리해서도 동일하게 반복됐다. 예컨대, 지방사립대 출신들은 입시경쟁에서 낙오된 존재들이기 때문에 취업경쟁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도 된다고 간주됐다. 스펙을 쌓지 못한 이들은 자기계발에 충실하지 못한 무책임한 존재로 간주됐다.

새로운 공정성 관념의 등장

공정성의 새로운 관념이 출현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제 청년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달구는 것은 권력 남용이나 폭력이 아니라 ‘무임승차’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타내는 무임승차자로 간주됐다. 이때 공정성이란 무엇인가. 책의 저자는 자기계발의 신화에서 문제의 핵심을 찾고자 한다.

지난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붐을 형성한 것이 바로 자기계발 신드롬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을 필두로 서점가를 강타한 베스트셀러의 다수는 자기계발 도서들이었다.

스펙을 쌓고,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있는 역량을 발굴해 내는 것, ‘성공’의 실패를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감 부족으로 간주하는 것. 자기계발의 이러한 가치지향은 사회 전반에 이미 깊게 침투했다. 문제는 이러한 가치지향 속에서 개인들로 하여금 온전한 공동체적 연대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장치와 정서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개인의 자기계발의 몫으로 돌아갈 때 타인에 대한 공감이 사라지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은, 어쨌든 모든 건 자기 탓이라는 자기계발 논리에 길들여진 결과이다. 즉, A가 아파할 때 그보다 더 심한 고통을 이겨낸 B가 있다면 A의 고통은 참아야 되고,이겨내야 하고, 사회적 요인과 무관한 것이 돼 버린다”

요컨대, 누군가의 고통은 공감의 대상이 되기보다 그보다 더한 고통과의 비교대상이 되곤 한다. 무임승차는 이러한 맥락에서 공정성의 새로운 기준이 된다. ‘너보다 더 힘든 이들이 가득한데, 네가 왜 충분한 대가도 치르지 않고 정규직을 얻으려 하니’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이런 주장들에 가장 결여된 것은 ‘공감’이다.

자기계발로 성공에 이르고자 했던 지난 20여년간 많은 청년들이 현실의 장벽 앞에 무너져 갔다. 청년들 앞에 놓인 연실은 대부분 불안정한 삶이지, 정규직의 안정된 삶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이 내가 미래에 직면해야 할 고통임을 직시하지 못할 때, 그 차별은 곧 그들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자기계발의 신화를 돌아보고 사회가 짊어져야 할 책임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아닐까.

고태경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