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 ‘예절’ 만든 문명의 논리…근원은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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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

18세기 서구 문명화과정은 식민의 야만을 만드는 것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6-17 14:45:16

▲ 문화평론가 정현 ⓒ스카이데일리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시민계급이 처해 있는 숙명적 상황이다. 나는 그 계급의 일원으로서 신분의 차이가 얼마나 필요하며, 그것이 나 스스로에게도 얼마나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잘 알고 있지만, 단지 그것이 나를 방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나오는 한 편지의 구문이다. 이 편지가 말하는 바는 단순하다. 시민계급으로서 나는 나보다 밑에 놓인 신분들이 내 지위를 위협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내가 위로 향하고자 할 때 내 신분이 그 위를 향한 걸음에 장애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18세기 말 서구사회는 점차 동요하고 있었다. 신분제의 거대한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제 귀족 내의 상층부는 본인들의 지위가 무너질까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문명화과정’이라는 이 책은 흥미롭게도 오늘날 우리가 아무 고민 없이 사용하는 ‘문명(civilization)’이라는 단어가 18세기의 역동적인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단어임을 말해준다. 한국에서는 산업화와 함께 마치 대도시의 빌딩 등과 같은 물질적 가치를 상징하는 듯한 이 단어의 기원은 놀랍게도 18세기 서구의 궁정사회였다.

‘야만’을 발명한 시민계급은 무엇을 두려워했는가

문명(civilization)이라는 어원이 되는 단어는 불어의 ‘civilite’, 즉 ‘예절’이다. 예절은 어떻게 오늘날 문명이라는 새로운 뉘앙스의 단어로 발전했을까. 기원은 18세기 말이다.

18세기 말까지 프랑스의 궁정사회는 오늘날 우리가 예상하는 우아함이나 낭만과는 거리가 먼 공간이었다. 기사도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대체한 것은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들의 거친 욕망, 궁정사회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삶을 위협하는 폭력적인 충동들이었다.

이 충동들의 위협적인 힘은 신분제가 흔들리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먼저 돈을 가진 부르주아 계급들이 귀족의 상층부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철저하게 신분으로 구분되고 각자의 위치가 충분히 고정된 궁정사회에서 상류 귀족층이 본인 지위의 불안을 느낄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계급이 올라오면서 귀족층은 자신들만의 신분적 우위를 증명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인다. 문인들은 이제 궁정사회를 절제되고 감정을 배제하며 철저히 이성적인 세게로 묘사하고자 한다. 예절이라는 것이 새롭게 화두가 되면서 이제 일상의 세세한 부분에까지 규칙이 강제되기 시작한다.

식사하는 행위, 배변, 코 푸는 행위, 침실에서의 행동 등 인간의 욕망이 침투하는 모든 것은 절제된 행위의 미덕이 작용해야 하는 새로운 예절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궁정사회는 부를 추구하고 천박한 부르주아 계급과 변별되는 합리적이고 절제된 상위의 세계로 규정된다.

발전과 정신으로서의 문명화 혹은 서구의 제국주의적 사고

물론 상류 귀족층들의 이러한 사고는 매우 인위적인 것이었고 본인들의 신분적 권한을 유지하기 위한 기만적 목적을 갖는 것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러한 귀족층들의 예절화(문명화) 과정은 18세기 궁정사회의 틀을 넘어 부르주아 세계의 또 다른 규범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18세기 말 이후 프랑스의 문명 개념이 갖는 함의는 매우 복합적인 것이었다. 우선 그것은 어떤 발전 단계를 표방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문명은 야만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서구사회 자체가 문명의 표준이 된다고 할 때, 비서구권 세계가 야만으로 전환하는 것 역시 시간문제였다.

그 발전단계는 다시 두 가지의 기준 하에 설정된다. 하나는 물질적 발전이다. 산업혁명의 추동력으로 발전한 서구사회는 물질적 발전의 이름으로 근대문명을 건축해 낸다. 또 다른 하나는 정신적 측면에서 구축된다. 앞서 궁정사회의 모델에 대해 말했듯 이전까지 서구사회는 매우 거칠고 야만적인 공격성을 내포했다.

그러나 문명화 과정을 수반하며 모든 것이 절제의 강박에 놓이게 되자 인간의 생리적 욕구와 기초적인 욕망들 전반이 야만의 범주에 포섭되기 시작한다. 비서구권의 원주민들, 백성들 등이 그 야만의 일반 범주에 포섭됨은 물론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서구사회가 식민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문명의 규범이 활용됐다고 한다.

여기에 문명의 역설이 있다. 절제의 미덕을 추구한다는 문명화의 논리가 역으로 다른 세계의 식민화를 이끌었다면 이때의 절제란 무엇인가. 야만을 배척하기 위해 이뤄지는 식민주의의 폭력은 또 다른 의미의 야만은 아닌가. 아마도 저자는 절제와 문명의 가면 하에 진행되는 야만의 폭력성을 폭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는 1930년대 말이다. 2차 세계대전과 나치즘의 야만이 세계를 뒤덮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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