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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른바 적폐청산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이 고조되면서 이를 수행할 개혁적 인사들이 속속 기용되며 큰 개혁대형이 만들어지고 있다. 권력기관장들과 주요 각료들은 물론이고 권부의 중심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핵심 주변인물들과 이들의 숨은 실세가 돼 줄 1급 비서관들이 속속 채워져가고 있다. 이들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앞으로 상당한 후폭풍이 불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한다.
앞서 우리는 건국 이후 초유의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충격과 분노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꼈다. 일개 한 여인에 의해 벌어진 전방위 국정농단 사건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차라리 ‘리얼리티 쇼’로 치부하고 싶기까지 하다. 그런데 새 정부의 개혁적 인사들이 이를 자양분으로 삼아 일사불란한 개혁 깃발을 휘날릴 명분들을 손에 가득 쥐었다. 마치 어둠을 넘어 새 날을 향해 나아가는 진군의 나팔을 불 대형을 갖추어 가는 모습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파면과 구속은 사실 말을 꺼내기도 힘든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런 음지의 큰 오점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새 정부의 개혁 지렛대로 작용해 양지를 지향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동시에 권력의 대이동을 실감나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는 대선과정에서 문 대통령을 찍지 않았던 표심까지 지지세력으로 돌아서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권력지형 팽창속도가 가속페달을 밟은 것처럼 매우 빠르다.
이에 적지 않은 보수층들도 ‘문의 개혁 드라이브’에 기대를 걸면서 변화의 희망열차에 탑승하는 분위기를 보인다. 국민주권주의가 내팽개쳐진데 대한 자괴감에 대한 반사적 대세로 느껴진다. 중도보수층들 사이에서는 실제로 ‘친박은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기대였을 뿐’이라며 전(前) 정권의 실정을 비판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기도 하다. 이런 판도에 우리 헌법의 숭고한 가치인 주권재민(主權在民)은 마치 이상국가에 대한 ‘타는 목마름’으로 변해 지금을 비추는 거울이 됐다.
국민들이 대거 탑승한 ‘문재인호’가 막 기적소리를 내며 출발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신오탄이 쏘아진 그림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원론적이지만 그리고 희망이지만 국민들 손에 들려 있는 권력이 이양되는 과정인 대의정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작금의 우리 사회에는 민주주의 형성과정에서 등장한 다양한 입장들이 자신만의 편견으로 혼재돼 국론분열의 씨앗이 되고 있다. 어찌보면 한물 간 이데올로기의 갈등이고 대립이며 싸움이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겪은 압축성장 과정에서 적개심을 갖게 된 이념적 분열현상은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새로운 고동 소리를 내며 출발한 문재인호가 적절한 기회이자 그 출발이 되기를 기대한다.
국민에게 평화와 안전을 보장해 주고 국민은 그 지배자에게 복종을 해야 한다는 토마스 홉스의 논리는 마치 오늘에 존재하는 국가주의를 반추하게 된다. 군사독재는 그 정점을 찍었고 그 또한 정의의 옷을 입었었다. 주지하다시피 박정희 정권의 경우는 경제적인 성과가 매우 컸지만 정치적으로는 국가주의에 의해 개인의 자유가 많은 침탈을 당했다. 이는 군주제의 지배논리처럼 정당화되기도 했던 과거형이 분명하지만 새 정부에서도 현재형으로 관통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을 외쳤던 그들 모두가 새 정부에 무조건 적대세력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들이 품은 애국주의 조건은 과거형이지만 국가와 국민에 대한 희생이라는 자신들만의 가치가 동반된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새 정부의 적폐청산이 이들의 사상적 틀을 이념적으로 규정지을 경우 국민통합이라는 과업을 수행하기 어렵다. 새 권력진용이 이데올로기 공격대형으로 드라이브를 걸 경우 진짜 적폐청산 대상은 더 음지로 숨고 국가주의에 강한 사람들과 극단적 사상논쟁만 촉발할 우려가 있다.
민주주의 골간을 이룬 로크, 홉스, 루소 등의 논거들은 자유주의를 고양시킨 것이 맞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유를 더 억압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새 정부의 숙고와 고민이 필요하다. 이런 현실을 냉철하게 응시하는 것이 국민주권의 이상적 정치체를 만들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대를 탄탄히 만드는 길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점령군들의 부역자 처내기’ 여론이 뒤숭숭한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권초기 기대감을 한 몸에 받은 칼들이 곳곳에서 지나친 공포감으로 번뜩이면 부메랑이 닥칠 수 있다.
권력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시쳇말이 실은 시쳇말일 수 없다. 이 순간 국민주권의 신성한 자연권 사상이 흔들리는 것 자체가 시쳇말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올바른 정치체를 여전히 구축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권력은 늘 국민을 향해 자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지배자라 하더라도 국민의 지지와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다수결원칙을 존중한 존 로크 논리의 논거는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욱더 현재형이 돼야 한다. 새 정부는 적폐청산을 해나가되 국민주권이라는 이상에 금이 가지 않는 기술적인 로드맵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로크의 이론은 몽테스키외를 거쳐 오늘날 삼권분립에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의 기초를 닦기는 했다. 나아가 선거라는 철길을 놓은 장 자크 루소는 현대 대의민주주의(의회 또는 직선제) 시스템의 밑천이 됐다. 하지만 이상적 시스템으로 완벽해 보였던 삼권분립이나 대의민주주의는 여전히 많은 부작용을 낳는 ‘부정의 산실’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선거는 결국 국민이 변방에 있도록 만들어 주는 기막힌 권력 위임의 절차로 변질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새로운 권력지형이 탄생할 때마다 사실 국민들은 안중에 없거나 있어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를 개선하기 위해 권위는 낮추고 실질을 숭상하는 행보를 하고 있으니 기대가 크다. 과거 노무현 정부의 기대감이 다시 살아난 듯 하다. 이 행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순돼 보이지만 과거 정권의 민낯을 전방위적으로 들춰내 단죄하는 권력지향형을 최대한 절제하는데 있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정치적·사회적 갈등들을 냉정하게 음미해 보면 정치이상들이 그저 실망스럽다. 정치이상들을 거꾸로 보면 홉스는 지배자에게 독재와 억압에 대한 원초적인 정당성을, 로크는 소수에 대한 차별적 지배와 독재를 이용해 실제로는 지배를 원하지 않는 다수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명분을 주었다. 루소는 화려한 선거를 날개로 달아주면서 이상적인 지배권력의 외형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나아가 루소는 각 개인이 맺은 계약인 일반의지가 정치체의 최고의지가 될 수 있다고 보았지만 그 일반의지가 다중을 위한 최고의지가 될 수 없다는 사례가 전 지구적으로 수없이 목도되는 지금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산뜻하게 출발한 문재인 정부의 절대적 호응과 지지가 오래가기를 진정 원하는 마음엔 정의가 또 다른 권력의 모습으로 국민에게 다가갈까를 우려한다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군중은 국민과 통상적으로 다르다. 만약 조금이라도 군중심리를 탄다면 국민주권 이상은 흔들릴 우려가 크다.
중앙부처를 비롯해 수천개 공공기관들의 수만명에 달하는 인사들이 지금 살생부에 자신들의 이름이 오를까 노심초사 하고 있다. 불안에 떨며 라인을 고민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역사를 보면 권력으로 과거를 단죄할 경우 그것은 사심의 권력싸움으로 변질돼 국민은 이념적 방패로 변방에 설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적폐의 토양이 되레 커진다는 것을 새김질할 필요가 있다. 적폐청산은 깃발을 건 불도저식 보다 부드러운 듯 강하게 포용의 리더십 속에서 이뤄져야 뿌리째 뽑을 수 있다. 그것이 국민을 하나로 아우르는 대통합이면서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확인해 주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 고된 과정을 대리하는 것이 진실한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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